전체메뉴

donga.com

[이원주의 날飛] 지난 크리스마스에 비행기는 왜 그리 못 떴을까?
더보기

[이원주의 날飛] 지난 크리스마스에 비행기는 왜 그리 못 떴을까?

이원주기자 입력 2017-12-26 17:21수정 2018-03-26 01:00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지난주 하늘길은 참으로 험했습니다. 주 초에는 폭설이 내려 비행기가 줄줄이 결항·지연되더니, 주말에는 짙은 안개 때문에 또 비행기 발목이 묶인 거죠. 시간 맞춰 예정된 비즈니스, 예약해놓은 숙소 등을 생각하며 공항 탑승구 앞이나 멈춰선 비행기 기내에서 발 동동 구른 분들이 많았을 겁니다. 혹 “그렇게 기술이 좋다던데 날씨 좀 안 좋다고 비행기 못 뜨나”라는 생각을 하신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규정과 기술로는, 이런 날씨면 비행기가 밀리고 취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차근차근 이유를 살펴보죠.

악천후로 비행기가 줄줄이 지연됐다는 내용을 알리는 인천공항 전광판. 동아일보 DB


●착륙 하는 비행기, 못 하는 비행기

성탄절 연휴 첫 날인 23일 인천국제공항 가시거리가 크게 떨어지면서 저시정 경보가 발효됐습니다. 이 공항을 이용했어야 할 비행기 약 300편이 출발이 늦어지거나 취소됐습니다. 이날 오전 한 때 시정이 50m까지 떨어졌다고 하니 상황이 매우 안 좋았죠. 인천공항의 활주로 좌우 폭은 60m입니다. 시정이 50m라면, 활주로 왼 쪽 가장자리에 섰을 때오른 쪽 가장자리가 보이지 않는 수준이 되는 겁니다. 게다가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 바퀴가 땅에서 떨어지거나 땅에 닿는 순간의 속도는 시속 약 250~300km 전후입니다. 50m는 1초도 채 되지 않는 순간에 지나가는 속도입니다.

김포공항에 착륙하는 아시아나항공 A320 항공기. 바퀴가 땅에 닿는 순간에도 시속 250km 정도 속도로 앞으로 내달립니다.



비행기에 달린 그 수많은 조종 보조 장치와 항법 장치가 알아서 해 주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절반은 맞습니다. 다 똑같은 조건은 아니고 등급이 나뉘어 있죠. 비행기가 착륙할 때 활주로까지 자동으로 접근하게 해 주는 계기착륙시스템(ILS)은 크게 3등급으로 나뉩니다. 항공 용어로는 카테고리(Category)라고 하고, CAT라 줄여 씁니다. 숫자가 커질수록 더 정밀하고 좋은 시스템이라는 의미입니다.
활주로 끝 부분에 설치된 계기착륙시스템 등급 표시. 위키피디아 사진 자료



인천공항 상황은 어떨까요. 인천공항에는 활주로 3개가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으니 ILS 장비가 총 6개 있는 셈입니다. 이 6개 ILS 장비가 모두 3등급(CAT-III)을 받았습니다. 아시아 최초입니다. 3등급은 다시 a b c로 등급이 나뉘는데 인천공항의 활주로는 모두 3등급 b입니다. 실질적으로 받을 수 있는 최고 등급입니다. ‘3등급c’는 눈가리개를 한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착륙과 활주로 운용이 가능해야 한다는, 사실상 이론적인 등급이기 때문이죠. 현재까지 3등급c 인증을 받은 공항은 전 세계에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3등급b 조건에서 착륙하는 비행기 조종석에서 찍은 유튜브 영상. 보시는 것처럼 앞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유튜브 영상


3등급b(CAT-IIIb)를 받은 인천공항은 얼마나 짙은 안개 속에서 착륙할 수 있을까요. 위에서 언급한 정밀접근계기비행 운용지침을 보면 답이 있습니다. 75m 앞만 보이면 착륙할 수 있습니다. 3등급이 아닐 경우 항공기는 공항에서 지정한 고도까지 내려와도 활주로가 보이지 않으면 착륙을 포기해야 하지만 인천공항은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3등급b 상황이면 비행기가 알아서 잘 착륙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인천공항에 착륙할 때 사용하는 항공 차트. 저시정이 아닐 경우(왼쪽)과 저시정일 경우(오른쪽)의 가시거리 한계치가 명백하게 차이가 납니다. 젭슨, 내비그래프


●두루두루 다 갖춰야 최고 등급

그럼 인천공항에서 지난 연휴기간 있었던 무더기 지연·결항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3등급’ 계기착륙시스템이 공항에만 붙는 등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등급제 시스템은 공항에도 붙고, 비행기에도 붙고, 운항승무원(조종사)에게도 붙고, 심지어 회사의 정비부서에도 부여됩니다. 공항 ILS도 3등급b, 착륙하려는 비행기도 3등급b를 만족해야 하고, 이 비행기에는 3등급b 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는 교육을 받고 자격을 갖춘 조종사가 탑승해야 합니다. 또 이 시스템을 제대로 정비하고 유지보수 할 수 있는 항공사의 정비 능력까지 갖춰져야 비로소 ‘75m 착륙’이 가능하게 됩니다.

3등급b를 받은 항공기를 가지게 됐다고 홍보하며 진에어가 발표한 보도자료. 진에어 홈페이지



당연히 비용이 많이 들겠죠. 또 3등급b에 해당하는 조건은 그리 자주 나오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특히 어떻게든 원가를 줄여야 하는 저비용항공사 등에서는 3등급 승인을 받은 항공기를 그다지 많이 보유하지 않았습니다. 국내 저비용항공사 중 한 곳인 진에어에서 보잉 777 항공기가 3등급b를 받았다고 크게 홍보한 적이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저비용항공사에서 이 같은 등급을 받고 유지하는 경우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뜻이겠죠.

국내 저가항공사 비행기 중 최초로 CAT-IIIb 등급을 받은 진에어 보잉 777 항공기(HL7743). Planespotters.Net


저비용항공사는 대부분 2등급 승인을 받은 항공기를 운용합니다. 이 경우 인천공항에 착륙하더라도 해당 비행기는 착륙 직전 30~60m 상공에서 활주로를 눈으로 볼 수 있는 동시에, 활주로에서 바라본 가시거리가 최소 350m 이상 되어야 착륙할 수 있습니다. 또 3등급b에 해당하는 항공기는 조종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땅에 사뿐히 내려앉는 ‘완벽한 자동 착륙’을 할 수 있지만 2등급 이하 항공기는 이런 자동착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기준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기상 상황이 생겼을 경우 어떤 비행기는 착륙을 하고 어떤 비행기는 착륙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대형항공사(Full Service Carrier·FSC)와 저비용항공사(Low Cost Carrier·LCC)의 차이가 기내식 같은 서비스 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양대 항공사의 항공권 가격이 비싼 이유는 기내식 등 서비스 외에도 정시 운항을 위한 다양한 비용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이륙은 또 사정이 달라요

그러면 저비용항공사가 아닌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같은 대형항공사는 운항 지연이 없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또 들 수 있는데요. 하지만 대형 항공사도 어쩔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이륙’입니다.

착륙은 계기에 의존해 완전히 자동으로 할 수 있지만, 이륙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섬세하고 정교한 자동 조종 장치가 달려 있더라도 일반적으로 120m(400ft)를 넘어서야 작동시킬 수 있습니다. 이륙할 때 조종사들은 눈으로 활주로를 확인하면서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수동으로 해야 합니다.

※등급별 이·착륙에 필요한 가시거리(Runway Visual Range) 최소 조건. 인천공항 기준.
*CAT-IIIb가 두 개로 나뉘는 이유는 항공기에 장착된 장비의 조건에 따라 또 한 번 두 개 등급으로 나눠지기 때문입니다. 많은 장치 중 한 가지 장비가 작동하지 않는 환경에서도 자동 착륙이 가능한 장비가 장착된 경우에만 75m 가시거리에서 착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공항에서는 항공기가 이륙할 수 있는 날씨 제한도 두고 있습니다. 인천공항은 활주로 어느 부분에서든 이륙 방향을 바라봤을 때 최소 125m 앞까지 보여야 합니다. 가시거리가 이보다 낮으면 항공기 이륙이 전면 중단됩니다. 3등급b 승인을 받은 비행기는 착륙할 수 있겠지만, 2, 3분 간격으로 비행기가 이륙하는 인천공항에서 조금만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 착륙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비행기가 내려서 주기(駐機)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죠. 밤 11시가 넘으면 공항이 문을 닫는 김포공항에서는 인천공항이 없던 1990년대에 일단 착륙을 시켜 놓고 유도로(비행기가 지상에서 이동하는 길)에 비행기를 일단 세워놓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천공항은 24시간 운영되는 공항입니다.

악천후로 비행기가 줄줄이 지연됐다는 내용을 알리는 인천공항 전광판. 동아일보 DB


●눈 내리면 ‘설상가상’

여기에 눈까지 내리면 그야말로 ‘설상가상’이 됩니다. 비행기 위에 쌓인 눈은 안전에 치명적이기 때문이죠. 비행기 동체와 날개는 만들어진 그대로 매끄럽게 유지돼야 합니다. 그런데 항공기 위에 눈이나 얼음 조각이 붙어 있으면 항공기를 공중에 뜨게 만드는 힘인 ‘양력’을 제대로 낼 수 없게 됩니다. 얼음이 고양력장치(플랩) 같은 장치 틈새에 끼어 제대로 장치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죠.

수도권에 폭설이 내린 18일 출발 전에 얼음 제거(디아이싱) 작업을 받는 대한항공 A380 항공기.



그래서 항공기에 눈이나 얼음이 쌓여 있으면 비행기는 출발 전 반드시 얼음 제거 작업을 해야 합니다. 공항 내 지정된 장소로 비행기를 몰고 간 뒤 엔진 시동을 끄고 비행기 전체에 얼음을 제거하는 액체를 쏟아 붓는 작업입니다. 시간도 오래 걸려 항공기 한 대가 얼음 제거 작업을 받는 데 1~2시간이 필요합니다. 인천공항에서는 이런 얼음 제거 작업대를 총 25곳이나 운영하고 있지만, 눈이 온 날 제 때 항공기를 이륙시키기는 쉽지 않았겠죠?

악천후로 비행기가 줄줄이 지연됐다는 내용을 알리는 인천공항 전광판. 동아일보 DB


비행기가 늦어지거나 결항이 돼 여행에 차질이 생기는 경험은 분명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안전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절차라고 생각한다면 불쾌하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질 수 있지 않을까요. 한 해가 갑니다. 내년 한 해 언제나 청명하고 안전한 그런 날들이 독자 여러분 앞에 펼쳐지기를 ‘날飛’가 기원하겠습니다. 2017년 근사하게 마무리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원주기자 takeoff@donga.com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

부동산 HOT ISSUE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