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인의 잡학사전]에어포스원은 쌍둥이 비행기 두 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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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11월 8일 13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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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포스원. 미 공군 홈페이지
에어포스원. 미 공군 홈페이지

25시간 동안 한국에 머물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에어 포스 원(AF)’을 타고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많이들 아시는 것처럼 미국 대통령 전용기 AF1은 그저 ‘(미국) 공군 1호기’라는 뜻입니다. 예비역 남성 분들은 군대에서 부대 최고 사령관이 타는 차를 ‘1호차’라고 불렀던 걸 기억하실 터. 그것과 100% 똑같은 명명법인데 그냥 영어로 AF1이 된 것뿐입니다. 그러면 AF1이 세상에 처음 등장한 건 언제였을까요?

관제사 착각 때문에 얻은 이름

미 공군에서 대통령 전용기를 운영하기 시작한 건 1943년부터지만 처음부터 이 비행기를 AF1이라고 불렀던 건 아닙니다. 미 공군 수송기를 개조해 만든 첫 번째 미국 대통령 전용기에는 ‘게스 웨어 2(the Guess Where II)’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후 기체를 바꿀 때마다 대통령 전용기 이름도 △세이크리드 카우(Sacred Cow) △인디펜던스(independence) △컬럼바인(columbine)으로 바뀌었습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 시절 전용기였던 인디펜던스. 미 공군 홈페이지
해리 트루먼 대통령 시절 전용기였던 인디펜던스. 미 공군 홈페이지


사건이 생긴 건 1953년 어느 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컬럼바인을 타고 플로리다주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비행기에는 미 공군(Air Force) 8610편이라는 편명이 붙어 있었는데 하필 근처에 미국 이스턴항공 8160편도 날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관제사가 두 비행기를 착각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당시 컬럼바인 조종사였던 윌리엄 드레이퍼 당시 미 공군 대령이 “앞으로 대통령 전용기를 다른 비행기와 착각하는 일이 없도록 ‘에어 포스 원’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하게 됩니다. 미 대통령 전용기를 공식적으로 AF1이라고 부르게 된 건 1959년부터입니다.

윌리엄 드레이퍼. 미 공군 홈페이지
윌리엄 드레이퍼. 미 공군 홈페이지


AF1은 항공기 호출 부호(call sign)이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이 어떤 미국 공군기를 타더라도 그 비행기가 곧 AF1이 됩니다. 사정상 공군기를 타지 못할 때는 육군 소속 비행기에 타면 ‘아미 원(Army One)’, 미 해군 비행기에 타면 ‘네이비 원(Navy 원)’입니다. 대통령이 육해공군을 막론하고 최고 통수권자이기에 이런 이름이 붙는 것.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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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군용기가 아니라 민항기에 탔을 때는 ‘이그제큐티브 원(Executive One)’이라고 부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AF1 대신 흔히 ‘T버드’라고 부르는 원래 자기 전용기(위 사진)를 타고 다닐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습니다. 만약 정말 그랬다면 이 비행기는 AF1이 아니라 이그제큐티브 원이 됐을 겁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AF1이라고 부를 수 있는 비행기 숫자는 미군 공군에 있는 모든 비행기 숫자와 똑같습니다. 다만 맨 처음 사진으로 보신 것처럼 우리가 일반적으로 AF1이라고 부르는 비행기는 사실 따로 있습니다.

에어 포스 원은 쌍둥이다.

미군에서는 ‘미국 항공 및 우주 장비 명명법’에 따라 비행기에 제식 명칭을 붙입니다. 비행기를 A-10, B-25, F-16처럼 부르는 거 보신 적 있죠? 보잉 747-200B를 개조해 만든 현재 AF1에는 VC-25라는 명칭이 붙어 있습니다. V는 VIP에서 따왔고, C는 수송기(Cargo)라는 뜻입니다.

보잉에서 제작하고 미 공군에서 보유하고 있는 이 VC-25는 딱 두 대뿐입니다. 네, 한 대가 아니라 두 대입니다. 그러니까 미국 대통령 전용기는 한 대가 아니라 두 대인 겁니다. 2003년 하와이에 있는 미 공군 히캄 기지에서 찍은 아래 사진에서는 아직 착륙하지 않은 비행기가 AF1입니다. 그 비행기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타고 있었거든요.



착륙해 있는 비행기에는 미국 대통령이 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때 호출 부호는 ‘SAM 28000’입니다. SAM은 ‘Special Air Mission(특별 항공 임무)’을 줄인 말입니다.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에 미국 대통령이 타고 있지 않을 때는 ‘SAM 29000’이 됩니다.

겉보기엔 똑같은 두 비행기지만 꼬리날개에 쓴 등록번호가 서로 다른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 캡처
겉보기엔 똑같은 두 비행기지만 꼬리날개에 쓴 등록번호가 서로 다른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 캡처


대통령 전용기가 두 대가 된 것도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부터입니다. 관제사가 착각했을 때 드레이퍼 대령이 몰고 있던 비행기는 ‘컬럼바인 2호(II)’였습니다. 쌍둥이 비행기는 ‘컬럼바인 3호(III)’였고요.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앤드루스 공군 기지에서 출발할 때는 전용기 두 대가 동시에 이륙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보안상 어떤 비행기에 대통령이 타고 있는지 외부에서 모르도록 하려는 목적입니다. 언제 어떤 비행기를 타는지도 랜덤이고, 때로는 목적지를 숨기려고 두 대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기도 합니다.

에어 포스 원은 ‘끝판왕’이다.

AF1은 절대 그 누구도 격추할 수 없고, 격추해서도 안 되는 비행기입니다. 이 비행기가 전투기 호위를 받는 것도 모자라 미사일 방어 시스템 등 자체 방어 기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미국 정부는 대통령이 AF1에 탑승할 때는 핵가방(Nuclear Football)을 비행기에 싣는 장면을 반드시 공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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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방은 핵무기 컨트롤러를 담고 있어 이런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이 컨트롤러는 미국이 보유한 모든 핵미사일을 통제할 수 있는데요, 이 컨트롤러가 파괴 당하면 미국이 보유한 핵미사일은 미리 입력해둔 목표를 향해 자동으로 날아가게 됩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는 4000개 수준입니다.

그러니까 AF1을 격추시킨다는 건 전 세계를 멸망시키겠다는 것과 사실상 똑같은 뜻입니다. NYT는 “핵무기 4000두가 있으면 러시아, 리비아, 북한, 시리아, 이라크, 이란, 중국을 멸망으로 몰아넣고도 2897두가 남는다”고 설명했습니다. AF1은 그래서 ‘끝판왕’입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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