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재발견]〈93〉‘귀하지 않다’에서 온 귀찮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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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귀챦다?, 귀찮다

‘귀찮다’는 ‘귀하지 않다’에서 온 말이다. ‘ㅏ’가 탈락한 ‘귀치 않다’가 ‘귀찮다’가 된 것이다. 여기서 특이한 점을 발견해 보자. 비슷한 환경의 다른 예를 보는 것이 도움을 줄 수 있다.

치다(打): 치- + -어→쳐

‘치어’의 준말은 ‘쳐’다. 준말 표기는 본말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치+어’를 ‘쳐’로 적는 것은 본말을 반영해야 의미가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치+어→쳐’로 적는다면 ‘치+아→챠’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귀챦다(×)’로는 적지 않는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귀치 않다’라는 말을 들어 본 일이 있는가? ‘귀찮다’가 ‘귀하지 않다’에서 왔다는 것조차 생소하다. 본말과 준말의 고리가 끊어져 결과만 남은 것을 ‘굳어진 것’이라 한다. 굳어진 말은 원말과는 독립적인 말이다. 그래서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 ‘귀찮다, 괜찮다, 편찮다’는 이미 굳어진 말들이니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이 원칙이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이 생긴다. 첫째, ‘굳어진 말’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판단하는가? 일반인이 이를 구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이를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귀찮다, 괜찮다, 편찮다’를 ‘귀챦다(×), 괜챦다(×), 편챦다(×)’로 잘못 적는 일이 별로 없다. 아래 예들과 비교하면 분명 그렇다.

이렇게 애원하쟎아.(×)
엄청 무서웠쟎아.(×)

이런 표기 오류는 주로 ‘준말-본말’ 관계에서 발생한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라도 본말을 떠올리기에 생기는 일이다. 옛날 맞춤법에서는 ‘굳어진 말’과 ‘본말-준말’을 구분해 굳어진 말들은 ‘잖, 찮’으로, 준말은 ‘쟎, 챦’으로 적기도 하였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가. ‘쟎’이나 ‘챦’으로 적어야 하는 것도 있는가? 현행 맞춤법에서는 그렇지 않다. 콕 짚어서 설명한 항목이 있다.

(한글맞춤법 제39항) 어미 ‘-지’ 뒤에 ‘않-’이 어울려
‘-잖-’이 될 적과 ‘-하지’ 뒤에 ‘않-’이 어울려 ‘-찮-’
이 될 적에는 준 대로 적는다.

‘-지 않-’, ‘-하지 않-’의 준말에 대한 설명이다. 본말을 생각하면 ‘쟎, 챦’으로 될 법도 한데 ‘잖, 찮’으로 적어야 한다. 굳어진 말이든, 본말-준말이든 모두 ‘잖, 찮’으로 적는다고 정한 것이다.

이쯤 되면 화를 낼 수도 있다. 모두 ‘잖, 찮’으로 적는데 왜 굳이 ‘준말’, ‘굳어진 말’을 구분해서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냐고. 그렇지 않다. 이 둘의 구분은 우리가 무엇을 잘못 적는 것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잘못 적게 되는 이유를 알아야 맞춤법을 제대로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지금까지의 논의가 ‘지 않’에 한정된 현행 맞춤법의 정책이라는 점이다. 이와 관련되지 않은 ‘본말-준말’의 관계는 얼마든지 많으며 이들은 우리의 맞춤법 오류에 관여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우리는 언제나 본말을 인식하면서 말을 하지만, 일상에서는 흔히 준말을 사용하니 말이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귀찮다#맞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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