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재발견]<32>말의 원칙을 찾아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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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 버티려고 vs 버틸려고

밑줄 친 부분 중 올바른 표기는 어떤 것일까?

① 버틸려고 애쓰지 마.
② 그러다 혼날려고 그러지.
③ 잡을려고 해 봤자 소용없다.
④ 답을 떠올릴려고 노력했어.
⑤ 문제를 풀려고 애를 썼어.


답은 ⑤다. ‘버틸려고, 혼날려고, 잡을려고, 떠올릴려고’는 ‘버티려고, 혼나려고, 잡으려고, 떠올리려고’로 적어야 하는 것들이다. 혹 약간이라도 어려웠다면, 기본형을 잡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버틸려고’로 실험해 보자. 기본형은 ‘버티다’이다. 여기에 ‘-려고’를 붙였다. ‘공부하려고 했다’처럼 의도를 표현할 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것이 ‘-려고’다. ‘버티-’에 ‘-려고’를 붙였으니 당연히 ‘버티려고’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 ‘ㄹ’을 덧붙여 적은 것이 잘못된 것이다. ‘혼나다, 잡다, 떠올리다’가 모두 그렇다. 여기에 ‘ㄹ’을 덧붙여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풀다’는 원래 ‘ㄹ’로 끝나는 말이니 ‘-려고’ 앞에 ‘ㄹ’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정작 궁금해야 하는 것은 갑자기 이런 질문을 왜 하는 것인가이다. ‘버틸려고’ 같이 ‘ㄹ’을 덧붙이는 표기가 흔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떤 예는 잘못된 ‘ㄹ’ 중 점점 더 익숙해지는 것도 있다. ‘떠날려고(×)’와 같은 표기를 만나는 일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ㄹ’을 덧붙여 적는 현상이 늘고 있다는 증거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무엇인가의 질서를 찾으려면 공통점에 주목해야 한다. 위 예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이들은 모두 ‘-려고’와 결합하고 있다. 이 ‘ㄹ’ 때문에 ‘ㄹ’이 덧난 것이다. 뒤에 ‘ㄹ’이 없는데 ‘ㄹ’을 덧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버티다’에 ‘-니’를 붙여 보자. 이것을 ‘버틸니(×)’라 발음하거나 적는 경우가 있겠는가?

여기서 질문이 나와야 한다. 아래 예들은 뒤에 ‘ㄹ’이 없는데도 ‘ㄹ’이 덧났다고.

뭐든 있어야 버틸 텐데. / 어떻게 버틸지 걱정이다.

멋진 질문이다. 이런 질문들이 문법에 대한 이해를 탄탄하게 한다. 위의 문장 속 ‘ㄹ’은 모두 제대로 쓰인 것으로 ‘버틸려고’와는 다른 것이다. ‘버티-’가 명사를 꾸민다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 ‘버틸 재간, 버틸 능력’에서처럼 ‘-ㄹ’이 필요하다. ‘터’는 의존명사다. 그래서 이 ‘터’를 꾸미기 위해 ‘ㄹ’을 적은 것이다. 두 번째 문장에서 ‘버틸지’는 ‘버티-’에 ‘-ㄹ지’가 붙은 것이다. ‘무슨 말을 할지’의 ‘하-’에 붙은 ‘-ㄹ지’와 같은 것이다.

‘버티려고’를 ‘버틸려고’로 잘못 적는 예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무엇일까? 같은 소리를 함께 내면 발음이 편해진다. 그래서 비슷한 소리가 덧나는 일은 제법 흔한 일이다. 평소 ‘버틸려고’와 같은 표기가 ‘ㄹ’을 덧붙여 발음하는 습관이 표기에 반영되었다는 의미다. 발음을 정확히 알아야 맞춤법을 지킬 수 있다는 점을 제대로 보여주는 예이다. 맞춤법 총칙의 첫 번째 부분이 표준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이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말의 원칙을 알아야 표기의 원칙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버티려고#버틸려고#말의 원칙#맞춤법#표기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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