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드갈의 한국 블로그]한국에서 ‘빨리빨리’에 적응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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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벗드갈 몽골 출신 서울시립대 대학원 행정학과 재학
벗드갈 몽골 출신 서울시립대 대학원 행정학과 재학
최근 몇 년간 세월이 참 얄밉게도 빨리 간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시간의 압박에 시달리면서 산 것 같다. 벌써 한국에 온 지 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 느낌에는 1, 2년 정도밖에 안 지난 것 같다. 귀여운 우리 아이가 이만큼 자란 것을 보면 빨리도 지나갔지만, 한편으로는 오래도 됐다는 생각이 든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세월이 참 빨리 흐른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한국에 오기 전 10대였을 때, 몽골에서는 시간이 참 느리게 갔다. 왠지 모르지만 시간이 너무 안 가서 지루하고 지쳤던 기억을 돌이켜 보니 그 시간이 행복하게 느껴진다. 그때 제일 좋아하는 요일은 월요일이었고, 싫은 요일은 주말이라고 했을 정도로 쉬는 것이 싫었다. 그땐 왜 시간이 그리 안 갔던 것처럼 느껴졌을까 생각해 보니 아마도 몽골에서는 해가 일찍 뜨고 늦게까지 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추측일 뿐이고, 현실적으로는 사회가 전반적으로 빨리빨리 움직이는 분위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한국처럼 모든 서비스가 이렇게 신속한 나라는 많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빨리빨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표현 중 하나일까. 특히 남편과 혼인신고를 하려고 구청에 갔을 때 피부로 느꼈다. 삶에 있어 아주 중요하고 뜻깊은 일인데 아무런 감정 없이 신속하게 처리되어 몹시 속상했다. 반면 몽골에서는 혼인신고서에 서로 사랑하고 평생 함께하겠다는 서명과 사인을 하고, 담당 직원의 축하와 행복하게 잘 살길 빌어주는 말과 함께 혼인신고가 접수된다. 어떨 때는 빠른 것도 좋지만 인생에 있어 흔하지 않은 기쁜 일은 조금 더 느긋하게 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가게가 없어지고 다른 간판이 들어서는 것을 볼 때는 그리 기분이 좋지 않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은 알지만 말이다. 간판 하나 새로 달기 위해서 힘이 안 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모든 재산을 내놓는다. 그러나 대단한 창의력과 아이템이 없을 경우 얼마 가지 못해 문을 닫기 십상이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한번 자리를 잃게 되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고 고통스럽다. 반면 몽골에선 전 재산을 인생 게임에 걸다가 실패를 맛보아도 대초원의 원하는 곳에 몇 마리 가축을 키우기만 하면 삶은 지속된다.

물론 빠른 것이 모두 안 좋은 것만은 아니다. 체코에서 유학하는 친구가 유학생 비자를 기한 안에 연장하지 못해서 몹시 곤란한 상태에 처한 적이 있다. 그는 벌금이라도 내고 비자를 정상적으로 연장 신청하고 싶어 했지만, 체코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자꾸 2주 후에 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체코출입국관리사무소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일 처리를 할 것인지 결정하기 어려워 논의만 계속하는 통에 내 친구는 반년이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이런 일은 한국에서 오래 산 내겐 그저 답답한 이야기로 들렸다. 어떻게 그렇게 일 처리를 느긋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만약 이런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학교 외국인 담당 선생님을 통해서라도 일이 쉽게 해결되었을 것이다.

나도 한국에서 살기 시작한 후부터 한국 사람처럼 일이 빨리빨리 안 되면 답답해지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 특히 몽골에 있는 가족과 전화 통화를 할 때 말을 빠르게 하자 부모님께서 “누구한테 쫓기고 있는 것처럼 왜 그러냐” 하신 적이 있다. 이런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때론 놀랍고 신기하다.

누구나 행복하고 좋은 것들은 오래오래 천천히 느끼고 싶고, 두려운 것들은 최대한 빨리 지나가길 바라겠지만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느긋함과 빠름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추면 바쁜 한국 사회에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벗드갈 몽골 출신 서울시립대 대학원 행정학과 재학
#빨리빨리#혼인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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