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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이슈]“살인 기업을 소탕하라” 바다 건너 날아간 참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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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이슈]“살인 기업을 소탕하라” 바다 건너 날아간 참수리

권기범 기자 , 박훈상 기자 입력 2017-07-15 03:00수정 2017-07-15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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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코리안데스크를 아십니까
필리핀 1호 코리안데스크였던 서승환 경정.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필리핀 ‘살인 기업’ 사건을 해결하라.”

2012년 5월 당시 김기용 경찰청장의 특명을 받은 서승환 경정(40·현 서울중부경찰서 경무과장)이 필리핀행 비행기에 올랐다. 서 경정은 지갑 속 사진에서 웃고 있는 아내와 딸의 얼굴을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가족들에게 잠시 이별을 고했다. 오로지 ‘악마를 잡겠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외사, 수사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서 경정은 그렇게 필리핀 땅을 밟았다. 현지에 파견된 ‘1호 코리안데스크’였다.

공항에 내린 서 경정은 여행용 가방을 끌고 곧장 필리핀 경찰청 납치사건전담팀(AKG) 수사본부로 향했다. 2008년부터 반복적으로 일어난 ‘한국인 납치강도단’ 범행으로 공포에 휩싸인 필리핀 교민들이 하루라도 빨리 한국 경찰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강도단의 타깃은 한국인 여행객이나 필리핀 현지 교민. 관광 안내와 사업 설명 등을 내세워 이들을 유인한 뒤 납치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5년간 납치된 한국인은 15명이나 됐다. 이들은 돈을 빼앗기고 겨우 석방됐거나 흔적도 없이 실종됐다.

서 경정은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필리핀에 도착했더니 한국인끼리 서로 말도 하지 않을 정도였다. 한국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하기는커녕 납치 살해범이 아닐까 서로 의심하고 불안해했다”고 말했다.

‘기업형’ 납치 강도단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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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납치강도 행각을 벌인 일당 중 한 명인 김종석(왼쪽에서 세 번째)이 현지 경찰에 붙잡혀 압송되고 있다. 왼쪽이 ‘필리핀 1호 코리안데스크’였던 서승환 경정이다. 김종석 등 일당은 5년간 15명을 납치해 돈을 빼앗은 뒤 일부를 살해했다.
필리핀 납치 강도단의 시작은 2007년 7월 경기 안양시의 한 환전소였다. 당시 26세였던 환전소 여직원을 흉기로 살해한 뒤 1억8000만 원을 훔친 이들은 같은 해 11월 필리핀으로 도주했다. 그리고 현지에서도 범행을 이어갔다. 주범 최세용(51)을 비롯해 김종석(2012년 사망·당시 43세), 행동대장 김성곤(45)은 필리핀에서 김모(44), 김모(23), 한모(44·여) 등을 끌어들였다. 이들은 마치 범행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기업’을 연상케 하듯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서 경정이 필리핀으로 향하기 약 한 달 전, 현지 교민 윤모 씨가 김종석과 김성곤에게 납치됐다. “중고 휴대전화 사업을 함께하자”고 접근한 이들은 윤 씨가 그들의 차량에 탄 순간 총을 들이댔다. 이들은 윤 씨의 눈을 가린 뒤 케이블타이로 손을 묶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외딴 판잣집이었다. 윤 씨는 덩치가 크고 힘이 좋았다. 양손에 묶인 케이블타이를 힘으로 끊어냈다. 양손이 풀린 윤 씨는 김성곤과 생사를 건 격투를 벌였다. 그러다 김성곤이 실수로 자신의 다리에 총을 쐈다. 김성곤은 ‘신고하지 않는’ 조건으로 윤 씨를 풀어줬다.

윤 씨는 필리핀 경찰에 신고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현지 경찰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한국인 사이에서 일어난 범죄였던 탓이다. 강 건너 불구경하던 필리핀 경찰은 서 경정이 파견된 뒤에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 경정은 작은 단서를 찾았다. 윤 씨가 차량 안에서 들었다는 비행기 소리, 이동한 시간 등을 바탕으로 한 달간 필리핀 남부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기어코 윤 씨가 끌려간 판잣집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판잣집 안에는 여행용 가방 6개가 있었다. 그동안 일당에게 납치됐던 한국인들의 가방이었다. 집요한 추적 끝에 서 경정은 김성곤과 김종석을 검거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얻은 첩보로 같은 해 11월 태국으로 도주한 최세용까지 붙잡았다. 최세용 검거는 서 경정이 태국 주재 한국 경찰에 전달한 첩보가 결정적이었다. ‘태국에 있는 최세용이 형제나 처가, 친인척의 여권을 쓰고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악마들은 태연했다

일당을 일망타진했지만 숙제가 남았다. 납치됐다 실종된 피해자의 행방을 찾아야 했다.

2011년 9월 가족과의 전화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두절된 홍석동 씨(당시 30세)를 찾는 일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홍 씨는 당시 “필리핀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었는데 그 부모가 합의금을 요구한다”는 전화를 걸어왔다. 가족들은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수했을 수도 있지 않느냐”며 1000만 원을 송금했다. 그러나 연락이 두절됐다. 가족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2012년 12월 말 홍 씨의 아버지는 아들을 그리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강도단은 태연했다. 홍 씨 실종 1년 뒤 총격전 끝에 검거된 김종석은 그날 밤 경찰서 유치장에서 목을 맸다. 김종석은 “필리핀인 아내와 자식에게 미안하다”며 구구절절한 유서를 남겼다. 그러나 홍 씨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없었다. 타인의 불행을 삶의 밑천으로 살아가는 악마들이었다.

코리안데스크와 경찰청의 공조로 홍 씨 등 피해자가 암매장된 장소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해당 장소에 지어진 집주인이 땅을 파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 돈으로 3억 원을 요구했다. 홍 씨의 어머니가 집주인에게 눈물을 쏟으며 사정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필리핀 경찰은 집주인에게 “귀신이 나올 수 있다”고 윽박지르는 데 그쳤다.

서 경정은 아파트 주변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하나하나 설득했다. 필리핀 사람들에게 사건을 널리 알렸다. 그의 노력이 통한 걸까. 필리핀 종교계의 한 지도자가 집주인을 설득하고 나섰다. 그렇게 찾은 홍 씨의 시신은 2014년 12월 홍 씨 아버지가 하늘로 떠난 지 2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마사랍 코리안? 욱하는 성질이 화근

서 경정의 성공적 활동 덕분에 2015년 필리핀에는 코리안데스크 1명이 추가 파견됐다. 2016년 4월에는 4명이 필리핀 땅을 밟았다. 코리안데스크 활동이 자리 잡으면서 한국인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일은 줄고 있다. 그러나 아직 문제는 남아 있었다. 필리핀 현지인들이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범죄가 그것이다.

‘마사랍 코리안.’ 한국인은 ‘맛있는 사람들’로 불린다. 차림새가 말끔하고 돈도 많은 데다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인식까지 겹쳐서일까. 한국인들은 필리핀 범죄자들에게 ‘현금 인출기’처럼 여겨졌다.

서 경정은 무엇보다 한국과 필리핀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필리핀인들은 한국 사람의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욕하고 모욕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고 했다. 올해 5월 20일 필리핀 현지에서 총기로 살해된 여행 가이드 황모 씨(47)도 사소한 다툼이 원인이었다. 한국 파견 경찰과 코리안데스크의 수사로 잡힌 범인은 황 씨의 내연녀 A 씨(20)와 그의 남자친구 B 씨(34)였다. 알고 보니 황 씨는 A 씨에게 손찌검을 하곤 했다. 화가 난 A 씨는 남자친구 B 씨와 살인을 공모하고 살인청부업자 C 씨를 끌어들였다. 그런 다음 “훔친 물건을 돌려주겠다”며 찾아가 황 씨를 살해한 것이다.

서 경정은 “필리핀에서는 학교 폭력이 없는 이유가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청부살인이 쉽다”며 “전문 킬러나 동네 건달까지 사진과 주소만 주면 실행에 옮긴다”고 말했다. 필리핀은 불법 총기가 100만 정이 넘는다. 살인 청부도 쉽게 맡길 수 있다. 피해를 당한 한국인의 유가족이 복수를 하겠다며 한국에서 건달들을 데리고 들어왔다가 이를 경찰이 말린 일도 있었다.

2014년 한인 여대생 납치 사건 당시 피해자 가족이 범인의 돌발 행동으로 위험에 빠질 것을 염려해 가족을 대신해 협상 현장에 나간 일은 서 경정의 뇌리에 깊게 남아 있다. 민간인인 피해자 가족이 몸값을 전달하러 갔다가 추가로 납치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서 경정이 직접 협상 현장에 나간 것이다. 그러나 결국 피해자는 시신으로 발견됐다. 알고 보니 납치된 당일 살해당했다. 그는 “필리핀에 부임해 처리했던 여러 사건 중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다”며 “생각하면 할수록 안타깝다”고 회상했다.

에필로그

서 경정은 5년 2개월간의 필리핀 파견을 마치고 얼마 전 한국으로 복귀했다. 서 경정이 필리핀에서 발생한 사건을 통해 검거한 한국인과 필리핀인은 모두 78명에 달한다. 한국에서 도피한 수배자 73명도 송환했다. 서 경정은 당시 필리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경찰이 필리핀 경찰과 공조해 한인 범죄를 적극 수사하고 있다”, “반드시 검거해 처벌하겠다”고 경고했다. 서 경정은 “코리안데스크의 존재가 필리핀 현지에도 많이 알려져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다”며 “국민들이 외국에서도 한국 정부의 보호를 받는다는 걸 알고 안심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기범 kaki@donga.com·박훈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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