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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천상에서도 들려주세요, 그 고운 ‘현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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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천상에서도 들려주세요, 그 고운 ‘현의 노래’

임희윤기자 입력 2018-02-01 03:00수정 2018-02-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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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
한국 음악사의 큰 별이 졌다. 황병기 선생은 신라의 춤 음악을 상상한 ‘침향무’나 페르시아 유리그릇에서 영감을 받은 ‘비단길’ 같은 작품을 작곡하고 연주하며 계승에 급급했던 우리 전통음악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큰 화두였다. 동아일보DB
‘춘설’은 멀었지만 선생은 ‘미궁’이 아닌 ‘비단길’을 향해 갔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이 31일 오전 3시 15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2세. 고인은 지난해 말 뇌중풍(뇌졸중) 치료를 받은 뒤 폐렴을 앓았다.

황 선생은 국악의 현대화와 세계화에 깊은 족적을 남긴 선구자였다. 1962년 사상 최초의 현대 가야금 곡 ‘숲’을 발표했고, 1975년 절규와 굉음을 담은 괴이한 대작 ‘미궁’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백남준, 존 케이지와 교류하며 현대예술의 새 활로를 찾아 나섰다. 허윤정 서울대 국악과 교수(거문고 연주자)는 “함께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늘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분이었다”며 “어르신의 권위나 무거움 없이 젊은이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명쾌한 해답을 줬다. 사유 방식을 가장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염수정 추기경도 애도를 표했다. 염 추기경은 “국악 발전을 위해 온 생애를 바치신 황 프란치스코 형제님은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며 국악에 대한 열정을 이어오셔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셨다”고 기렸다. 황 선생은 2015년 염 추기경의 주례로 세례성사를 받고 프란치스코를 세례명으로 받았다.

1936년 서울 가회동에서 태어난 고인은 중학교 때 고전무용연구소에서 처음 들은 가야금 소리에 운명처럼 이끌렸다. 경기고 3학년 때 전국 국악 콩쿠르에서 우승했지만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법대 재학 시절 콩쿠르에서 또다시 우승을 차지했다.

노력과 성실함으로 천재 이상의 길을 걸었다. 법대 졸업 뒤 23세에 서울대 국악과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한때 강단을 떠나 명동극장 지배인, 화학회사 직원, 영화사와 출판사 운영으로 생계를 잇기도 했다. 1962년 ‘숲’ 이래 ‘비단길’ ‘미궁’ ‘춘설’ 등의 작품집을 냈다. 1965년 미국 하와이 ‘20세기음악예술제’를 시작으로 뉴욕 카네기홀 공연 등 해외에도 국악을 알렸다. 1974년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교수를 맡아 27년간 후학 양성에 힘썼다.

강권순 명인(정가)은 “입버릇처럼 ‘(국악인의 길이 힘들어도) 재밌게, 잘 먹고 잘 살아야지!’ 하시던 선생의 말씀이 큰 격려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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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만난 고 백남준 씨와 뉴욕에서 협연하며 현대예술의 길을 모색했다. 1999년 대장암 수술을 받았지만 회복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음악대표,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맡았다.

남북 음악 교류사에도 발자취를 남겼다. 1990년 작곡가 윤이상의 의뢰로 평양 범민족통일음악회 남측 단장을 맡았다. 그해 서울 송년통일음악회에는 북측 음악단을 초청했다.

고인은 범아시아적 음악과, 영혼을 위로하는 작품을 추구했다. 작년에 신작 가곡 ‘광화문’을 발표하며 마지막까지 예술혼을 불태웠다.

1985년 동아국악콩쿠르 창설 당시 자문에 응해 시작부터 대회가 권위를 갖추는 데 도움을 줬다. 대한민국국악상, 방일영국악상, 호암상, 대한민국예술원상, 후쿠오카아시아문화상 대상, 만해문예대상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소설가 한말숙 씨와 아들 준묵(한국고등과학원 교수) 원묵 씨(미국 텍사스 A&M대 교수), 딸 혜경(주부) 수경 씨(동국대 강사), 사위 김용범 씨(금융위원회 부위원장)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2일 오전 5시 30분, 장지는 경기 용인시 천주교용인공원묘원. 02-3010-2000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 별세#황병기 미궁#윤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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