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묻지마 살인-극단적 ‘메이와쿠’… 부모 ‘초고령화’ 타고 공포 확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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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히키코모리 61만명… 충격에 빠진 日열도


지난달 28일 일본 도쿄 인근 가와사키. 51세 남성 이와사키 류이치(巖崎隆一) 씨가 스쿨버스를 기다리던 초등학생과 학부모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두 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다. 1일에는 구마자와 히데아키(熊澤英昭·76) 전 농림수산성 차관이 도쿄 자택에서 함께 살던 장남(44)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두 사건의 범행 이유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사건 관련자들에겐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당국은 이와사키 씨와 구마자와 전 차관의 장남을 중년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로 추정하고 있다. 주로 젊은층 문제로만 여겨졌던 히키코모리 문제가 중·장년층에도 퍼지고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일본 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다. 고령화의 또 다른 그늘 ‘중년 히키코모리’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했다는 지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 젊은층 넘어선 중장년 히키코모리


일본 중장년 히키코모리 문제가 집중 부각된 시점은 3월이었다. 내각부는 당시 “40∼64세 히키코모리가 무려 61만3000명에 달해 청년층(15∼39세) 히키코모리(54만1000명)보다 많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히키코모리 연구는 1980년대부터 시작됐지만 중장년층 히키코모리에 대한 전수 조사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발표를 주도한 기타카제 고이치(北風幸一) 내각부 참사관은 “중년 히키코모리 수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많다. 히키코모리가 10, 20대 젊은층 특유의 현상이 아닌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중장년 히키코모리의 38.3%는 40대였다. 이어 50대(36.2%)가 뒤를 이었고, 60대는 25.5%였다. 발표 당시 조사 대상의 60대가 60∼64세였음을 감안하면 노인 히키코모리 비중도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히키코모리로 지낸 기간은 1년∼5년 미만이 42.6%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20년 이상(19.1%), 10년∼20년 미만(17.0%), 5년∼10년 미만(14.9%)이란 응답이 합해서 51%에 달했다. 단순히 히키코모리 수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 이들의 고립 기간 또한 급증하고 있다.

외톨이가 된 이유는 대부분 ‘일’이었다. 퇴직(36.2%) 혹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6.4%) 히키코모리가 됐다는 사람의 비율이 약 43%에 달했다. 4월 아사히신문에 소개된 A 씨(57·시즈오카현 거주)도 이런 사례의 하나다. 11년간 근무했던 직장을 그만둔 지난해 1월부터 계속 무직 상태였던 A 씨는 “인간관계가 두렵고 다른 직장에서 잘할 자신도 없다. 모았던 돈을 조금씩 쓰며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지낸다”고 토로했다. 외출은 사흘에 한 번 정도, 밤에 음식을 사러 나갈 때가 고작이었다. 체중도 10kg 늘었다고 했다. A 씨는 “TV에선 나루히토 일왕 취임, 내년 도쿄 올림픽 이야기 등으로 떠들썩하지만 다른 나라 이야기 같다”고 말했다. 대인관계나 직장생활 등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사람들의 비율도 높았다.

○ 중학교 졸업 사진만 있는 51세

12일 일본 가와사키시 노보리토역 앞에서 경찰과 공무원들이 하교하는 초등학생들을 살피고 있다. 지난달 28일 가와사키시에서 50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스쿨버스를 타려던 초등학생에게 흉기를 휘둘러 2명이 숨졌다(위쪽 사진). 1일 도쿄 자택에서 40대 히키코모리인 아들을 살해한 구마자와 히데아키 전 농림수산성 차관(왼쪽에서 두번째)이 체포돼 이동하고 있다. 가와사키·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아사히신문 제공
12일 일본 가와사키시 노보리토역 앞에서 경찰과 공무원들이 하교하는 초등학생들을 살피고 있다. 지난달 28일 가와사키시에서 50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스쿨버스를 타려던 초등학생에게 흉기를 휘둘러 2명이 숨졌다(위쪽 사진). 1일 도쿄 자택에서 40대 히키코모리인 아들을 살해한 구마자와 히데아키 전 농림수산성 차관(왼쪽에서 두번째)이 체포돼 이동하고 있다. 가와사키·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아사히신문 제공
이와사키 씨는 왜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을까. 일본 경찰이 그의 집을 찾아 범행 동기로 보이는 증거물들을 조사했다. 경찰이 수거한 물품은 만화책과 게임기 등이 전부였다. 그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인터넷 접속 흔적도 아예 없었다.

사건 후 공개된 그의 사진도 놀라웠다. 언론은 그를 용의자로 소개할 때 35년 전에 찍은 그의 중학교 졸업 사진을 내보냈다. 스마트폰도, 그 흔한 소셜미디어 계정도 없다 보니 51세 남성의 현재 사진이 아닌 35년 전 중학생 때 사진을 사용하는 황당한 일이 빚어졌다. 수사를 맡은 한 경찰 간부는 마이니치 등 언론 인터뷰에서 “(범행 동기에 관한 증거가)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는 사건은 드물다”고 했다. 범행 동기가 명확하지 않으니 “범인이 이 세상에 정말로 존재했던 사람인지 의문”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는 어릴 적 부모가 이혼한 뒤 큰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내내 방에 틀어박혀 큰아버지 부부와도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소통하지 않는 이와사키 씨에게 큰아버지 부부는 지난해 11월경 “편지라도 주고받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생활방식을 바꿔 히키코모리 생활을 관두라”는 큰아버지에게 “식사도 빨래도 스스로 하는데 무슨 ‘히키코모리’냐”며 항의 답장을 보냈다. 그의 의료보험증에는 무려 10년 전에 받은 병원 치료가 가장 최신 기록으로 남아있었다.

‘묻지마 살인’이 일어난 지 정확히 보름이 지난 12일 사건 현장을 직접 찾아갔다. 사고 직후 이곳을 방문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우선 스쿨버스가 학교가 운영하는 통학버스는 사라지고 가와사키시(市)가 운영하는 전세버스가 다니고 있었다. 버스에는 이제 학부모도 같이 탈 수 있다. 학생들을 버스에 탑승시키는 인솔자들도 20∼30명에 달했다. 경찰과 교직원은 물론 시 관계자, 역 안내원까지 ‘스태프’ 명찰을 달고 학생들을 보호했다. 5∼10분에 한 대씩 도착하는 버스에 아이들이 탑승하면 인솔자 대표가 학부모들에게 다가가 “잘 탑승했다”고 보고하는 모습도 보였다.

○ 폐 끼치지 않는 ‘메이와쿠(迷惑)’의 비극

가와사키 사고 현장을 떠나 북동쪽으로 약 20km 떨어진 도쿄 네리마구 하야미야 마을로 이동했다. 구마자와 전 차관이 사는 곳이다. 겉으로 보기엔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단독 주택이 늘어선 평범한 동네였다. 그의 집은 학교 바로 옆에 있는 2층짜리 주택이었다. 기자가 현장을 찾은 시간은 대낮이었지만 모든 창문에 커튼이 쳐져 있었다. 정원에는 음료수 페트병 몇 개가 놓여 있을 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동네 주민들도 “할 말이 없다”며 외부인을 극도로 경계했다.

1943년 출생한 구마자와 전 차관은 도쿄대 법대를 졸업하고 1967년 농림성(현 농림수산성) 공무원이 됐다. 출세 가도를 달리며 농림성 ‘넘버 2’ 사무차관까지 올랐다. 최고 학벌을 지닌 엘리트 공무원의 화려한 외관과 달리 그의 속은 장남 문제로 타들어갔다. 그의 옛 동료를 취재한 NHK, 마이니치 등에 따르면 무려 30년 전부터 시작된 장남의 폭력이 그와 부인을 괴롭혔다.

장남도 중학교 2학년 때 집단따돌림을 당했다. 등교를 거부하며 집에 틀어박힌 뒤부터는 어머니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라이터로 어머니에게 불을 붙이는 패륜도 저질렀다. 성인이 된 후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취업했지만 곧 직장을 때려치웠다.

비극은 사건 발생 1주일 전부터 예고됐다. 따로 나와 생활하던 그는 지난달 25일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가겠다”고 했다. 부모의 집에 온 그는 하루 만에 부모에게 다시 폭력을 휘둘렀다. “대체 내 인생이 뭐냐”고 소리치는 자식에게 얻어맞은 부부는 집 2층으로 올라가 숨은 채 벌벌 떨었다. 구마자와 전 차관은 이때 아내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고 한다. “이대로면 우리가 죽는다. 다음에 또 난동을 부리면 위해(危害)를 가할 수밖에 없다.”

사건 당일 이들의 집 바로 옆 초등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렸다. 장남은 “소리가 시끄럽다. 죽여버리겠다”며 흥분했다. 구마자와 전 차관은 4일 전 가와사키의 ‘묻지마 살인’을 떠올렸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장남의 분노가 초등학교 아이들을 향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는 장남에게 흉기를 휘둘렀고 아들은 출혈 과다로 1시간 만에 사망했다.

중년의 히키코모리가 된 아들과 부모 간의 오랜 불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일본식 ‘메이와쿠(迷惑)’ 문화 등이 복잡하게 얽힌 존속살인이 발생한 셈이다. 일본어로 ‘민폐’를 뜻하는 메이와쿠는 어려서부터 “타인에게 절대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고 자라는 일본인 특유의 습성이다. 일부는 자신의 감정이나 주장을 드러내는 것도 민폐라 여길 정도로 메이와쿠가 주는 압박감은 대단하다.


○ 중장년 히키코모리를 돌보는 부모들


전문가들은 초고령화, 미혼율 상승 등으로 중장년 히키코모리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중장년 히키코모리의 마지막 안전판이자 그나마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인 부모가 자녀보다 더 빨리 늙는다는 점이 우려되고 있다.

히키코모리 연구를 지속해 온 미야니시 데루오(宮西照夫) 와카야마대 명예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과도한 경쟁, 고도 기술사회에 대한 부적응 등으로 중장년 히키코모리가 늘어나고 있다. 히키코모리에 대한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히키코모리가 점차 중장년으로 늙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70, 80대 고령 부모가 경제난, 건강 이유로 중장년 히키코모리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미야니시 교수는 히키코모리 장기화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의 자녀가 히키코모리가 될지 모른다는 부모의 불안감부터 해소시키고, 히키코모리 성향을 보이면 초기부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진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직 차관이란 최고위급 관료가 자신의 아들을 살해했듯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오히려 히키코모리 상담에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면서, 부모와 자식 모두 상담에 나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도쿄도는 34세 이하로 제한했던 히키코모리 상담 연령 제한을 최근 없앴다. 담당 부서도 청소년부서에서 복지부서로 옮기며 ‘전 연령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는 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교토부는 2017년부터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하는 탈(脫)히키코모리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부모 사망 이후 생활자금 마련 방법 등 개별 상담을 히키코모리 본인 및 고령의 부모를 상대로 동시에 실시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히키코모리를 ‘예비 범죄자’로 보는 것을 경계한다. ‘일본 히키코모리 가족 연합회’는 최근 성명을 내고 “가와사키 살인은 용의자가 히키코모리여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주변에서 외톨이들을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볼수록 해당 가족들은 세상의 눈을 두려워해 이들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이들의 고립 및 사회와의 불화만 심화된다는 지적이다.

가와사키·도쿄=김범석 bsism@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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