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35>‘체크리스트’ 만족 시켰던 틸러슨, 트럼프와 냉랭해진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3일 16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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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Tillerson checked every box on the Trump checklist.” (틸러슨은 트럼프 (대통령) 체크리스트의 모든 박스를 체크했다)

요즘 미국 정가의 최대 화제는 언제 렉스 틸러슨(Rex Tillerson) 국무장관이 물러나느냐는 것이라는데요. 그동안 틸러슨 장관 사임설은 수차례 나왔었죠. 그의 사퇴를 말하는 ‘Rexit’(렉시트·Rex+Exit)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고 합니다.

사퇴 루머를 잠재우려는 듯 틸러슨 장관이 어제 국무부 직원과 해외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원격 타운홀 미팅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건재하다’ ‘나는 물러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겠죠.

사실 우리는 틸러슨 장관을 ‘제멋대로 트럼프’의 피해자 앵글에서 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도 흠이 없는 건 아니죠. 국무부는 부처가 워낙 방대한지라 장관의 장악력이 매우 중요한데 틸러슨 장관은 ‘따로 노는’ 스타일입니다. 미국 정가에서는 틸러슨 장관에 대해 ‘aloof’(냉담한)라는 표현을 씁니다. 국무부는 언제나 예산 낭비 부서 1순위라고 불리기에 대규모 구조조정이 예상되고 있는데요.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직원들을 다독일 리더십이 없고, 그 흔한 언론 브리핑에 한번도 나선 적이 없습니다. 솔직히 거대기업 엑손모빌 최고경영자 출신이라는 게 믿기 힘들 정도죠.

틸러슨 장관은 처음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사이가 좋았습니다. 기업인 출신에, 글로벌 기업을 운영한 글로벌 마인드에, 위엄 있어 보이는 풍채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좋아하는 조건은 모두 갖췄거든요.

위의 문장은 CNN이 임명 당시 틸러슨 장관을 평가했던 내용입니다. ‘Check the box’는 미국인들이 즐겨 쓰는 표현인데요. ‘해당되는 박스에 체크하라’는 의미죠. 특히 선거 때 투표 독려 캠페인에 자주 등장합니다. ‘Check 대신 ’Tick‘을 쓰기도 하는데 같은 의미입니다.

CNN은 ’틸러슨이 트럼프 체크리스트의 모든 박스를 체크했다‘고 했습니다. 틸러슨 장관이 트럼프가 내건 ’국무장관은 어때야 한다‘는 체크리스트를 완전히 만족시켰다는 의미죠. 미국 영화에서 젊은 여성이 “He checked every box on my mom’s checklist”라고 하는 말을 종종 들을 수 있는데요. 결혼할 남자가 내 엄마의 체크리스트를 완전히 만족시켰다는 뜻입니다. 엄마들은 딸이 결혼할 남자에 대해 이것저것 조건이 많으니까요.

트럼프 대통령이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시간낭비 하지 말라’며 올린 트윗
트럼프 대통령이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시간낭비 하지 말라’며 올린 트윗
임명 10개월 후 트럼프-틸러슨 관계는 완전 ‘냉랭’ 그 자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 전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펼치고 있는 틸러슨 장관에 대해 ‘시간 낭비하지 마라’는 트윗을 날려 공분을 샀었죠. ‘자신이 임명한 장관이 열심히 일하는 걸 창피주다니’라며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게 ‘moron’(멍청이) 사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복수가 아닌가 싶어요. 올 여름 틸러슨 장관이 국방부 관리들과의 사적인 미팅에서 대통령을 ‘moron’이라고 불렀다고 하네요. 미국인들이 정말 많이 쓰는 비속어 중 하나인데 영한사전에는 ‘멍청이’라고 나와 있지만 사실 ‘또라이’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맞는 소리 같기는 한데 듣는 당사자는 아무래도 기분 나빴겠죠.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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