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7>워싱턴이 잠든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8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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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advice to other disabled people would be, concentrate on things your disability doesn‘t prevent you doing well, and don’t regret the things it interferes with. Don‘t be disabled in spirit as well as physically (장애를 가진 다른 사람들에 대한 나의 충고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또 장애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후회하지 말아라. 육체적으로 장애가 있더라도 정신적인 장애자가 되지 말아라).

루게릭병을 가진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 스티브 호킹이 한 말입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호킹이 장애에 대해 한 말들이 많습니다. 모두 명언들입니다. ’어번 딕셔너리‘(Urban Dictionary·도시의 사전)에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미국에서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흘끗흘끗 쳐다봤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우리와 다르다‘는 인식은 미국에도 아직 남아 있습니다.

고(故) 강영우 박사가 호킹과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장애를 가지고 살다보니 인생에 더욱 집중하게 됐다”고 합니다. 장애를 딛고 백악관 정책차관보까지 오른 강 박사는 한국에도 많이 알려졌습니다. 특파원 생활을 할 때 워싱턴 근교 알렉산드리아에 사는 강 박사를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선하면서도 강단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강 박사가 암으로 타계했을 때 회사에서 강 박사 빈소에 가보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미국은 우리와 장례문화가 달라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빈소는 없고, 며칠 후 장례식 때 조문객들이 참석합니다. 빈소가 없으니 강 박사 집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가족들이 모여 있을 테니까요.


밤 11시쯤 집을 나섰습니다. 깜깜한 빔중에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비를 뚫고 1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강 박사 집에 다다르니 교외의 콘도형 아파트였습니다. 적막이 감도는 가운데 다른 기자들은 없었습니다.

1층에서 인터폰을 누르니 부인 석은옥 여사가 “인터뷰 하고 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미국에서는 “인터뷰 안 한다”고 하면 진짜 안 하는 것이라 실망스러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1층 아파트 입구 밖에서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올라와라”며 문을 열어주실 수도 있잖아요. 워싱턴 주민들이 고이 잠들어 있을 시간에 아파트 밖을 서성거리는 신세가 처량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해보는 잠복(하리꼬미) 근무였습니다. 몇 번 더 인터폰을 눌러봤지만 답이 없었습니다. 새벽 3시 정도에 아파트 불이 꺼졌습니다. 더 이상 머무르는 것은 의미가 없어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리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안개비가 자욱하게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취재는 실패했지만 별로 섭섭하지 않았습니다. 왠지 고인을 조용하게 보내드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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