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룡의 중국 살롱(說龍)]<17>‘양날의 칼’, 북한 모란봉 악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5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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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 온 모란봉 악단
베이징에 온 모란봉 악단
북한이 다음달 평창 동계 올림픽의 예술단에 ‘북한판 걸그룹’ 모란봉 악단을 파견할지 관심이다. 현송월 모란봉 악단 단장이 15일 북한 예술단 파견을 위한 실무 회담 대표 중 한 명으로 왔기 때문이다. 다만 직함을 ‘관현악단 단장’이라고만 밝혀 모란봉 악단이 올 지 다른 관현악단이 올 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모란봉 악단은 2012년 7월 6일 첫 시범 공연에서 하이힐과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미국 영화 ‘록키’의 주제곡과 ‘마이 웨이’를 연주하고, 미키마우스와 백설공주 같은 미국 만화 주인공들이 출현하는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여 관심을 모았다. 따라서 이 악단이 내려와 단독이든 한국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든 공연을 하게 되면 큰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미사일 발사 축하 공연
미사일 발사 축하 공연
하지만 여성 10인조 모란봉 악단은 대중문화 오락을 위한 ‘걸그룹’이 아니다. 전원이 인민군 소속 ‘정치 선전대원’들이다. 2015년 10월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에 올랐고 지난해 7월 대륙간탄도급 ‘화성-14형’ 발사 축하 공연을 했다.

베이징에 온 현송월
베이징에 온 현송월
모란봉 악단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집권한 2012년 창단됐고 김 위원장이 직접 ‘모란봉’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친솔(親率·직접 챙김) 악단’이다. 단장 현송월은 작년 10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이 된 당 간부다. 단원 대부분은 ‘북한의 퍼스트레이디’ 이설주가 나온 금성학원 출신이다.

남북이 공연 일정과 내용 등에 대해 합의해 공연하게 돼도 무사히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는 2015년 12월 베이징(北京) 공연이 갑작스럽게 무산된 사건의 기억이 아직 뚜렷하기 때문이다.

모란봉 악단이 그해 12월 9일 리진쥔(李進軍) 북한 주재 중국 대사의 환송을 받으며 평양 기차역을 출발할 때 북중 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모란봉 악단은 10일 베이징에 도착한 뒤 12일부터 14일까지 인민대회당 뒤에 있는 국가대극원에서 공연할 예정이었다.

북한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2012년 11월 공산당 총서기에 올라 집권한 이듬해인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감행해 고위급 교류 중단 등 관계가 냉각됐다. 모란봉 악단의 베이징 행은 그해 10월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0주년에 류윈산(劉雲山) 상무위원이 평양에 간 데 이어 양국관계 해빙을 가속화할 것으로 관측됐다.

모란봉 악단이 첫 해외 공연을 위해 베이징에 오기로 한데는 최고 지도부의 인가를 포함한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모란봉 악단이 10일 도착하는 날부터 뭔가 심상찮은 조짐이 나타났다. 김정은이 이날 평양 평천혁명사적지를 시찰하면서 “오늘 우리 조국은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킬 수소탄(수소폭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 보유국이 될 수 있었다”는 발언을 북한 언론이 보도했다. 중국에서 공식적인 반응은 나오지 않았으나 모란봉 악단 공연에 참여하는 중국 지도부의 격을 정치국원에서 부부장(차관)급으로 3,4단계 내렸다는 설이 나왔다.

베이징 숙소의 모란봉 악단
베이징 숙소의 모란봉 악단
12일 오후 7시 반 첫 공연을 앞두고 오전 모란봉 악단 소속 여성 단원들이 숙소인 ‘민주(民族)호텔’에서 짐을 싸서 나와 공연장이 아닌 공항으로 가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들은 1시 출발 예정인 고려항공에 탑승한 뒤 오후 4시 7분경까지 비행기에서 타고 있다가 결국 평양으로 떠났다.

이들의 돌연한 공연 취소 이유에 대해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다. 다만 정식 공연 하루 전인 11일 오후 리허설을 본 중국 지도부가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공연 내용 수정을 요구했으나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즉 공연 내용이 김정은 찬양 일색인데다 무대 배경에는 미사일 발사 장면 등이 나온 것을 중국측이 문제 삼은 것이다.

북한 측은 핵 실험과 중국의 유엔 안보리 제재 참여 국면 속에서 만들어진 ‘모란봉 악단 공연’을 통한 관계 개선 기회를 자신들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정당화하는 기회로 활용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가 끝내 수용하지 않자 공연 수시간 전 취소하고 북한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북한은 이듬해 1월 4차 핵실험을 함으로써 중국에서 ‘모란봉 악단 사태’로 당한 것을 되갚는 듯한 도발을 감행했다.

모란봉 악단은 극적인 북중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수도 있었지만 기대가 큰 만큼 더욱 낙차가 크게 관계를 악화시키는 ‘독을 품은 장미’가 됐다.

남북 양국이 함께 평창 동계 올림픽을 치르고 모란봉 악단이 흥을 돋우게 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베이징 소동’에서 보듯 ‘모란봉 악단’ 공연이 어떤 뜨거운 감자가 되지 않도록 한 걸음씩 신중히 다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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