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종의 오비추어리] ‘펀(fun)경영’으로 성공한 일본 벤처의 대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1일 13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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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바제작소 창업주 호리바 마사오. 사진 출처 : 산케이웨스트
호리바제작소 창업주 호리바 마사오. 사진 출처 : 산케이웨스트

‘일본 벤처의 대부’로 불리는 ‘호리바 제작소’ 창업주 호리바 마사오(堀場 雅夫)가 2015년 7월 14일 타계했다. 향년 91세.

호리바 제작소는 자동차, 환경, 과학, 의료 등의 분야에 필요한 다양한 계측기기를 제작하는 기업이다. 자동차 배기가스 측정장치는 세계시장 점유율이 무려 80%에 달한다. 호리바는 대학생 시절 창업해 1953년 정식 법인을 설립한 뒤 기업을 키웠다. 호리바 제작소는 창사 이래 단 한번도 적자를 내지 않은 기록을 갖고 있다. 2015년 매출액 14억 달러(약 1조 6000억 원)를 기록했고 임직원은 6000명 정도다. 호리바는 회사 규모가 커진 뒤에도 벤처 정신을 잊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 ‘벤처 대부’로 불렸다.

● 호기심 많은 핵물리학도

1924년 12월 교토에서 태어난 호리바는 어릴 때부터 무선 전기기관차, 모형 비행기 등에 관심이 많았다. 고교 시절 ‘모든 물질은 원자로 구성돼 있다’는 말을 듣고 교토대 원자핵물리학과에 진학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일본의 원자핵물리 연구를 금지하자 그는 1945년 10월 호리바 무선연구소를 세워 전자기기 회로설계 연구에 매진했다.

호리바 무선연구소는 돈을 벌진 못했다. 그는 생계 수단으로 라디오 등 가전제품을 수리했으나 곧 한계를 절감하고 신제품 개발에 뛰어 들었다. 당시 일본은 전후 상황이라 전기 사정이 좋지 못했다. 호리바는 축전기를 개발했고 이 제품은 상당한 히트를 쳤다. 이후 한 대학병원은 그에게 의료용 발진기(교류 전기를 발생시키는 장치) 제작을 의뢰했다. 호리바는 자체 개발한 발진기를 납품했으나 수술 도중 고장이 났다. 고장 원인은 교류를 직류로 만드는 콘덴서 불량 때문이었다. 그는 아예 콘덴서 개발에 뛰어들었고 여기서 얻은 명성으로 1953년 1월 지역 인사 7명에게 출자를 받아 호리바 제작소를 세웠다.

호리바 제작소는 연구개발(R&D) 중심 기업이었다. 1957년 적외선 가스 분석계 ‘GA Model’를 개발했다. 1964년 자동차 배기가스 측정기 ‘MEXA’를 출시했다. 호리바는 자동차 배기가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을 일찌감치 예측했다. 1975년 미국 환경보호청(EPA)에 자동차 배기가스 측정 시스템을 납품했다. ‘MEXA’는 국제적인 표준 기기로 자리 잡으면서 호리바제작소는 배기가스 측정 분야 세계 1등 기업에 올랐다.

● “틈새시장을 공략하라”

호리바는 평소 “무리한 대기업과의 경쟁을 피하고 작은 시장에 진입해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라”며 ‘틈새시장’ 개척을 강조했다. 호리바제작소는 자동차 배기가스 측정기기 개발도 다른 기업들이 별로 관심을 두지 않던 분야였다. 호리바는 자동차 판매량 증가와 맞물려 전 세계적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을 예측하고 배기가스 측정 장치를 개발했다.

호리바 제작소는 반려동물의 혈당 측정기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면서 운동부족으로 당뇨병에 걸리는 반려 동물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 거였다. 하지만 당뇨병에 걸린 반려 동물을 치료하기에 앞서 혈당을 측정하려면 사람처럼 대형 원심분리기를 사용해야 했다. 반려 동물은 인간과 달리 대형 원심분리기를 활용할 정도로 많은 피를 뽑을 수 없었다. 호리바는 이에 동물의 피 한 방울로 45초 만에 혈당을 측정할 수 있는 기기를 개발했다. 반려동물 의료기기 시장이 매년 10%씩 성장하면서 호리바 제작소도 큰 성장을 기록했다.

호리바는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누출사고도 기회로 봤다. 기존 교육용 방사능검출기를 개량해 일반인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사능검출기를 시장에 내놓았다. 이 제품은 2011, 2012년에만 4만7000대나 팔렸다. 호리바 제작소는 여기에 위성항법장치(GPS)까지 부착해 소비자들이 직접 방사능지도를 만들 수 있는 기능까지 추가했다.

● 도전, 재미 추구하는 진정한 기업인

호리바 제작소 본사 엘리베이터 벽에는 ‘재미있고 즐겁게(Joy and Fun)’라는 사훈이 써 있다. 호리바는 이 문구를 1978년 사훈으로 정하고 임직원들의 DNA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기업 연수원 이름이 ‘펀 하우스(Fun House)’일 정도다.

호리바는 “정말 그 일이 하고 싶어 참을 수가 없는 사람들이 들어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경영진의 역할이 업무시간을 직원들이 인생에서 소중한 시간으로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호리바 제작소는 1968년 당시 중소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주 5일제를 도입했다. 호리바는 인상된 인건비만큼 생산성을 올리는 방안을 노조와 협력해 경영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만들었다.

호리바는 생전에 “기업은 비행기를 닮아 엔진이 멈추면 추락한다. 현상 유지는 기업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이런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힘의 근원은 인간의 욕심이다. 욕심은 결코 악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끊임없는 도전 정신이 오늘의 호리바 제작소를 만든 셈이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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