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특파원의 글로벌 이슈&]미국 러스트벨트의 경고, ‘2차 일자리 한파 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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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 근처의 시티즌M 호텔. 호텔 로비 중앙에 투숙객들이 직접 체크인을 하는 키오스크가 놓여 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 근처의 시티즌M 호텔. 호텔 로비 중앙에 투숙객들이 직접 체크인을 하는 키오스크가 놓여 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박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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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 브로드웨이와 50가 사이의 시티즌M 호텔. 입구에 들어선 젊은 커플이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로비처럼 컴퓨터와 소파, 카페, 책장 등으로 꾸며진 로비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2008년 네덜란드에서 창업해 뉴욕까지 진출한 이 호텔은 정보기술(IT)에 익숙한 젊은이들을 사로잡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호텔시장에서 살아남았다.

이 호텔 투숙객들은 로비에 설치된 키오스크에서 예약 내용을 직접 확인하고 원하는 방을 고른다. 이어 빈 카드로 직접 호텔 출입 카드도 만든다. 피곤한 몸과 큰 짐을 끌고 프런트 데스크 앞에 줄을 설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호텔은 고객 응대를 위한 인건비를 줄여 1박에 200달러대 ‘중저가 럭셔리 호텔’이라는 틈새시장을 개척했다.

시티즌M 호텔은 IT가 바꾸는 서비스업과 일자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블루오션 전략의 공동 저자인 르네 마보안 프랑스 인시아드경영대학원 교수는 2015년 서울에서 열린 동아비즈니스포럼에서 이 호텔을 서비스 혁신의 대표 사례로 꼽았다.

하지만 전 세계 부자와 관광객이 돈을 쓰러 모여드는 뉴욕이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지지 기반인 미국 중서부의 러스트벨트(Rust belt·쇠락한 공업도시) 지역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제조업에 이어 서비스업을 강타하고 있는 자동화 트렌드는 낙후된 중소도시 자영업자의 생계를 위협한다.

미국의 철강 도시인 펜실베이니아 주 존스타운에서 옷가게 ‘울랄라(Ooh La La)’를 운영하는 돈 네이스위치 씨(53)는 서비스업 자동화의 대표적인 피해자. 지역 경제를 떠받치고 있던 제철소와 자동차 부품회사들이 무너지고 아마존 같은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면서 가게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53세인 나는 수입이 필요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미국 러스트벨트 소도시들이 제조업 일자리 감소에 이어 서비스업이 위축되는 ‘2차 일자리 한파’를 겪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미국에서 월마트 등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을 무너뜨린다는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값싼 물건을 공급하고 임금을 주는 일자리를 만드는 순기능도 있었다. 아마존 등 온라인 쇼핑 회사엔 러스트벨트의 문 닫은 사장님들을 위한 일자리가 거의 없다. 이 회사들은 주로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같은 대도시에서 엔지니어, 마케팅 같은 전문직을 주로 채용한다. 아마존의 물류센터 등도 피츠버그 같은 대도시로 간다. 그러니 중소도시는 일자리 공동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오죽했으면 도소매 시장과 일자리를 꽁꽁 얼리는 ‘아마존 핵겨울’이라는 말까지 나올까.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까지 오른다면 어떻게 될까. 미주리주의 사례가 힌트를 준다. 공화당 소속의 에릭 그레이턴스 미주리 주지사는 최근 세인트루이스시의 시간당 최저임금을 10달러에서 7.70달러로 깎는 법안을 수용했다. 그레이턴스 지사는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죽이고 호주머니의 돈을 빼간다”고 주장했다.

요식업 등에 한정해 조사한 기존 연구는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근 시애틀의 시간당 19달러 미만을 받는 전체 저임금 노동자를 대상으로 워싱턴주립대가 분석을 확장한 결과 다른 결론이 나왔다. 지난해 시애틀의 최저임금 인상(11달러에서 13달러 상승)이 저소득층 근로자의 소득을 6.6%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자들이 시간당 임금이 오르자 저숙련 노동자들의 근무시간을 줄였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월 노동장관으로 지명했던 앤드루 퍼즈더 CKE레스토랑 최고경영자(CEO)는 “강력한 기술 경제를 보유하지 못한 주에서 (미주리주 같은) 움직임이 더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를 향해 가는 한국의 서비스업은 2차 일자리 한파에 대비가 돼 있는 걸까. 미 러스트벨트는 세계화와 자동화로 사라지는 일자리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 미주리주는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최저임금 인상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선의와 의욕만 앞세우면 서울 중구 무교동 맥도날드 매장처럼 햄버거 주문기계만 늘어나는 걸 보게 될지 모른다.
 
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미국 러스트벨트의 경고#2차 일자리 한파#시티즌m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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