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Special Report]“내가 해봐서 아는데…” 꼰대가 조직을 망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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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들의 꼰대문화와 극복방안

‘내가 누군지 알아?(who), 뭘 안다고?(what), 어딜 감히(where), 내가 왕년에는(when), 어떻게 감히(how), 내가 그걸 왜?(why).’

인터넷 유머게시판을 한때 휩쓸었던 이른바 ‘꼰대 육하원칙’이다. 유머로 소비되던 내용이지만 조직문화를 고민하고 인재 이탈에 심각성을 느끼고 있는 경영자들이라면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현실이다. 최근 기업의 큰 고민거리로 떠오른 ‘퇴사열풍’도 꼰대문화와 관련이 있다. 수평적인 문화를 선호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직장인들이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문화를 견디지 못해 조직을 떠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 데이터로도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직장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 설문조사에서 기업문화로 인해 이직이나 퇴사를 결정하게 된다는 직장인이 53.9%에 달했다. 또 3명 중 1명은 ‘퇴사 결정의 70% 이상이 기업문화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2017년 이뤄진 또 다른 조사에서는 ‘회사 조직 내에 꼰대가 존재하느냐’는 질문에 90%가 ‘그렇다’고 답했다.

조직건강 진단 및 자문회사 이머징의 공동창업자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기도 한 이경민 공동대표는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와 꼰대 증세를 보이는 수많은 사람이 과거부터 존재해 왔지만 최근 들어 유난히 문제가 되고 있다”며 “환경 변화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면서 과거에 머무른 채 변화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249호(2018년 5월 15일자) 스페셜리포트를 통해 기업의 관리자와 리더들이 내면의 ‘꼰대성’을 극복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현자’로 거듭나기 위한 솔루션을 제시했다. 그 핵심 내용을 요약해 싣는다.

○ 꼰대의 특성과 ‘꼰대 비용’

이 대표는 정신의학적 분석을 통해 꼰대의 세 가지 특징을 짚어냈다. 첫째는 ‘사고의 경직성’이다. 사고의 경직성은 경험에 의해 형성되는 각자의 인식 틀이 굳어지면서 다른 틀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표현되는 ‘자기 경험에 대한 맹신’이 더욱 강해지면 ‘꼰대의 길’로 접어든다는 뜻이다.

꼰대의 두 번째 특징은 ‘공감 부족’이다. 정신의학적으로 ‘동감(sympathy)’과 ‘공감(empathy)’은 다른 개념이다. 슬픈 영화를 보고 ‘슬프다’고 느끼는 것은 동감이고 영화 속 비극의 주인공에게 완전히 감정이 이입되는 게 공감이다. 동감에서도 ‘이타심’은 발현되지만 ‘역지사지’까지는 이르지 못하기에 ‘나만의 정답’을 계속 알려주고 싶어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꼰대는 일반적으로 동감도 공감도 하지 못하거나 최소한 동감은 할 수 있지만 공감까지는 하지 못하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꼰대의 세 번째 특징은 ‘강한 인정 욕구’다. 팀원에게 자신이 경험한 성공 방정식을 알려주고 그 방정식이 지금도 유용하다는 걸 확인받는 과정에서 꼰대들은 큰 만족감을 얻는다. 최근 심리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존감이 떨어져 있거나 일이 잘 안 풀리고 있는 시기에 자신의 방식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성향은 더 강해진다. 과거 성공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꼰대질’이 더 강해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다.

이머징의 장은지 공동대표는 바로 이 같은 ‘꼰대 특성’이 조직의 ‘꼰대 비용’을 낳는다고 지적한다. 인재 이탈, 창의성 및 몰입도 저하, 비효율적 업무 처리 등이 대표적인 꼰대 비용이다. 특히 다수 기업에서 고객 가치 창출과 무관한 ‘보여주기식 절차와 업무’에 쓰는 시간이 40%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는 조직이 지불해야 할 꼰대 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 꼰대 극복법

국내 최고의 리더십 전문가인 정동일 연세대 교수는 오랜 리더십 강의와 자문 경험을 토대로 세 가지의 ‘꼰대 극복법’을 제시한다. 첫째, 혼자 결론 내리고 가르치려 하는 꼰대 같은 행동이 나를 고립시키고 리더로서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수평적인 사고를 하며 상대를 존중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게 후배를 위한 배려나 희생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일임을 깨달아야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 후배가 제안서를 들고 오면 바로 빨간 펜을 들고 화를 내며 고치기보다 일단 장점을 말해주고 보완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둘째, 비교의 대상을 바꿔야 한다. 정 교수는 “리더십 강의가 끝나고 나면 팀장이나 임원이 찾아와서 ‘권한 위임을 하고 싶어도 믿고 맡길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런 생각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팀장 입장에서 자신과 김 대리를 지금 시점에서 비교하면 부하 직원의 역량이 당연히 미흡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공정하게 비교하려면 ‘내가 대리였던 시절’로 되돌아가 당시 나의 역량과 지금의 김 대리 역량을 비교해야 한다. 이렇게 합리적으로 비교 대상을 바꾸기만 해도 신뢰가 커지고 현재의 부하직원이 믿음직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셋째는 주변 사람들에게 가볍게, 하지만 구체적으로 자신이 현재 어떤 부분에서 일을 잘 하고 있는지, 부족한 건 무엇인지 물어봐야 한다. 정 교수는 “개선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면에 숨겨진 꼰대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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