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블루오션 창출, 기존시장 파괴가 필수는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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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위찬 佛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

신작 ‘블루오션 시프트’를 출간한 김위찬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 10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만난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기업에 중요한 것은 가치 혁신과 비파괴적 창출”이라고 말했다.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신작 ‘블루오션 시프트’를 출간한 김위찬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 10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만난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기업에 중요한 것은 가치 혁신과 비파괴적 창출”이라고 말했다.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근본 원리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에도 혁신적인 제품 및 서비스를 저원가로 제공하는 ‘가치 혁신’을 선도하는 기업이 번영할 것이다.”

2005년 ‘블루오션 전략’으로 경영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김위찬 프랑스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 석좌교수가 최근 르네 마보안 인시아드 교수와 함께 출간한 책 ‘블루오션 시프트(Blue Ocean Shift)’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김 교수와 마보안 교수는 지난 10여 년 동안 블루오션 전략을 적용한 다양한 기업 및 기관들의 사례를 분석해 블루오션 전략의 구체적인 ‘실행 매뉴얼’을 제시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10일 한국을 방문한 김 교수와 만나 기업들이 블루오션으로 이동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이 무엇인지 물었다. DBR 241호(1월 2호)에 실린 인터뷰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블루오션 전략을 적용했다가 실패한 기업들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나.

“기존 레드오션 관점을 버리지 못하면 블루오션 창출에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 블루오션적 관점을 갖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을 탐색하는 블루오션 팀에 관련 부서원들이나 이해관계자들을 처음부터 참여시켜야 한다. 한 유럽 회사의 예를 들어보자. 이 회사는 다리미 시장에서 비(非)고객으로 여겨졌던 남성층을 공략해 블루오션을 창출하려 했다. 자취를 오래 한 남성일수록 다리미질을 매우 싫어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별도의 다림판 없이도 주름을 펼 수 있는 스팀다리미를 개발했다. 옷을 걸어놓은 상태에서 스팀다리미를 옷에 문지르면 어느 정도 주름이 펴지는 기능을 갖춘 제품을 개발한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합류한 마케팅팀원들은 남성이 다리미 시장의 고객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과거와 마찬가지로 타깃층을 여성으로 정했다. 스팀다리미를 기존 다리미의 보조 제품으로 홍보하면서 포장 박스에 예쁜 핑크색 줄을 더했다. 남성 고객들이 여성용으로 보이는 스팀다리미에 흥미를 느낄 리 만무했다. 여성들은 불필요한 다리미로 여겼다. 블루오션 팀에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은 조직원이 블루오션 전략을 실행하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

―블루오션 전략을 ‘파괴적 혁신’과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하는 사례도 있다.

“블루오션 창출이 꼭 파괴적일 필요는 없다. 물론 스마트폰이 등장한 후 피처폰이 사라졌고,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고 나서 필름카메라가 사라졌듯이 신기술 때문에 기존 시장이 파괴되는 현상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 시장을 파괴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블루오션을 만들 수 있다. 유명 주방기기 브랜드 테팔을 보유한 다국적 기업 세브(SEB)의 감자튀김기 ‘액티프라이’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회사는 감자튀김을 한 번 조리하는 데 평균 2.5L의 식용유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 쓴 식용유는 환경에 악영향을 끼쳤다. 더 큰 문제는 식용유를 많이 써서 만든 감자튀김이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점이다. 세브는 2006년 튀기지 않고도 좋은 맛을 내는 감자튀김기를 개발했다. 이 기계로 만든 감자튀김은 칼로리가 40% 줄었고, 지방이 80%나 감소했다. 식감도 훌륭했다. 액티프라이는 기존 시장을 파괴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자튀김 요리를 하지 않았던 비고객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신용대출인 마이크로파이낸스 사업도 마찬가지다. 취약계층은 큰 혜택을 얻었지만 기존 금융회사들은 이로 인해 타격을 입지 않았다. 오히려 시중 은행들이 마이크로파이낸스 사업을 통해 추가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가치 혁신을 이뤄내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면서 동시에 일자리도 만들어낸다. 블루오션 창출이 꼭 파괴적일 필요가 없다. 이제 비파괴적 혁신에 집중해야 한다.”

―어떻게 비파괴적 혁신을 달성할 수 있나.

“차별화된 가치를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해야 한다. 과거 경영학자들은 차별화나 저비용 가운데 하나의 전략만 추진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면 차별화된 고객가치를 낮은 비용으로 제공할 수 있다. 고급 5성급 호텔에 견줄 만한 서비스로 각광받고 있는 3성급 시티즌M호텔 사례를 보자. 시티즌M호텔은 5성급에 견줄 만한 침대와 샤워 시설을 설치하는 대신 가격을 낮추고 객실 크기를 축소했다. 관광객들이 오히려 성가시다고 느끼는 벨보이나 도어맨 서비스는 아예 없앴다. 대기 시간이 긴 프런트 데스크도 과감히 없앤 대신 셀프 체크인 단말기를 설치했다. 어떤 일이든 도와주는 ‘앰배서더’라는 새로운 직원을 배치했다. 그 결과 객실 이용률은 90%에 달했고 인건비는 업계 평균의 절반으로 낮췄다. 시티즌M호텔은 ‘저렴한 가격대의 고급 호텔’이라는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했다.”

―차별적인 고객 가치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을 수 있나.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등 새로운 기술을 통해 혁신을 이뤄낼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기술은 필요조건이 아닌 충분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혁신적 기술을 활용한다고 언제나 가치 혁신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혁신적 기술 없이도 혁신이 가능하다. 현장 체험을 통해 새로운 서비스를 발굴한 미국의 한 대형 약국 체인 사례를 살펴보자. 이 회사 임원 10여 명은 인후염에 걸렸다고 가정한 뒤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약국으로 이동해 처방받은 약을 타오는 과정을 직접 체험해봤다. 집에서 병원으로 이동한 후 약국에 들렀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무려 6시간이나 걸렸다. 진료시간은 10분에 불과했지만 거리가 멀고 교통상황이 좋지 않아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 결과를 보고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들은 약국에서도 처방전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고, 의사보다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낮으면서 처방전을 쓸 수 있는 간호사를 약국마다 고용해 고객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였다. 빅데이터나 첨단 기술에 의존하지 않아도 현장에 집중하면 새로운 시장 창출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

―‘블루오션 전략’을 낸 지 12년 만에 ‘블루오션 시프트’를 출간한 배경은 무엇인가.

“천재와 같은 특별한 사람만이 블루오션 창출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방법론을 충실히 따라 하면 보통 사람들도 새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많은 기업들이 블루오션 전략의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실행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블루오션 전략을 실행한 기업들의 다양한 사례를 분석해 구체적인 실행 방법론을 도출했다. 블루오션 시프트는 블루오션 창출에 성공하기 위한 창조적 역량을 기르는 도구다.”

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블루오션#김위찬#프랑스#인시아드#경영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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