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호의 밀리터리 포스]對北 내재적 접근법이 능사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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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8일 서울 종로구 KT 앞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환영하자는 목적으로 결성된 백두칭송위원회 회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11월 18일 서울 종로구 KT 앞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환영하자는 목적으로 결성된 백두칭송위원회 회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냉혹하지만 한번 약속을 하면 믿을 수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1938년 봄 영국 총리 체임벌린은 독일 총통 히틀러를 이렇게 평가했다. 뮌헨에서 히틀러를 만나 평화선언에 서명한 직후였다. 당시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독일인 다수 거주지역(수데텐)을 내어주면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체임벌린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1년 뒤 히틀러는 폴란드를 기습 침공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프랑스가 속절없이 나치 수중에 떨어졌고, 영국마저 사면초가에 빠졌다. 수백만 명이 희생된 인류사의 비극은 ‘거짓 평화’의 값비싼 대가로 판명 났다.

당시 유럽 각국은 히틀러와 나치의 입장을 고려해주면 타협이 가능할 걸로 봤다. 1차 세계대전 패배의 굴욕과 정치경제적 혼란을 자양분으로 창궐한 독일 나치즘을 ‘적절한 거래’로 견제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히틀러가 내밀었던 ‘거래 조건’도 전쟁을 피하려는 합리적 대안으로 여겨졌다. 나치 입장에선 이유도, 명분도 없는 유럽 침략을 감행할 리 없다는 견해가 팽배했다. 히틀러와 나치에 대한 맹목적 이해가 2차대전을 초래한 주범이라고 역사는 기록한다.

올 초부터 남북 화해무드와 북-미 비핵화 대화가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의 대북 인식에 변화 기류가 뚜렷하다. 4·27 남북 정상회담 직후 한 여론조사에선 ‘북한을 신뢰하게 됐다’고 답한 응답자가 절반을 넘었다. 같은 민족인 북한을 ‘평화 동반자’로 삼아 한반도 냉전을 해체하자는 진보 진영의 구호가 곳곳에 울려 퍼진다. 서울 한복판에서 ‘김정은’을 연호하고 칭송하며 답방 환영 집회까지 열리는 판국이다.

북한을 외부의 잣대가 아닌 내부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어느 때보다 크다. 일부 진보 성향의 전문가들은 내재적 접근에 기반을 둔 대북정책을 한반도 평화통일의 지름길로 제시한다. 북한 체제를 인정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속사정’을 들여다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 방식은 북한의 오류와 도발도 정당화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 북한을 오래 연구하고, 방북 경험이 많은 일부 학자와 정치인들이 3대 세습과 선군정치의 실정(失政)은 물론이고 인권 유린도 북한 입장에서 살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그 사례다. 이들은 제1·2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이 도발한 것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고수하며 군사적 긴장을 높인 남측의 책임도 크다고 지적한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북핵 문제도 이런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개발한 것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서 체제를 지키려는 불가피한 선택이자 당연한 수순이라는 식이다. 이 관점에선 북한의 핵은 ‘실전용’이 아닌 대미 협상수단이고, 핵·미사일 도발과 핵전쟁 협박도 대화를 종용하는 ‘제스처’로 순치된다. 반면 방어적 성격의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대북 무력시위이자 전쟁연습이고, 북한에 공포를 주는 주한미군과 한미연합사령부는 각각 철수하고 해체해야 할 대상이다. 결국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미국의 체제 보장과 북-미 관계 정상화를 통해 북한의 안보 우려부터 해소해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과연 그런가. 궤변이라고 필자는 본다. 북한이 핵에 ‘올인(다걸기)’한 것은 무엇보다 한미 재래식 전력의 질적 우세를 상쇄하려는 군사적 목적이 크기 때문이다. 주요 고비마다 비핵화 협상판을 뒤엎고 ‘살라미 전술’로 시간을 벌어 핵무기고(핵탄두, 핵물질, 미사일)를 꾸준히 늘려온 것이 그 증거다. 북한의 핵은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이고, 유사시 사용 가능한 무기로 보는 게 타당하다.

북한의 안보 우려도 ‘팩트’가 왜곡됐다. 휴전 이후 2016년까지 북한은 3000건이 넘는 대남도발(침투도발 1970여 건, 국지도발 1110여 건)을 감행했다. 전면전으로 확전될 수 있었던 중대 도발도 부지기수다. 그로 인한 인적 물적 피해와 안보 불안은 온전히 대한민국의 몫이었다. 미국이 한국과 상의 없이 대북 군사행동에 나설 수 없다는 점에서 북한 관점의 대미 위협론도 근거가 미약하다.

북한의 진정성이 확인되지 않는 마당에 내재적 관점에 치우친 대북정책은 비핵화를 더디게 하고, 안보태세에도 악영향을 끼칠 개연성이 크다. 지금은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고 거들기보다 대남 화해 공세의 이면을 잘 따져보고, 군사합의 이행을 철저히 검증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냉철한 판단과 치밀한 안보전략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sh1005@donga.com
#북미 비핵화 대화#남북 정상회담#북핵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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