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프렌치 요리계의 엄친아 장프랑수아 피에주, 제주서 ‘한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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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인의 미식견문록

장 프랑수아 피에주 셰프가 자신의 레스토랑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다. 피에주 셰프는 “한국에 프랑스의 요리라는 문화유산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바앤다이닝·해비치호텔 제공
장 프랑수아 피에주 셰프가 자신의 레스토랑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다. 피에주 셰프는 “한국에 프랑스의 요리라는 문화유산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바앤다이닝·해비치호텔 제공
정원사를 꿈꾸던 소년은 채소를 좋아하다 요리사가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20대가 되어서는 당대를 주름잡던 알랭 뒤카스 셰프 아래 혹독하게 요리를 익혔고,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셰프라는 영예와 함께 30대를 시작했다. 지금 파리를 대표하고 프랑스가 주목하는 프렌치 요리계의 엄친아, 장프랑수아 피에주 셰프를 제주에서 마주했다.

“제주에 와서 너무 기쁩니다. 저는 프랑스 요리사 장프랑수아 피에주입니다.”

프랑스 ‘르 그랑 레스토랑’의 주방 모습. 바앤다이닝·해비치호텔 제공
프랑스 ‘르 그랑 레스토랑’의 주방 모습. 바앤다이닝·해비치호텔 제공
5월 제주 해비치호텔에서 만난 커다란 눈망울의 프랑스인 셰프는 “프랑스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힘주어 말했다. 프랑스 남부 발랑스 출신인 그는 알랭 뒤카스를 이을 프랑스의 대표적인 셰프로 주목받고 있다. 2015년에 오픈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르 그랑 레스토랑(Le Grand Restaurant)’이 5개월 후 곧바로 미쉐린 별 두 개를 받았고, 또 다른 레스토랑 ‘클로버(Clover)’는 제철 채소 요리를, ‘클로버 그릴(Clover Grill)’은 숯불 요리를 선보이며 파리의 캐주얼 다이닝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그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비치 호텔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갈라 디너 셰프로 초청됐다. 호텔은 그를 초청하기 위해 무려 1년 동안 공을 들였다고. 호텔 관계자는 “해비치의 프렌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인 ‘밀리우’를 준비할 때 영감을 받은 셰프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밀리우’의 2주년이기도 한 시점에 딱 맞는 셰프를 초대한 셈이다.

그는 해외 방문을 잘 하지 않기로 유명한 셰프다. 여행이 싫어서가 아니라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요리 퀄리티를 위해 가급적 레스토랑을 지키는 편이다. 서른 시간이 걸린 이번 제주행을 감행한 이유로 말문을 열었다. “프랑스 요리를 해달라고 초대받았지만 실상은 요리라는 ‘프랑스 문화유산’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도 오랜 역사만큼 문화가 깊은 나라로 평소 관심이 많았습니다.”



―요리사로서 프랑스 문화유산의 수호자이고 싶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프랑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국적이거나 이색적인 요리를 추구하고 선호한다. 요리사들은 다른 나라의 요리에 관심을 가지고 영향을 받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는 프랑스 고유의 요리 유산을 유지하면서 이를 현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렌치가 세계 최고여서가 아니라, 내가 프랑스인으로서 제일 잘하는 것이 프랑스 요리이기에 나의 정체성인 프렌치의 고유성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발효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많은 이들이 김치를 연구하고 요리에 응용한다. 하지만 제주에서 김치를 맛보니 프랑스의 것과 많이 달랐다. 프랑스의 김치가 보여주기 식이라면 제주의 것은 문화가 담긴 맛이었다. 당연히 제주의 것이 맛있었다.”

―셰프가 생각하는 프랑스다운 요리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최상의 재료로 가장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 단, 내 경우에는 한 접시에 담긴 요리가 3가지 맛을 넘지 않도록 한다. 또 향신료 등으로 원재료의 맛을 해치지 않고 재료의 고유한 맛이 살아 있어야 한다. 송아지 요리라면 송아지의 맛이 나야 한다.”

―당신이 주창한 새로운 프렌치 조리법 ‘미조테 모데른’이란 무엇인가.


“프랑스 요리의 가장 큰 정체성은 ‘퀴숑(익힘 정도·Cuisson)’에 있다고 생각한다. ‘미조테(Mijoter)’는 프랑스어로 ‘약한 불로 천천히 정성껏 조리한다, 익힌다’라는 의미다. ‘미조테 모데른(Mijoter Moderne)’은 이러한 프렌치 퀴진의 아이덴티티를 계승하되 나만의 방식을 연구해 모던하게 발전시킨 것이다. 아무리 완성도 높은 맛이라고 해도 새로울 것이 없거나 요리가 나올 때까지 오래도록 기다려야 한다면 굳이 파인 다이닝을 찾지 않을 것이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미리 준비하고 결과물에는 자신만의 독창성을 담아 서비스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을 연구해 시도하는 것이 미조테 모데른이다. 내 메뉴 중에서 송아지를 호두껍질 위에서, 오리를 올리브 씨 위에 올려서, 염소 고기를 밤 위에서 조리한 것들이 미조테 모데른을 반영한 대표적인 요리들이다.”

―그렇다면 요리 창작을 위한 영감은 어디서 얻나.


“요리를 위해 특별한 연구를 한다기보다는 ‘삶의 방식’ 자체를 ‘요리 방식’으로 승화시키는 편이다. ‘요리는 자연을 듣는 것’이라고나 할까. 예를 들면 내가 만드는 디저트 중에 산딸기와 소나무를 같이 사용하는 것이 있다. 프랑스에서 숲을 걷다 보면 소나무 아래 산딸기가 자라는 걸 볼 수 있는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두 재료를 요리에도 함께 올리는 식이다. 자연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

피에주 셰프가 걸어온 전적은 한마디로 ‘프랑스 요리계의 엄친아’다. 14세에 요리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20대 초반에 알랭 뒤카스 셰프의 레스토랑 ‘루이 엑스브이 Louis XV’ 부주방장으로 합류한 뒤 26세에 ‘를레 뒤 파르크’의 주방장(Chef De Cuisine), 30세에 플라자 아테네 호텔의 총주방장을 맡는 파란을 일으키며 12년간 알랭 뒤카스의 오른팔이 되어 일했다. ‘알랭 뒤카스 오 플라자 아테네’가 미쉐린 3스타를 받았을 때 그의 나이 31세였다.

이후 크리용 호텔 레스토랑 ‘레 장바사되르(Les Ambassadeurs)’의 셰프로 5년간 근무했고 이 레스토랑은 미쉐린 별 두 개를 받았다. 2010년 파트너와 함께 부티크 호텔을 오픈하면서 호텔 내 ‘브라스리 토뮤’, ‘장프랑수아 피에주 레스토랑’을 열기도 했지만, 오롯이 자신의 레스토랑으로 독립한 것은 ‘르 그랑 레스토랑’에서부터다. 2015년, 요리를 배우기 시작한 지 꼭 30년 만이었다.

―어릴 적 꿈이 요리사였나.


“어릴 때 꿈은 정원사였다. 풀, 나무에 관심이 많았는데 식재료가 되는 채소류에도 관심이 많았고 자연스레 요리에 관심이 늘어갔다. 프랑스 발랑스 출신인데 지역에서 명성을 떨치던 자크 마니에르 셰프의 영향으로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4세에 요리학교에 진학했다.”

―거장들과 일했다. 지금의 장프랑수아 피에주가 있기까지 가장 영향을 준 셰프는….

“브루노 시리노 셰프는 요리에 대한 사랑과 정확도, 알랭 뒤카스는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 크리스티앙 콩스탕 셰프는 정리, 조직화(Organization)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요리학교의 스승을 포함하여 서로 간의 만남을 통해 지금의 내가 이뤄진 것 같다.”

―오너 셰프가 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보다 일찍 오픈하고 싶은 유혹이나 욕심은 없었나.

“25세 즈음에 기회가 찾아왔는데, 알랭 뒤카스 셰프가 조엘 로부숑의 뒤를 이어 레스토랑을 맡으라고 해 미뤘다. 결과적으로는 늦게 열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삶은 기회의 연속이다. 요즘 젊은 셰프들의 창업 시기가 다소 이르다고 생각한다. 기회가 있을 때 잡는 게 좋다. 하지만 경험을 쌓으며 기다리다 보면 반드시 더 좋은 기회가 온다고 생각한다. 오너가 되고 나면 실수의 결과는 다르다. 손님들이 발길을 돌리고 은행 빚을 갚아야 하는 부담을 고스란히 져야 한다.”

피에주 셰프의 방한은 처음이지만 한국과의 인연은 깊은 편이다. 정확하게는 한국인, 그것도 윤화영 셰프와의 인연이다. 윤 셰프는 해비치 호텔 ‘밀리우’의 오픈 기획을 맡았고, 지금은 부산 해운대에 있는 레스토랑 ‘메르씨엘’의 오너 셰프로 국내 프렌치 파인 다이닝의 중심에 있다. 하지만 유학생 신분으로 처음 경험한 피에주 셰프의 파인 다이닝은 당시 컬처 쇼크와 같은 것이었다고 윤 셰프는 말한다.

“예술사를 공부하려고 파리로 가서 어학원을 다니던 시절이었어요. 같은 반 친구의 초대로 얼떨결에 간 곳이 ‘를레 뒤 파르크’였죠. 프랑스에서 첫 파인 다이닝을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에서 했던 거예요. 당시 주방장이 피에주 셰프였고 그의 요리를 맛본 충격과 감동은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과 같았어요. 미학(美學)을 공부하러 온 사람이 미학(味學)으로 갈아타게 된 계기가 됐죠.”

이후 요리를 공부한 윤 셰프는 피에주 셰프를 찾아가 플라자 아테네 호텔의 주방 실습생으로 들어갔다 다시 그를 따라 크리용 호텔의 주방 실습생으로 옮겨갔다. 윤 셰프를 지켜보던 피에주 셰프는 그에게 고용 비자를 제안해 2년을 같이 일했다. 이후 윤 셰프가 알랭 뒤카스 셰프로부터 고용비자를 발급받은 것도, 파크 하얏트 파리 방돔이나 호텔 포시즌 파리 조지 V에서 경력을 쌓게 된 것도 피에주 셰프의 보이지 않는 배려와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

당시만 해도 흔치 않았을 한국인 실습생을 직원으로 채용해 끝까지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피에주 셰프에게도 윤 셰프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같이 일하는 것이 정말 좋았던 ‘동료’예요. 매우 열정적이고 진지했죠. 제가 깜짝 놀랄 만큼 열심히 했어요.”

냉철한 요리 천재의 모습 이면의 훈훈한 인연. 하지만 키친에서라면 얘기는 달라진다는 것이 윤 셰프의 전언이다. “퀴숑(Cuisson, 익힘 정도)에 대한 피에주 셰프의 엄격함은 1990년대부터 악명을 떨쳤어요. 클래식 요리에 대한 그의 지식과 사랑은 제가 만나본 셰프들 중에서 최고였습니다. 한 번은 주방 통로에서 동료와 소스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피에주 셰프가 ‘잘 모르면 에스코피에(왕들의 요리사라고 불렸던 전설적인 프랑스 요리사)의 요리서적 xx 페이지를 펴봐’라고 말해줄 정도였으니까요.”

이번에 그가 한국을 경험할 시간은 짧았다. 약속한 갈라 디너를 선보이기에도 빠듯했지만, 피에주 셰프는 제주에 도착했을 때 제주 향토 요리를 가장 먼저 접하고 싶다고 했다. 그 나라의 요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전통 음식을 접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강렬하게 인상을 준 한식이 있었나.

“생선 요리 중 옥돔구이를 먹었는데 한 마리를 통째로 반으로 갈라 구워냈다. 한국에선 일반적이라지만 이런 방식의 구이는 처음 경험했다. 맛있고 인상적이었다. 밥 위에 올린 딱새우장도 매우 맛있었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무척 궁금하다.”

클래식과 모던 사이, 전통 프렌치와 글로벌 트렌드 사이 수많은 요리사들이 새로운 갈림길을 찾는 요즘, 피에주 셰프는 ‘프렌치’라는 요리 유산을 계승하는 젊은 수장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많은 요리사들이 전통을 반영한 새로움을 이야기하지만, 피에주 셰프는 새로움을 반영한 전통을 이야기하는 셈이다. “나는 프랑스 요리를 하는 요리사입니다”라는 그의 첫 인사말이 인터뷰를 마칠 때가 돼서야 묵직하게 다가왔다.

박홍인 바앤다이닝 편집장
#장프랑수아 피에주#요리#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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