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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5>이광형 KAIST 교수가 말하는 나의 제자 김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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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5>이광형 KAIST 교수가 말하는 나의 제자 김정주

동아일보입력 2012-04-27 03:00수정 2012-04-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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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대한 비전-실천력 모두 갖춘 공상가
학생으로 CEO로 나를 세번 놀라게 해
넥슨이 지난해 12월 일본 증시에 상장해 주식 평가액만 3조 원이 넘는 거부가 된 김정주 NXC 대표는 앞으로의 성장이 더 기대되는 벤처기업인으로 꼽힌다. 동아일보DB
이광형 교수
1990년대 중반에 국내에서 가장 유행하던 컴퓨터 게임은 테트리스였다. 당시 KAIST 학생 연구실에 가보면 많은 학생이 컴퓨터 모니터 앞에 머리를 가까이 대고 뭔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가가 보면 십중팔구 테트리스 게임이었다. 그러나 그때 대학원생 김정주는 여느 학생들과는 조금 달랐다. 자신은 테트리스를 즐기는 것보다는 인터넷을 이용해 멀리 있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함께 즐길 수 있는 네트워크 게임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인터넷이 보급되기도 전의 일이다.

김정주 학생은 그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머리 색깔을 노랗게 물들이고 귀에는 귀고리가 매달려 반짝이곤 했다. 귀고리도 어느 한쪽에만 달려 있는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공상하는 모습으로 꿈꾸듯 말했다. 말하는 내용이 낯선 것이라서 이상하게 들리기도 하고 가끔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기도 했다. “저렇게 생각하기도 하는구나.”

이처럼 이상한 외모와 생각을 지닌 학생이 만든 것이 넥슨의 첫 작품 ‘바람의 나라’가 됐다. 바람의 나라가 시장에 나올 때는 막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절묘한 타이밍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우연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김정주 학생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 계산돼 있던 것이었다. 미리 앞날을 내다보고 게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상한 것처럼 비치는 일이었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교수님, 저의 회사에서는 피 흘리는 게임을 만들지 않습니다.” 김정주 군이 오래전에 나에게 했던 말이다. 그 후 나는 넥슨의 게임은 다른 회사의 제품에 비해 난폭한 장면이 없을 것이라 믿고 있다. 하지만 나는 게임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제자들이 만든 제품의 내용을 실제로 들여다본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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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넥슨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갈 때였다. 갑자기 본사를 일본으로 옮긴다는 말을 했다. 나중에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게임의 본토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 가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는 일본에 연구소만 만들어도 될 것 같았지만 그는 아예 본사를 옮겨야 한다고 했다. 내가 그 깊은 뜻을 이해한 것은 한참 지난 후의 일이었다. 지금 NXC(넥슨의 홀딩컴퍼니) 매출액의 70% 이상이 외국에서 들어오는 것은 바로 그런 결단의 결과라 볼 수 있다.

김정주 군이 세 번째로 나를 놀라게 한 것은 회사가 완전히 정착한 뒤였다. 본인이 경영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회사는 경영진에게 맡기고 본인은 미래 기획에 관한 일만 한다고 했다. 수천 명이 일하는 회사에는 얼마나 많은 일이 발생할까? 주위에서 회사의 복잡한 일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사람을 가끔 보아왔던 내게는 뜻밖으로 들렸다. 그러더니 얼마 후에는 예술기획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게임산업은 현 경영진이 알아서 하니까 자신은 다음 산업을 고민하기 위해 새로운 공부를 한다고 했다.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40세 안팎의 젊은이 머릿속에서 저와 같은 웅대한 비전과 실천력이 나올 수 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해하기 어렵던 ‘김정주 학생’은 이제 경제전문잡지 포브스 랭킹에 오른 ‘김정주 회장’으로 바뀌어 있다. 이러한 기쁜 소식과 동시에 가끔 나의 가슴을 덜컹하게 만드는 말도 들린다. 게임 중독에 관한 말이다. 물론 이것은 제품을 만든 사람이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자동차를 이용하다가 사고가 났을 때 그 책임이 차를 만든 사람에게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제 사회적 책임도 커졌으니 게임 중독 예방을 위한 연구에 관심을 가질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김 회장은 지금까지 눈부신 성과를 내고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는 인물로 성장했지만 내 눈에는 전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캐주얼한 옷차림에 약간 수줍은 듯, 꿈꾸는 얼굴은 여전하다. 그리고 후배 학생들을 위해 대전 KAIST 캠퍼스에 강의하러 올 때 고속버스를 타고 오는 것도 15년 전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모습들은 아직 그의 성장이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김정주#이광형#넥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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