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 강국들 혼낸 경기력, 60분 내내 유지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한국 아이스하키, 채널원컵 선전… 3경기 155개 슈팅중 143개나 막아
수비 강화해 수문장 부담 줄이고 공격도 백업 멤버 계속 육성해야
NHL 출신 백지선 감독-박용수 코치, 수비-공격 전술 나눠맡아 환상 호흡

평소 영어로 인터뷰를 하던 그가 짧은 한국어로 그간의 심경을 말했다.

“나 정말 힘들었어. 처음 한국에 왔을 때부터 잘하는 팀들이랑 경기 하고 싶었어. 그런데 다들 ‘안 해, 싫어’라고 했어. 그래서 결심했어. 우리 수준을 높여서 다시 도전하자고. 이 자리에 선 우리 선수들이 너무 자랑스러워.”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높은 팀들이랑 경기하니까 정말 좋아지잖아. 우리 팀, 더 좋아질 수 있어.”

16일 남자 아이스하키 세계랭킹 3위 스웨덴과의 경기가 끝난 뒤 한국대표팀 백지선(캐나다명 짐 팩·50) 감독은 외국 기자들에겐 “매 경기를 치르며 발전을 거듭하는 게 우리의 목표다. 경험이 쌓이면서 선수들이 자신감을 얻고 있다”고 담담히 말했다.

하지만 한국 기자들을 따로 만난 자리에서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은 이날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2017 유로하키투어 채널원컵 스웨덴과의 최종 3차전에서 1-5로 역전패했다. 하지만 내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세계랭킹 1위 캐나다(14일 2-4 패), 4위 핀란드(15일 1-4 패)전에 이어 선전을 이어갔다.

대회 전만 해도 한국이 두 자릿수 점수차로 지지만 않아도 잘한 것이라는 평가가 우세했다. 그렇지만 한국은 사상 처음 상대해 보는 아이스하키 강국들을 상대로 세 경기 모두 경기 중반까지 앞서 나가는 저력을 보였다.

한국은 유럽의 아이스하키 선진국들만 출전하는 이 대회에 캐나다와 함께 초청을 받았다. 평창 올림픽 주최국이라는 프리미엄에 올 초 톱 디비전(1부 리그) 진출에 성공한 성과가 보태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백 감독과 그를 보좌하는 박용수(미국명 리처드 박·41) 코치가 있다.

한 핀란드 아이스하키 관계자는 “한국 아이스하키가 가장 잘한 일은 백 감독을 사령탑으로 데려온 것”이라고 했다. 동양인 최초로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에서 뛰었던 백 감독은 2014년 7월 부임과 동시에 NHL 정규시즌 738경기에서 241포인트(102골, 139어시스트)를 기록한 박 코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후 백지선-박용수가 이끈 한국대표팀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팀으로 성장했다.

빠른 스피드와 조직력을 추구하는 백지선 아이스하키를 위해 박 코치는 미국 트레이닝 전문업체 ‘엑소스(EXOS)’의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해 아이스하키 선수에게 필요한 근력과 순발력을 키웠다.

둘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백 감독이 대표팀이 나아가야 할 큰 방향을 설정하면 박 코치는 디테일과 기술을 가르친다. 수비수였던 백 감독이 수비 전문이라면, 공격수였던 박 코치는 파워플레이 등 공격 전술을 짠다. 형, 동생 하는 사이인 둘은 수많은 대화를 통해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

박 코치는 “우리가 세계 톱 레벨 팀들을 압도하는 시간도 분명 있었다. 3피리어드 60분 내내 좋은 점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평창 올림픽까지 남은 시간 동안 형님(백 감독)을 도와 부족한 부분을 잘 채워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드러난 과제는 분명하다. 먼저 골리 맷 달튼의 원맨쇼를 줄여야 한다. 달튼은 세 경기 동안 155개의 유효 슈팅 가운데 143개를 막아내며 세이브 성공률 0.923을 기록했다. 달튼의 방어력은 한국팀에는 분명 플러스 요인이다. 하지만 달튼만 바라보다 흔들릴 경우 속절없이 무너질 우려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근본적으로 수비 조직력을 끌어올려 상대 슈팅 시도를 떨어뜨려야 한다. 아울러 공격력 강화를 통해 쉴 새 없이 상대 문전을 위협하며 득점 기회를 노리는 것이 숙제다. 한국은 공격에서 18번의 파워플레이 기회를 한 번도 득점으로 연결하지 못했다. 김상욱-김기성-테스트위드가 버티는 1라인은 상대방에게 크게 뒤지지 않았지만 백업 멤버는 이들과 기량 차가 컸다. 백업 멤버 육성이 절실하다.

이에 대한 해법이라도 꿰고 있는 것일까. 백 감독의 말에는 힘이 넘쳤다. “내가 평창 올림픽 목표가 금메달이라고 말하면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누구도 지기 위해 경기하진 않는다. 아무도 모르는 게 하키다. 불과 2년 전을 생각하면 한국 하키가 이렇게 발전하리라 누가 생각했겠는가. 평창에서는 깜짝 놀랄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스크바=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백지선#박용수#평창#평창올림픽#올림픽#아이스하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