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꺾인 러, 스포츠영화로 ‘애국심 호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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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개봉 ‘고잉 버티컬’ 관람 독려
1972 뮌헨올림픽 남자농구 결승전… 미국 꺾고 처음 우승한 소련팀 다뤄
美는 “명백한 오심 경기” 논란 남아

러시아의 영광스러운 순간(1972년 뮌헨 올림픽 남자농구 금메달)을 소재로 한 영화 ‘고잉 버티컬(Going Vertical)’ 포스터.
러시아의 영광스러운 순간(1972년 뮌헨 올림픽 남자농구 금메달)을 소재로 한 영화 ‘고잉 버티컬(Going Vertical)’ 포스터.
‘올림픽 역사상 최고의 논란거리인가, 가장 극적인 순간인가.’

국가적 도핑 스캔들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러시아가 올림픽에서 경험한 ‘영광스러운 순간’을 소재로 한 영화를 내놓으며 자국 선수들의 사기 진작과 국민들의 애국심 고취에 나선 모양새다.

러시아 문화부의 지원을 받고 제작돼 28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고잉 버티컬(Going Vertical)’의 소재는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미국 팀을 꺾고 금메달을 따낸 옛 소련 농구 대표팀의 이야기다. 러시아 언론사들은 이 영화를 “꼭 봐야 하는 영화”로 소개하며 최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징계 이후 위신이 깎인 자국 스포츠의 위상을 다시 끌어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소재인 소련과 미국 간 농구 결승전은 올림픽 역사상 가장 논란거리로 남았던 경기다. 당시 결승전의 승자는 경기 종료 3초를 남겨놓고 두 번이나 경기를 다시 치르며 미국에서 소련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올림픽에 농구가 도입된 지 36년 만에 처음으로 금메달을 놓쳤다. 러시아엔 기적의 순간으로, 미국에는 ‘명백한 오심 경기’로 기억되는 경기.

상황은 이랬다. 경기 막판, 미국은 반칙을 얻어내 자유투를 성공시켜 소련을 1점 차(50-49)로 앞서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단 3초. 공격권을 가져온 소련이 득점하지 못하며 경기는 그대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미국 대표팀은 우승의 기쁨으로 환호했다. 하지만 심판은 미국이 마지막 자유투를 던질 때 소련 측이 작전타임을 불렀다며 3초를 다시 주고 경기를 하도록 했다. 소련은 이 기회마저 살리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제농구연맹 고위 관계자가 “시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며 또 한 번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 3초를 다시 주었다. 결국 소련은 이 마지막 기회를 살려 기어이 51-50으로 역전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미국은 IOC에 항의의 표시로 은메달까지 반납했지만 결과를 바꾸진 못했다.

그 결과만 놓고 보면 냉전 기류가 흐르던 1970년대 초, 러시아 스포츠에서 이만한 영광의 순간은 없었다. 영화는 이 극적인 순간과 더불어 소련 팀 선수들의 개인적인 애환과 팀 구성 과정 등을 다루고 있다. 안톤 메게르디체프 감독. 미국은 이 경기에 대해 강하게 항의하고 있고 아직도 그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스포츠 강국으로서 미국과 러시아의 자존심 대결이 계속되는 가운데, 러시아는 이번 징계안과 관련해 “서방(미국)의 음모가 깔려 있다”고 주장해왔다. 러시아 선수들이 국기를 달고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하는 상황에 영광의 순간을 재조명하며 애국심을 자극하는 영화가 등장한 것이다.

최근 징계로 러시아가 11개의 메달을 박탈당해 순위가 바뀌긴 했지만 2014 소치 겨울올림픽 당시 미국(메달 28개)은 러시아(당시 기록 33개)에 밀려 2위(총 메달 수 기준)를 차지했다. 공교롭게도 러시아가 국기를 달고 참가하지 못하는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 10개 이상을 비롯해 30개 이상 메달을 따내 역대 최고 성적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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