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가족 잃은줄 모른채… 영정 앞 뛰노는 8세 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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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미수습자 5명 영결식

“아픔 없는 곳으로…” 19일 경기 안산시 제일장례식장에 마련된 단원고 양승진 교사와 학생 박영인 
남현철 군의 합동분향소에서 시민이 조문하고 있다(왼쪽 사진). 권재근 씨, 혁규 군 부자의 빈소는 역시 세월호 참사로 숨진 부인 
한윤지 씨와 함께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졌다. 안산=뉴스1·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아픔 없는 곳으로…” 19일 경기 안산시 제일장례식장에 마련된 단원고 양승진 교사와 학생 박영인 남현철 군의 합동분향소에서 시민이 조문하고 있다(왼쪽 사진). 권재근 씨, 혁규 군 부자의 빈소는 역시 세월호 참사로 숨진 부인 한윤지 씨와 함께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졌다. 안산=뉴스1·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19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의 세월호 미수습자 권재근 씨와 아들 혁규 군의 빈소. 권 씨의 딸 권모 양(8)은 천진했다. 노란 티셔츠에 까만 바지를 입고 상장(喪章) 대신 머리에 하얀 리본을 했다. 밝은 목소리로 “전화기 놀이 해야지”라고 외치며 조문객 사이를 뛰어다녔다. 오징어채를 간식 삼아 먹고, 테이블에 누워 휴대전화를 가지고 놀았다. 전날 전남 목포신항에서 열린 합동추모식에서 주변의 어른들이 오열하자 “아빠” “오빠”를 부르며 따라 울었던 것과는 달랐다. 친척들은 말없이 권 양의 등을 쓰다듬었다.

권 양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에서 네 식구 가운데 혼자 살아남았다. 빈소의 영정 하나에 아빠와 함께 담긴 엄마 한윤지 씨와 많이 닮았다. 한 씨 시신은 참사 직후 수습됐지만 그동안 장례를 미뤘다. 한 친척은 “아빠와 오빠 시신까지 수습하면 말해주려고 가족끼리 입단속을 했다”면서 “○○이(권 양)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모른다”며 착잡해했다. 권 양은 참사 당시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이후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놀림’을 받아 지금은 개명했다.


18일 오전 목포신항에서 시신을 찾지 못한 미수습자 5명의 합동추모식을 마친 뒤 이날 오후 빈소가 차려졌다. 안산 단원고 교사 양승진 씨와 학생 박영인, 남현철 군의 빈소는 경기 안산시 제일장례식장에, 권 양의 아빠와 오빠 빈소는 아산병원에 마련됐다. 이들의 관에는 시신 대신 고인들의 옷, 가족들이 보내는 편지 등이 담겼다. 양 씨의 아내 유백형 씨(56)는 양 씨의 손때가 묻은 ‘정치’와 ‘경제’ 교과서 2권을 넣었다.

두 빈소는 다소 쓸쓸했다. 19일 제일장례식장 1층 합동분향소 방명록에 적힌 이름은 300여 명으로 이들의 가족, 친척, 지인이 대부분이었다. 이낙연 국무총리, 남경필 경기도지사,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조문했을 뿐이다. 유족을 돕던 자원봉사자는 “일반 시민 발길이 점점 뜸해졌는데 이제는 정말 잊혀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 군과 초등학교 동창인 원동혁 씨(20)는 이날 오후 군복 차림으로 남 군의 빈소를 찾았다. 원 씨는 “나와 성격이 비슷한 현철이도 살아 있었다면 해병대에 함께 입대했을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박일도 제일장례식장 대표(62)는 “장례식 수익금 등 3000만 원을 안산지역 학생 교복비 지원 등에 기부하겠다”는 말로 이들의 마지막 길을 추모했다.

미수습자 5인의 가족들이 목포신항을 떠나면서 3년 전 4월 참사 직후 광주시와 전남도가 각각 설치한 희생자 합동분향소도 철거된다. 광주시는 20일 오전 시청 1층 시민홀에서 합동분향식을 열고 오후 6시 분향소 철거에 들어간다. 그동안 약 4만1000명이 분향했다. 전남도는 무안 도청 1층 분향소를 21일 오후 7시 치운다. 안산시 정부합동분향소를 제외하면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던 분향소는 광주와 전남이 마지막이었다.

세월호 유족 일부는 목포신항 컨테이너에서 계속 생활하며 선체 수색과 조사 과정을 지켜볼 예정이다. 이들은 매일 수색 진척 상황을 점검하고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연말까지 이어질 선체 수색이 끝나야 이들도 컨테이너 생활을 마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남쪽 끝에 설치된 세월호 천막은 당장 철거될 확률은 낮다. 천막을 친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 등 세월호 관련 단체는 아직도 ‘진상 규명’을 주장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세월호와 관련한 여러 논의가 산적해 있어 정부에서 총체적으로 논의를 하면 거기에 따라서 (철거나 이동 등을) 논의하겠다”라고 말했다. 다만 불법 점용한 천막과 시설물에 대한 변상금은 계속 부과할 방침이다.

24일 2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구성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표결에 부쳐진다. 세월호 관련 단체들은 현재 특별법안에서 위원 추천 규정(야당 6명, 여당 3명)을 수정하고 조사원 수를 120명에서 150명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4·16연대 관계자는 “법안 통과 전까지 천막 철거는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지선 aurinko@donga.com / 안산=김배중 / 목포=이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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