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사회’ 러시아서도 미투 바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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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자들 “하원의원 성희롱” 폭로
하원 윤리위, 무혐의 처분하자 언론사 20여곳 반발… 출입기자 철수

러시아의 20여 개 언론사가 한 하원의원의 여기자 성희롱과 그에 대한 하원의 무성의한 대응에 항의해 취재 거부에 들어갔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2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강한 남성’ 이미지를 강조하고, 그래서 이른바 ‘마초’ 사회로 인식돼 온 러시아에서도 성폭력 피해 고발 운동인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캠페인이 시작된 셈이다.

이번 취재 보이콧 사태는 몇몇 여기자가 “러시아 하원 국제문제위원회 레오니트 슬루츠키 위원장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한 여기자는 “당신에게 결혼할 남자친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나의 애인이 돼 달라”는 슬루츠키 위원장의 발언을 녹음해 공개했다.

하지만 러시아 하원 윤리위원회는 이들의 성희롱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21일 슬루츠키 위원장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에 다른 기자와 PD들도 “나도 피해자”라고 나서면서 언론사 연대 투쟁이 시작됐다. 윤리위원회 결정에 반발해 출입기자들을 철수시킨 언론사는 라디오방송 에코 오브 모스크바, 미디어그룹 RBC, 민영 도시티TV, 일간 노바야가제타 등 20여 곳에 이른다.

성희롱을 규정하는 법적 근거가 제대로 없는 러시아에서는 ‘미투’ 캠페인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이번 여기자들의 고발에 대해서도 러시아 의원들은 피해 여기자들이 각각 영국 BBC방송 러시아 지국, 미국 RTVI 모스크바 지국 소속임을 지적하며 “폭로의 배경에 의심이 간다”는 반응을 보였다. “러시아 대통령 선거(18일)를 앞두고 벌어진 정치적 음모”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극우 민족주의 성향인 자유민주당의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 대표는 “기자들이 서방국가의 지시를 받고 있다”고 비난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러시아#미투#성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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