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는 경고, 北은 이탈…중재자 文 앞에 또 ‘가지 않은 길’

  • 뉴시스
  • 입력 2019년 3월 23일 14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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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韓선박 첫 주의보 등 文정부에 '옐로카드' 시사
北, 연락사무소 철수 통보…판문점 선언 합의 위기
제재 동참 요구하는 美, 남북 대화 이탈 움직임 北
등 돌린 양측 협상 테이블로 이끌 중재안 마련 절실

북미 대화 재개의 중재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앞에 최악의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미국은 대북제재 동참을 요구하는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고, 북한은 아예 남북대화 이탈 움직임을 현실화하고 있다.

북미가 상반된 메시지를 동시 다발적으로 발신하면서 문 대통령의 균형 감각이 여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자칫하다가는 북미 사이에 끼여 손 쓸 겨를 없이 휩쓸릴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먼저 이상 신호가 감지된 것은 미국 측에서였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OFAC)은 21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유엔의 대북 제재를 피해 북한을 도운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 67척에 대해 주의보를 발령했다. 여기에는 한국 선박 ‘루니스(LUNIS)’가 포함됐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실행을 견인하기 위해 대북제재를 강화하는 상황인데도 우리 정부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등 남북 경제협력을 밀어부치자 대북정책에서 독자 행보를 하지 말라는 사전 경고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다.

미 재무부가 유엔 제재를 피해 북한 불법 환적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 명단을 이번에 공개한 것은 우리 정부가 발뺌하지 못하도록 ‘물증’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가 북한의 선박간 불법 환적 등 유엔 대북제재 결의 위반 행위에 대한 단속을 위해 동중국해에 미 해안경비대(USCG) 소속 4500t급 버솔프 경비함(WMSL-750)을 직접 투입키로 한 것도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우리 정부는 ‘루니스’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 여부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 나가겠다는 방침이지만, 근본적으로 대북제재 이탈을 의심하는 미국의 레이더망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지난해 북한산 석탄 반입 의혹으로 시작된 미국의 경고 메시지는 남북 철도 도로연결 작업,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 경제협력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동안 ‘임계점(臨界點)’에 다다랐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정부를 향한 미국의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댄 코츠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 앤드루 김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이 방한 역시 미국의 불만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코츠 국장은 20일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을 접견했고, 김 전 센터장은 21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면담했다. 전 현직 미국 정보기관 인사들의 잇딴 청와대 방문은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간의 엇박자를 해소하고 굳건한 공조 회복을 모색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이토록 미국으로부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전열에서 이탈하지 말라는 신호가 들어오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대화 궤도에서 전격적인 이탈 움직임을 보였다. 22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공식 철수했다.

북한은 이날 오전 9시15분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남북 연락대표 간 접촉을 통해 상부의 지시에 따라 사무소에서 철수한다는 입장을 통보해왔다고 통일부가 밝혔다.

사무소 남측 인원의 철수까지는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완전한 남북 대화의 중단으로 볼 수는 없지만, 남북 간 공식 대화창구는 가동 6개월만에 잠정 중단의 위기를 맞았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처음 합의한 ‘4·27 판문점 선언’ 1조 3항에 따라 설치된 연락사무소에서 북한이 먼저 철수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것만으로도 타격이 크다.

남북관계의 역진 가능성을 확인한 첫 사례기 때문이다. 24시간 상시 소통채널을 통해 주요 현안을 논의하며 한반도 평화 정착의 교두보 역할이 될 것이라는 남북 공통의 기대감에 금이 간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개소식이 있던 지난해 9월14일 “위태로운 급물살이 흐르는 한반도에서 남북을 잇는 튼실한 다리가 놓인 느낌”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사안의 엄중함을 인식한 듯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소집하고 북한의 연락사무소 철수 상황과 함께 관련 대책을 논의했다.

전날 열린 정례 NSC 상임위에서조차 9·19 남북군사합의 이행 조치와 남북협력 사업들의 추진 동향 등 논의한 점을 미뤄볼 때 북측의 갑작스런 철수는 예상치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보고 받은 시점과 대통령의 반응, 대통령 주재의 NSC 전체회의로 확대 가능성 등을 묻는 질문에 청와대는 답을 하지 않고 있다.

특히 북미 대화의 적극적인 중재 방안을 고심하던 터라 남북 간 공식 채널이 닫혔다는 것이 안겨주는 시사점이 크다. 북미 간 비핵화 대화의 궤도 이탈을 우선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간절한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북미) 중재안 마련 전에 보다 더 급선무는 미국과 북한 모두 대화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안정적 상황 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동안 청와대는 가용한 외교 채널을 총동원 해 하노이 협상 결렬 상황을 복기하고, 북미 양측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 중재안을 마련해왔다. 그러나 북미 간 ‘살얼음 대치’ 국면이 먼저 조성된 측면이 있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15일 평양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북미 대화 중단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위기감은 고조 됐다. 최 부상은 당시 “우리는 미국의 요구사항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지 양보할 의사가 없다. 북한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중단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며 북미 대화 이탈 가능성을 경고했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은 전적으로 북한 책임이라는 미국의 대북 압박 메시지는 멈추지 않았고, 급기야 북한의 공동연락사무소 철수로 이어졌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우리 정부에 대한 섭섭함을 나타낸 것과 동시에 남측 역할이 불필요하거나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것일 수 있다”며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새로운 길’에 대한 발표가 임박한 신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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