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물밑접촉 이어지는데…내년초 2차 북미정상회담 가능할까

  • 뉴시스
  • 입력 2018년 11월 19일 10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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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유엔총회에서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미국의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연설을 한 이후 북미 핵협상은 사실상 중단돼 있다. 큰 흐름에서는 교착상태인 것이 분명하다. 다만 물밑 접촉마저 단절된 상태는 아니며 북미간에 의사소통은 이어지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돌파구가 필요한 국면으로 관측된다. 미국은 상당한 노력을 펴고 있지만 북한은 여전히 관망하는 모습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7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5시간 넘게 회담하면서 2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잠시 고조됐었다. 그러나 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이 요구하는 핵리스트 신고를 거부한 것을 계기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서두르지 않겠다”면서 중간선거에 몰두했다. 북한이 중간선거에 도움이 될 ‘한방’을 주지 않자 즉시 단념한 것이다. 그러자 마이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2차 정상회담 일정을 내년초에 열릴 것이라고 회담 시기를 미루는 발언을 했다.

중간선거 기간 동안 북핵문제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거의 전적으로 관리했다. 그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사이의 실무협상을 추진했지만 북한은 애시당초 생각조차 없었다. 평양에 온 비건 특별대표를 협상 파트너로 지목된 최선희 부상이 바람을 맞혔다. 비건 특별대표는 하릴없이 유럽을 배회하기까지 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러자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과 고위급회담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두번 미뤄진 끝에 북한이 취소했다. 선거 결과가 나오기 직전에 일정을 정한 회담을 결과가 나오자마자 취소한 것이다. 북한이 미국 정계의 흐름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회담 개최 여부를 조율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면서 미국 조야의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한 공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뉴욕타임스가 ‘모두가 알고 있는’ 북한 미사일 기지의 존재를 폭로하면서 북한이 “대사기극”을 벌이고 있다고 쓴 것을 시작으로 지난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합의가 사실상 무의미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들끓었다.

화들짝 논란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보도를 “가짜 뉴스”라고 규정했고 북한이 핵실험도, 미사일 시험 발사도 중단했다면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큰 진전’임을 강조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오랜만에 직접 나서서 “초현대 전술 무기 시험”을 ‘현지 지도’했다. 그의 행보는 한미가 대대급 해병대 훈련을 벌이는 것을 견제하는 의미가 큰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북한은 억류 미국인 석방을 함께 발표해 미국에 대한 압박이 아님을 시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들은 ‘현지 지도’를 미국에 대한 경고로 받아 들였다.

언론과 야당의 공격에 다급해진 트럼프 정부가 북한을 끌어내기 위해 양보하는 제스처를 보였다. 지난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 트럼프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2차회담 개최전에 북한이 핵리스트를 신고할 필요는 없다”고 발언했다. 가장 강경한 대북 입장을 취해온 펜스 부통령을 통한 이 발언은 미국이 세심하게 계산한 승부수로 분석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 발언이 나온 시점에 폼페이오와 함께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났던 앤드루 김 미 중앙정보국(CIA) 코리아임무센터장이 한국을 방문해 북한을 비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펜스 대통령이 이 비밀 접촉을 지원하기 위해 말을 보탠 셈이다.

여기까지가 최근 두달 가까이 북미 핵협상 흐름에 대한 설명이다. 전반적으로 북한이 핵협상에 대해 중대한 양보를 할 의사가 없지 않나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시셋말로 북한이 ‘이긴’ 회담이다. 트럼프는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한 것이 큰 진전이라고 내세우지만 북한으로선 거의 개발을 끝낸 핵무기·미사일 시험을 중단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일이 없다. 실제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핵개발을 끝냈으므로 올해는 대량생산에 집중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미국은 2차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이 실질적으로 핵폐기를 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구상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핵리스트 신고를 요구한 것도 그래서였다. 펜스 부통령이 선(先)핵리스트 신고 요구를 철회하면서도 2차회담에서는 “의심스러운 모든 (핵)무기와 개발 시설을 확인하고 사찰을 허용하며, 핵무기 폐기 계획을 세우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이런 요구에 대해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 지가 앞으로 여전히 북핵국면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회담에서도, 폼페이오 장관과 면담에서도,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중대한 결심’을 할 것처럼 분위기를 잡았지만 아직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다.

다만 대북제재 해제가 우선돼야 한다는 조건을 걸어 협상 교착의 책임을 미국에 떠넘기고 있다. 지난 9월 이용호 외무상의 유엔 연설 때부터 이미 현재의 교착국면을 어떻게 조성하고 어떻게 대처할 지에 대한 구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추측도 가능한 대목이다. 미 중간선거가 북미 핵협상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고 어떻게 정리되는지 지켜볼 시간을 벌겠다는 생각이 아닐까.

북미간에 뉴욕채널이든, 앤드루 김의 CIA 채널이든 의사소통이 중단되지 않고 있는 것은 북한도 상황이 지난해처럼 급전직하 악화하는 것을 원치 않음을 보여준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서두르지 않겠다.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하는 한 북한도 서두를 생각은 없어 보인다. 기세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북미 핵협상에서 미국은 자신의 입장을 수시로 공개하고 있다. 검증가능한 완전한 핵폐기(CVID) 또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이전에 제재 완화는 없다는 것이다.

북한도 대북제재 해제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공개했지만 핵폐기에 관한 입장은 선명하지 않다. ‘중대한 결심’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이와 관련 펜스 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매우 중대한 무언가를 하려 한다는 말을 문 대통령에게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문맥상 ‘중대한 무언가’의 내용을 한국이나 미국이 이미 북한으로부터 전해 들었지만 공개할 순 없다는 뜻으로 보인다.

미국의 희망대로 내년초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 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중대한 결심”이 최종적으로 내려져야 가능하기 때문인데 북한은 아직 그럴 준비가 안돼 있는 듯하다. 그 “중대한 결심”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미국이든 한국이든 상응하는 ‘중대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폼페이오-김영철 회담이 조만간 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성사된다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은 조금이라도 높아진다. 또 그만큼 북한 비핵화 전망도 밝아질 수 있다. 그러나 내년초에도 2차 정상회담이 열리지 못한다면 한반도에 위기가 다시 닥칠 수도 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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