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앞뒤 바뀐 평양선언 비준, 조급증이 부른 과속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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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어제 국무회의에서 9·19 평양공동선언과 남북 군사 분야 합의서에 대한 비준을 심의한 뒤 문재인 대통령이 서명했다. 금명간 이를 공포하면 남북관계발전법에 따른 비준 절차를 완료하게 된다. 문 대통령은 “(오늘 비준이) 남북관계 발전과 군사적 긴장완화, 비핵화를 촉진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국회가 평양선언의 모태(母胎)인 4·27 판문점선언의 비준 동의에 대해 전혀 의견 접근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행정부 단독으로 평양선언 비준을 강행한 것은 앞뒤가 뒤바뀐 처사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헌법과 2005년 제정된 남북관계발전법에 따르면 조약 비준권은 대통령이 갖고 있지만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거나 안전보장에 관한 내용이 있는 경우에는 국회의 동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평양선언은 행정부 내에서 예산 운영을 통해 충분히 조치할 수 있는 내용이므로 국회 동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법제처 유권해석을 근거로 비준을 강행했다. 그러나 평양선언은 막대한 재정 부담을 요구하는 판문점선언의 이행을 담보로 한 후속 합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군사합의서 역시 실행을 위해선 재정 부담이 필요하며, 안보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엔사령부마저 우려를 제기할 정도로 중대한 안보 관련 내용들을 담고 있다.

특히 걱정되는 것은 판문점선언이 국회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하는 조약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여야 간에 입장 차가 팽팽한 상황에서 판문점선언의 후속 합의 성격인 평양선언 비준을 서두른 정부의 조급증이다. 남북관계 진전을 되돌릴 수 없도록 만들겠다는 취지는 이해되지만, 현재 한반도 상황은 남북관계가 비핵화 진전과 독립해서 진전될 수 없는 구조다. 22일 열린 남북 산림분과 회담에서 북측 대표가 남측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데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듯이 앞으로 대북 지원과 국제 제재 간의 상충 문제가 계속 불거질 수 있다.

2000년 6·15선언과 2007년 10·4선언이 흐지부지된 것은 국회의 비준 동의가 없어서가 아니다. 6·15선언은 여야 합의로 지지 결의안이 채택됐지만 북핵 개발로 무의미해졌다. 10·4선언은 비핵화 합의가 깨지고 북한의 천안함 도발 등으로 유명무실해졌다. 남북관계를 되돌릴 수 없게 진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김정은으로 하여금 비핵화 없이는 고립과 궁핍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절감하게 하는 것이다.
#평양공동선언#남북 군사 분야 합의서#비준#판문점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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