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판사 “있다” “없다”…트럼프-美대법원장, ‘캐러밴 판결’ 놓고 충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2일 17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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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가장 성숙한 나라 중 하나로 평가받는 미국에서 때 아닌 사법부 독립 논쟁이 불붙었다. 행정부 수장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사법부 수장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직접 나서 공방을 벌였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정면충돌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공화당 정부에서 임명된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주장을 사실상 반박하는 성명을 내며 날을 세운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사법부 독립 논쟁은 트럼프 대통령이 캐러밴(중미 이민자 행렬)의 망명을 금지하는 자신의 행정조치가 위법하다고 판결한 제9연방순회법원의 존 티거 판사를 비난하면서 시작됐다. 앞서 티거 판사는 이 조치가 대통령 권한을 넘어선 행위라며 다음 달 19일까지 포고문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자신의 트위터에 “제9연방순회법원에 (내가 내린 모든 국토안보 관련 행정명령들이) 제소된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건 법이 아니다. 제9연방순회법원에서 우리는 전부 패소했다. 미국 입국금지 행정명령 같은 것들이 대법원에 가야 했고, 우리가 (과거에는) 이겼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티거 판사가 2013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다는 점을 겨냥해 “오바마 판사”라고 공격했다.

대통령의 트윗 공격 하루 뒤인 21일 로버츠 대법원장이 이를 반박하는 성명을 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성명에서 “우리에겐 오바마 판사나 트럼프 판사가 없다. 부시 판사나 클린턴 판사도 없다. 우리에겐 자신 앞에 서있는 사람들의 동등한 권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헌신적인 판사들이 있을 뿐이다. 독립적인 사법부는 우리 모두가 감사해야 할 중요한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에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거론되진 않았지만 미 언론은 대통령 주장을 반박한 것으로 풀이했다. 삼권분립이 엄격한 미국에서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발언에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중도 보수 성향으로 평가받는 로버츠 대법원장은 2005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임명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이 21일 다시 트위터에 “로버츠 대법원장 미안하다”고 운을 뗀 뒤 “하지만 당신은 정말로 ‘오바마 판사들’을 두고 있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안전을 지키는 사람들과는 아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제9순회법원이 정말로 독립적인 사법부라면 좋겠다”며 거듭 사법부 독립성을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제발 (오바마 정권 때 임명된) 판사들을 살펴봐라. 충격적이다. 이런 판결들은 우리나라를 안전하지 않게 만든다. 매우 위험하고 현명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도 내용면에서는 전혀 물러서지 않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로버츠 대법원장의 악연은 처음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후보 시절 ABC 인터뷰에서 로버츠 대법원장에 대해 오바마케어(건강보험)를 법적으로 폐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보수주의자들의 악몽”이라고 맹비난한 바 있다.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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