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 들이던 北, 동창리 발사장 해체… 美에 체제보장 압박 메시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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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노스 “2주전부터 작업 시작… 발사탑-주건물은 아직 해체 안돼”
액체연료 발사체 실험 시설, 北 폐기해도 부담 크지 않아
靑 “비핵화에 좋은 영향” 기대감

38노스 “北,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해체 착수”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가 23일(현지 시간) 폐쇄작업이 진행 중인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의 위성 사진(오른쪽)을 공개했다. 동창리 발사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폐쇄 의사를 밝혔다고 알려진 곳이다. 38노스가 5월 26일 촬영한 사진(왼쪽)과 비교하면 궤도식 구조물과 시험용 발사대 상부 구조물이 완전히 해체됐고 연료와 산화제를 보관하던 벙커도 일부 파괴된 모습이다. 사진 출처 38노스

북한이 미사일 엔진 실험장인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해체 작업에 들어간 정황이 포착됐다.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해체를 약속해 놓고도 뜸을 들이던 북한이 뒤늦게 이행에 나선 것은 미국에 ‘대화는 지속하겠다. 대신 상응하는 조치를 내놓으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대북제재 주의 권고안’으로 북한을 압박하면서 본격적인 협상 카드를 주고받는 게임이 시작됐다.

○ 조용히 공개한 北의 협상 카드

미 스팀슨센터 산하 북한전문매체 38노스는 20일 촬영된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동창리 발사장의 발사 직전 발사체를 조립하는 궤도식(rail-mounted) 구조물과 시험용 발사대의 상부 구조물이 완전히 제거됐다고 23일(현지 시간) 밝혔다. 이틀 후인 22일 위성사진에서는 건물 한쪽 모서리 부분이 철거되고, 해체된 구조물이 바닥에 놓여 있는 등 작업이 더 진행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38노스는 “해체 작업은 약 2주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연료 및 산화제 벙커와 주 처리 건물, 발사탑은 해체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한미 정보당국도 발사장의 타워크레인 등 일부 설비가 부분적으로 해체된 것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당국은 위성사진 판독 등을 통해 정밀 추적, 분석 작업을 진행 중이다.

2016년 2월 ‘광명성 4호’가 발사된 서해위성발사장은 2012년부터 인공위성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관련 기술의 실험, 발사가 이뤄져온 북한의 주요 미사일 시설 중 하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폐기를 약속했던 미사일 엔진 실험장으로 지목돼온 곳으로, 고체연료보다 기술적으로 떨어지는 액체연료 발사체를 실험해온 시설인 만큼 폐기 부담이 크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당초 미사일 엔진 실험장의 폐기는 북-미 대화가 교착 국면에 놓인 상태에서 북한이 또 하나의 협상 카드로 쓸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북한은 5월 외신기자를 초청해 공개했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때와 달리 이번에는 조용히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은 “북한이 핵시설의 신고와 검증 같은 본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요구받고 있는 상황에서 발사장 해체 같은 이벤트는 협상 카드로 쓰기에는 약하다”며 “북한이 미국에 향후 협상의 ‘미끼’로 쓰면서 자신들의 내부 로드맵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양묘장 시찰 나선 김정은 활발한 경제시찰 행보를 보이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4일 강원도 조선인민군 122호 양묘장을 현지지도하고 있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양묘장 시찰 나선 김정은 활발한 경제시찰 행보를 보이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4일 강원도 조선인민군 122호 양묘장을 현지지도하고 있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 북-미 대화 동력 되살아날까

지지부진한 비핵화 협상 속 동창리 발사장의 해체 움직임이 전해지자 청와대는 “비핵화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기대감을 비쳤다. 남관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좋은 징조”라며 “북한이 (발사장 해체를) 이벤트로 만들지 않고 진행하는 것은 북한 나름대로 시기를 조절하기 위한 것인지 그 의도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 체제 안전 보장 조치를 요구하며 비핵화 조치 이행을 늦추던 북한이 실험장 폐쇄에 나선 것은 미국과의 대화 모멘텀을 살리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런 움직임은 시기적으로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 되는 27일 미군 전사자의 유해 송환과도 맞물려 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만큼 북한이 선거 국면을 활용하기 위해 베팅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도 북한의 엔진 실험장 해체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2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달 초 평양에 방문했을 때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면담 자리에서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폐기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직접 언급한 바 있다”고 밝혔다.

다만 북한의 움직임이 선의의 조치일지, ‘마이웨이’ 비핵화 행보일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인내심을 언제까지 간직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협상 과정에서 추가 제재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던 트럼프 행정부가 23일(현지 시간) 국무부와 재무부, 국토안보부 합동으로 ‘대북제재 주의 권고안’을 발령하면서 북-미 협상의 향방은 가늠하기 더 어려워졌다.

이정은 lightee@donga.com·신나리 기자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비핵화#북한 핵실험장#동창리 발사장#북미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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