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朴 전 대통령의 ‘정치 보복’ ‘재판 불신’ 주장을 보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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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제 법정에서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지길 바란다”며 “이 사건의 역사적 멍에와 책임은 제가 지고 가겠다”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재판부의 구속 연장 결정에 반발하며 처음으로 직접 심경을 밝힌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아울러 변호인단 전원의 사임 결정을 전하며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향후 재판은 재판부 뜻에 맡기겠다”고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상 재판 보이콧과 판결 불복까지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제는 박 전 대통령의 1차 구속 만기일이었지만 재판부의 추가 구속영장 발부로 최장 6개월간 더 구금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이에 대한 실망과 불만은 예상됐던 일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발언은 단순한 반발로만 보기 어렵다. 자신이 직접 정치의 전면에 서겠다는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을 ‘정치 보복의 희생자’로 규정하고 재판부 불신을 공개 표명함으로써 형사재판을 정치재판으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적폐청산’과 ‘정치 보복’으로 맞서는 정쟁의 한복판에 직접 뛰어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모든 책임은 저에게 물어 달라”며 관련 공직자와 기업인에 대한 관용을 요청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혐의는 부인했다. “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상상조차 못한 배신으로 돌아왔다”며 모든 책임을 최순실에게 돌렸다. 권한을 남용한 적도, 부정청탁을 받거나 들어준 일도 없다고 했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물어라, 관련자들은 용서해 달라고 한다.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이다. 그것이 형사적 책임은 부정하면서 정치적 책임만 물으라는 얘기라면 참으로 자기편의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재판을 받는 피고인으로서는 당연한 무죄 주장일 수 있다. 하지만 국정농단 관련자들이 줄줄이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 있는데 그저 ‘난 모르는 일’이 될 수는 없다. ‘내 탓’ 발언도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젠 박 전 대통령이 속한 자유한국당마저 출당(黜黨)을 기정사실화하는 상황이다. 코너에 몰릴 대로 몰리자 형사재판을 정치싸움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다.

그렇기에 박 전 대통령의 어제 발언은 재판 지연을 위한 시간 끌기용 꼼수로 비칠 수밖에 없다. 당장 변호인단이 일괄 사임해 재판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다음 기일인 19일까지 변호인 사임 철회나 새로운 변호인 선임이 없으면 법원은 국선 변호사를 선정해 진행할 수밖에 없고 재판은 상당 기간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재판 지연 의도가 아니라면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변호인단부터 정상화시켜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역사적 멍에와 책임’을 거론했다. 좋든 싫든 ‘대통령 박근혜’는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고, 시간이 지나면 작금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엄정한 평가가 이뤄질 것이다. 적지 않은 국민이 우리 대통령의 불행한 역사와 영어(囹圄)의 몸이 된 여성 대통령의 질곡(桎梏)을 안타까워하고 불편해한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태 이후 지금까지 박 전 대통령이 보여준 행태는 그런 국민마저 등을 돌리게 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길 바란다.
#박근혜#박근혜 보이콧#국정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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