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김기춘, 블랙리스트 범행 정점인데도 발뺌 일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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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1심 선고]김기춘 실형-조윤선 집유 선고

수갑 차고 풀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실행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27일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하고 있다(왼쪽 사진). 1심 재판부는 김 전 실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국회 위증
 혐의만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돼 걸어 나오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수갑 차고 풀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실행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27일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하고 있다(왼쪽 사진). 1심 재판부는 김 전 실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국회 위증 혐의만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돼 걸어 나오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피고인 김기춘을 징역 3년에 처한다. 피고인 조윤선은 징역 1년에 처하되 2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1월 구속돼 약 5개월간 같은 법정에서 함께 재판을 받아온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의 운명은 27일 1심 선고공판에서 극적으로 엇갈렸다. 재판장이 1시간가량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환자복 수의를 입은 김 전 실장은 시종일관 굳은 표정이었다. 반면 조 전 장관은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차분한 표정으로 판결문 내용을 경청했다.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조 전 장관은 약 6개월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이날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됐다.

○ 조윤선,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여 혐의 무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는 조 전 장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 김 전 실장과 공모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의 문예기금 지원 심의,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산지원 사업 심사 등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직권남용)를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조 전 장관이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으로 근무할 때 이 같은 일들을 지시하거나 보고받는 등 역할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조 전 장관이 영화 ‘다이빙 벨’ 상영 때, 영화의 (여론에 대한) 파장을 줄일 방안을 검토한 사실 등은 인정된다”면서도 “이와 관련해 ‘다이빙 벨’을 상영한 극장에 대해 불이익을 주는 등의 위법한 조치를 취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 전 장관이 지난해 10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받았다”고 허위 증언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조 전 장관은 이미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의 실상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판시했다.

조 전 장관은 이날 재판이 끝난 뒤 서울구치소를 나서면서 기자들과 만나 “(항소심) 재판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며 “(재판부가) 저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조 전 장관은 재판에서 자신의 변호인이었던 남편 박성엽 변호사(56)의 차를 타고 귀가했다. 박 변호사도 “제가 (재판부에) 오해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 “김기춘이 블랙리스트 범행 ‘정점’”

조 전 장관과 달리 김 전 실장,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60·구속 기소), 김상률 전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57) 등 블랙리스트 사건의 다른 공범들에게는 블랙리스트 관여 혐의로 유죄가 선고됐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온 김 전 수석은 이날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재판부는 김 전 실장 등이 문화예술계 인사 및 단체에 대한 지원 배제 명단을 작성하고 이를 보조금 지급 등에 실제로 적용한 게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블랙리스트 실행 과정에서 예술위 직원 등을 ‘협박’했다고 볼 행위는 없었다”며 강요 혐의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이나 장관 등으로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막대한 권한을 남용해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범행을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특히 김 전 실장에 대해서는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범행을 가장 정점에서 지시하고 실행 계획을 승인, 독려했음에도 발뺌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체부 공무원에 대한 사직 강요 혐의는 사안별로 유무죄 판단이 엇갈렸다. 재판부는 김 전 실장이 블랙리스트 실행에 소극적이었던 문체부 실장 3명에 대해 사직을 강요한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이 ‘나쁜 사람’으로 지목한 노태강 당시 문체부 체육국장(57·현 문체부 2차관)에 대해 김 전 장관과 김 전 수석이 사직을 강요한 것은 직권남용이라고 판단했다. 문체부 실장들은 1급 공무원이어서 신분 보장 대상이 아니지만, 당시 2급 공무원이던 노 전 국장은 공무원법상 신분이 보장돼야 한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권오혁 hyuk@donga.com·이호재 기자
정성규 인턴기자 서강대 신문방송학·사회학 4학년
#김기춘#조윤선#직권남용#징역#박근혜#공범#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1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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