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글로벌 인사이더]민심을 케어해주는 대통령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7일 11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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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웹사이트 부실 사과 회견. CNN 방송화면
오바마 웹사이트 부실 사과 회견. CNN 방송화면

정미경 기자
정미경 기자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로즈가든에 마련된 연단에 섰다.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웹사이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사과드립니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오바마 대통령의 이 사과를 들으며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연방정부 잠정폐쇄(셧다운)와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 사태를 치른 뒤 얼마 안돼서 그랬는지 사과를 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은 초췌하고 늙어보였다.

사과는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열정적으로 추진하던 오바마 케어(건강보험개혁)에 관한 것이었다. 오바마 케어에 가입하려면 꼭 들어가야 하는 전용 웹사이트가 며칠 전 문을 열었지만 자주 접속장애를 일으켜 국민의 불만을 사고 있을 때였다.

사과로만 그치지 않았다. 문제 해결 방안을 설명했다. “미국 최고의 컴퓨터 전문가들을 동원해 접속 과부하 문제 해결에 나섰습니다. 며칠만 기다려 주십시오.”

오바마 대통령이 웹사이트 부실을 시인하고 사과하자 오바마 케어를 강력 반대하던 야당 공화당이 오히려 머쓱해졌다. 웹사이트 부실을 오바마 케어 제도 자체의 결함으로 몰고 가는 총공세를 펴려던 공화당은 일단 웹사이트 개선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약속대로 오바마 케어 웹사이트는 며칠 뒤 고쳐졌다.

어찌 보면 사소해 보일 수 있고, 사과 안 해도 그만일 것 같은 웹사이트 부실에 대해 대통령이 나서 사과한 것을 두고 미국인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애정과 자신감을 보여줬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사과할 일이 있으면 꾸물대지 않고 곧바로 사과하는 대통령의 결단력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과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에게 설명할 일이 있으면 자주 연단에 섰다. 당시 미국 내 반대가 많았던 시리아 공습을 결정할 때도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시키는 자리를 가졌다.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비록 당장은 반대에 부닥칠지 몰라도 궁극적으로 대국민 신뢰도를 높이고 정국 운영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총기 규제, 이민법 개혁 등 현안이 생길 때마다 연설을 자청해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상대방을 설득시켰다.

반면 우리나라는 사과건 설명이건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는 것에 인색하다. 정책이 부실하거나 실패했을 때도 국민은 대통령의 사과는 물론 설명조차 듣기 힘들다. 국민과 자주 소통하면 권위가 떨어진다고 보는 것일까.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보며 ‘국민 화합의 리더십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가진 사람이 비단 기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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