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저런 외모에 이런 감성이…” 김태원 “제 정신은 다르게 생겼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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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토크쇼]‘10년 우정’ 이어가는 이해인 수녀-가수 김태원

이해인 수녀(오른쪽)는 가수 김태원 씨가 ‘부활’ 콘서트에 초대하자 “두 번쯤 갔는데 정신이 없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김 씨가 “다른 수녀님들은 잘 즐기는 것 같더라”고 하자 이 수녀는 “트인 분들이에요”라며 웃었다. 7일 서울 용산구 ‘성 분도 은혜의 뜰’에서 만난 두 사람.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이해인 수녀(오른쪽)는 가수 김태원 씨가 ‘부활’ 콘서트에 초대하자 “두 번쯤 갔는데 정신이 없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김 씨가 “다른 수녀님들은 잘 즐기는 것 같더라”고 하자 이 수녀는 “트인 분들이에요”라며 웃었다. 7일 서울 용산구 ‘성 분도 은혜의 뜰’에서 만난 두 사람.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시인 수녀와 로커. 너무나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은 이들이 10년 넘게 우정을 나누고 있다. 이해인 수녀(72)와 그룹 ‘부활’의 리더인 김태원 씨(52)다. 2006년 강연을 하러 필리핀에 간 이 수녀는 그곳에서 자폐증세가 있는 아들을 키우는 김 씨의 집에 초대받은 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두 사람이 7일 서울 용산구 ‘성 분도 은혜의 뜰’에서 만났다.

“선글라스가 태원 씨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요즘 건강은 좀 어때요?”

이 수녀가 근심 어린 눈으로 안부를 물었다. 김 씨는 지난해 패혈증에 걸려 중환자실에 입원한 적이 있다.

“몸이 안 좋으면 누워 있고 좋으면 걸어 다니고, 수녀님 뜨시면 나타나죠.”

김 씨의 재치 있는 답변에 이 수녀가 깔깔깔 웃었다. 단정하고 수수한 이 수녀와 긴 머리를 질끈 묶고 가죽바지를 입은 김 씨는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

○ 노래가 된 시

부활의 11집 앨범(2006년)에 첫 번째로 담긴 ‘친구야 너는 아니’는 이 수녀의 시에 김 씨가 곡을 붙인 노래다. 마음을 다독이는 시어와 서정적인 곡은 절묘하게 어우러져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가톨릭 신자인 김 씨는 “시가 성가처럼 와 닿으며 멜로디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 수녀는 시에 곡을 쓰게 해달라는 김 씨의 요청을 수락했지만 속으로는 불안했단다.

“로커가 곡을 쓰면 얼마나 시끄러울까 걱정했어요. 앨범이 나온 뒤에도 안 듣고 있다가 궁금해서 어느 날 들어보고는 눈물이 났어요. 저런 외모에 이런 감성이 있다니!”(이 수녀)

“수녀님, 제 ‘솔(soul)’은 외모와 다르게 생겼어요.(웃음) 수녀님 시로 노래 한 곡 더 만들고 싶어요.”(김 씨)

이 수녀는 “나 죽고 나서 장송곡으로 쓰지 말고 얼른 만들어서 살아 있을 때 기쁨을 달라”며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거렸다. 이들은 시 노래 콘서트도 함께 하고 있다. 올해 11월 3일에도 ‘성분도 은혜의 뜰’에서 콘서트를 연다.

○ 창작의 고통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들기에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잘 안다.

“어떤 분들은 시가 팝콘처럼 튀어나오는 줄 알지만, 오래 진통하고 숙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시가 탄생해요. 포도주가 익어야 향기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죠.”(이 수녀)

“아, 그 심정 진짜 잘 알아요. 제가 한 곡을 쓰는 데 2년이 걸렸어요. 멤버들이 ‘진짜냐’고 물어서 702번까지 녹음한 음성 파일을 보여주니 놀라더라고요. 얼마나 많이 만들고 또 부숴야 하는데요….”(김 씨)

이 수녀도 시 ‘석류’를 쓰는 데 3년 걸린 게 과장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 힘들수록 오뚝이처럼

이 수녀는 직장암, 김 씨는 위암으로 투병했다. 하지만 꺾이지 않고 씩씩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김 씨는 다음 달 싱글 앨범을 낸다. 내년은 이 수녀가 수도서원을 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 이를 기념해 절기별 기도시를 모은 ‘사계절의 기도’에 시 150편을 추가해 모두 300편이 담긴 시집을 올해 11월 출간할 예정이다. 수필과 칼럼 등을 모은 산문집도 같은 시기에 내기로 했다.

이 수녀는 젊을 때는 코스모스, 민들레 등 수수한 꽃이 좋았는데 요즘에는 장미가 좋다고 했다. 김 씨는 “직접 그린 부활의 로고가 장미일 정도로 저 역시 장미를 좋아한다”며 맞장구쳤다. 식성도 비슷하다.

“투병할 때 아무것도 못 먹겠는데 유일하게 짜장면만 들어가더라고요.”(김 씨)

“나도 항암 주사 맞을 때 소면 국수만 넘어갔어요. 가족들과 부산 성베네딕도 수녀원에 놀러 와요. 내가 맛있는 밀면 사줄게요.”(이 수녀)

김 씨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이들은 ‘집단 토크쇼’라는 문패가 딱딱하다며 다른 이름으로 바꾸면 좋겠다고 했다. 골똘히 생각하던 이 수녀가 “‘우정 토크쇼’ 어때요?”라고 제안했다. 김 씨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이 수녀가 손뼉 치며 웃었다. 두 사람의 표정이 아이 같았다.
 

▼“기나긴 투병생활, 이제는 ‘선물’로 받아들여”▼

詩-멜로디 뒤에 말못할 고통


“고통과 아픔 자체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 과정을 겪고 나니 아픈 사람들을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됐죠. 인생관, 세계관, 종교관 등 삶의 모든 시선을 넓혀줬어요. 고통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축복의 기회로 삼았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이해인 수녀)

이들의 아름다운 시와 노랫말 뒤에는 말 못할 고통이 있었다. 이해인 수녀는 2008년 직장암 발병을 확인하고 기나긴 투병생활을 거쳤다. 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 씨는 2011년 KBS ‘남자의 자격’에 출연하며 우연히 위암 발병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해엔 패혈증까지 겹쳐 현재도 병마와 싸우고 있는 중이다.

“정말 죽을 고비를 넘겼어요. 지금은 대부분의 균을 치료하고, 간 등 일부 치료만 진행하면 됩니다.”(김 씨)

“갑자기 제가 죽었다는 소문이 났을 땐 마음이 겸허해지고, 묵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꾸 반복되니까 당황스럽더라고요. 그래도 지금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많이 좋아졌습니다.”(이 수녀)

김 씨는 자신의 투병뿐 아니라 자폐증세를 앓는 아들 우현 군(17) 등 가족의 아픔도 돌봐야 하는 상황이다. 50여 년간 수도자의 삶을 살아온 이 수녀 역시 홀로 고통을 극복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 시간을 오히려 ‘선물’이라고 입을 모았다.

“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사는 중이에요. 가족이 없었다면 제 인생은 30대 때 끝났을 겁니다. 사랑의 책임을 져야죠. 다행히 우현이도 필리핀에서 완전히 적응해 건강하게 지내고 있답니다.”(김 씨)

“수도자에겐 ‘선종’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죠. 내 안에 살아있는 자존심을 꺾어야 육체적으로 더 순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요.”(이 수녀)

손효림 aryssong@donga.com·유원모 기자
#이해인 수녀#김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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