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현 “인생은 칠십부터라니 이제 열살… 내 음악 본격 숙성시킬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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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60년 맞은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24일 오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의 한 카페. 오래된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전기기타. 그 유려한 곡선의 악기를 은발을 어깨까지 늘어뜨린 신중현이 제어한다. 실크 원단에 소매가 큰 1970년대 사이키델릭 스타일의 옷을 입고 스왜그(swag·거침없는 자기표현)를 뽐내고 있다. 용인=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24일 오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의 한 카페. 오래된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전기기타. 그 유려한 곡선의 악기를 은발을 어깨까지 늘어뜨린 신중현이 제어한다. 실크 원단에 소매가 큰 1970년대 사이키델릭 스타일의 옷을 입고 스왜그(swag·거침없는 자기표현)를 뽐내고 있다. 용인=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79)이 올해 데뷔 60년을 맞았다. 미 8군 무대에서 음악을 시작해 첫 음반 ‘히키신 기타 멜로디’(1958년)를 낸 이후 그의 시간은 우리 사회와 함께 긴 터널을 질주했다.

우리 나이로 올해 팔순. 그는 13일(현지 시간)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세계적인 음악 교육기관 버클리음대에 초청돼 한국인 최초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음 달엔 후배들의 헌정음반 ‘신중현 THE ORIGIN’이 나온다.

24일 그가 기거하는 경기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을 찾았다. 신중현은 “버클리에서 난생처음 학사모란 걸 써봤는데 미국사람에게 맞춰져서인지 내 작은 머리에서 모자가 자꾸 흘러내려 혼났다”며 웃었다.

○ 라이어널 리치의 굴욕(?)

“제가 감히 그 대열에 끼어 있다는 게 실감이 안 나서 꿈을 꾸는 듯했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살아있긴 살아있더라고요, 제가. 허허.”

같이 명예박사가 된 이들은 팝가수 라이어널 리치, 싱어송라이터인 토드 룬드그렌과 루신다 윌리엄스, 닐 포트나우. 포트나우는 그래미어워드를 주관하는 미국 리코딩예술과학아카데미 회장이다. 수여식 당일 리셉션장에서 리치와 포트나우가 먼저 신중현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신중현은 짧은 인사로만 정중히 답한 뒤 그 파티장에서 들고 있던 전기기타를 귀에 바싹 대 연방 튕겼다. 잠시 후 기념무대를 위한 마지막 조율에 전념한 것이다.

버클리음대 재학생 오케스트라와 밴드가 ‘봄’ 등 그의 대표곡을 연주한 뒤 신중현은 무대에 올라 ‘Autumn Leaves(고엽)’를 자신의 스타일로 연주해 환호를 받았다. “다음 날 시내를 걷는데 전날 공연을 본 학부모들이 절 몰아세우고 사진을 막 찍어서 당황했죠.” 그는 “8군 무대를 통해 미국 음악을 단순히 모방하며 시작한 저와 우리 대중음악의 독창성이 이제야 인정을 받은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 1958, 신중현 비긴즈

신중현은 뜻밖에 열악한 조건에서 녹음한 첫 음반 ‘히키신 기타 멜로디’에 대해 “진짜 소리가 살아있는 유일한 내 음반”이라고 자평했다. “미 8군 시절 음악 동료들과 응접실 같은 곳에서 마이크 하나 놓고 빙 둘러앉아 모노 음향, 동시녹음으로 제작한 앨범이에요.” 블루스 음악의 진행 위로 ‘아리랑’ 선율을 덧댄 이 혁신적 음반은 한국적 록 혁명의 전조다. “로큰롤부터 모던재즈까지 적용해봤어요. 더빙과 조작이 없으니 진짜 음악이죠. 소리가 진짜예요.”

―10년 전만 해도 뇌수술 때문에 스포츠머리를 했는데 머리가 많이 길었다.


“건강하다. 기력이 좀 없을 뿐이다. 수술 뒤 술을 완전히 끊었는데 보스턴에 가서는 기분이 좋아 밤마다 몇 잔씩 했다.”

―2006년 은퇴를 시사했는데….

“방송 활동 은퇴였다. 의미 있는 큰 무대는 앞으로도 설 생각이다. 새 앨범도 준비 중이다. 내가 발표한 곡 중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것들을 꼽아 전혀 새로운 연주와 창법으로 바꿔 내놓으려 한다. 팔겠다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이런 음악도 했었다 하는, 역사의 기록을 위해서다. 여건만 마련되면 내일이라도 낼 준비가 돼 있다.”

―새로운 창법? 어떤 곡?

“극비다. 창법도, 선곡도 아직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창법이 될 거다.”
  
 
○ 2017, “신중현은 열 살”


―최근 케이팝 그룹들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데….

“젊은 세대의 음악은 그것대로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음악은 리얼뮤직과 상업적 음악으로 나뉜다. 또 한국인이 가진 미묘한 장단과 흥, 어깨춤이 있다. 그 맥은 끊겼지만 이번 버클리음대 건이 다시 첫걸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자꾸 들려줘야 하지 않겠나. 리얼뮤직, 케이팝, 아이들의 음악, 어른들의 음악…. 메뉴를 많이 놔야 먹을 게 있다. 한쪽으로 쏠린 방송계 등 분위기는 잘못된 거다.”

―팔순인데….

“인생은 칠십부터. 이제 열 살 됐다. 젊은 시절 만들어둔 것을 숙성시키는 진짜 인생이 시작된 거다.”

―스무 살이 되는 90세를 그려본다면….

“난 동자(童子)가 될 것 같은데. 하하. 어느 날, 공자가 노자를 찾아갔을 때 노자가 2100살이었단다. 노자에게 꾸지람을 한참 듣던 공자가 올려다보니 동자가 하나 앉아있더란다. 나 역시 도를 닦는 과정이니까.”

―장례식장에 어떤 음악이 울리길 바라나.


“죽었는데 지겨운 음악을 거기서 또? 나 혼자 저 멀리 아무도 모르는 데에 가서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르게 사라졌으면 한다.”
 

  
용인=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채널A 김범석 기자
#신중현#한국 록의 대부#신중현 버클리음대 명예박사#라이어널 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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