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창인 박사의 오늘 뭐 먹지?]어란, 보타르가-가라스미도 못 따르는 우리 맛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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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로 뽈뽀의 어란 타야린. 석창인 씨 제공
비스트로 뽈뽀의 어란 타야린. 석창인 씨 제공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생선의 알을 버리지 않고 요리해서 먹는 것은 만국 공통일 겁니다. 대표적으로는 철갑상어알(캐비아), 연어알, 성게알(실제는 성게의 난소와 정소), 명란, 청어알 등인데, 손품이 많이 들어가기로는 숭어알로 만드는 어란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어란 하나를 완성하는 데 대략 50일이 걸리고, 고르게 말리면서도 납작한 형태를 위해 알을 뒤집는 행위를 400번 이상을 해야 한다니 말입니다.

조선시대 때부터 임금님 진상품이었다는 어란의 역사가 더 오래일까, 아니면 막부 이후 쇼군 진상품이었다는 일본의 가라스미가 더 원조일까 하는 문제는 음식문화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꽤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하지만 대만에서도 우위쯔(烏魚子)라 불리는 어란이 있으니 인접 세 나라가 서로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유럽식 어란인 이탈리아의 ‘보타르가’는 외양과 제조법이 비슷하지만 우리식 어란에 견줄 바가 못 됩니다. 보타르가는 참치알이나 숭어알로 만드는데 워낙 염장을 심하게 해 짠맛이 모든 것을 덮어버리기 때문이지요. 일본도 소금 위주로 가라스미를 만들지만 우리의 어란에는 조선간장과 참기름이 더해집니다.

그런데 일본은 왜 어란을 가라스미라는 이름으로 불렀을까요? 임진왜란 전에 일본 전역을 평정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나가사키를 방문했을 때, 지역 영주가 숭어알젓을 상납하자 희한한 맛을 내는 놈의 이름이 뭐냐고 물었답니다. 그러나 당시까지도 이름이 없던 터라 당나라에서 만든 먹과 생김새가 비슷한 것에 착안해 ‘가라스미’(당나라 먹)라고 둘러댔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어란은 민어알이나 조기알로도 만들지만, 역시 숭어알로 만들어야 제맛입니다. 송수권 시인이 쓴 ‘남도의 맛과 멋’에는 남도 지역에서 부르는 숭어의 다양한 명칭에서부터 명인 김광자 할머니의 어란 제조법까지 자세히 기술돼 있습니다.

옛날 양반들은 어란을 먹을 때 식칼을 불에 달궈 최대한 얇게 썬 뒤에 앞니 사이에 끼워 술 한 잔에 한 번씩 핥아서 먹었다고도 하는군요. 어느 식당에서는 어란을 깍두기처럼 썰어 술안주로 내놓길래 황송하면서도 한편으론 어란 요리가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의 요리 사이트에 검색되는 어란 관련 레시피만 30만 건이 넘는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어란 요리는 어란을 얇게 썰어 얹은 파스타입니다. 마치 트러플을 토핑한 것처럼 말입니다. 굳이 이탈리아 국수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소면에 얹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제 영암의 김광자 명인은 백수를 바라봅니다. 우리 요식업계도 다양한 어란 요리를 개발해 온 할머니를 위한 헌정 이벤트를 해봄은 어떨지요?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s2118704@naver.com

○ 비스트로 뽈뽀 서울 서초구 방배로42길 29, 어란 타야린, 2만9000원

○ 갈리나데이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3길 1-4, 보타르가 파스타, 3만5000원

○ 이태리재 서울 종로구 율곡로1길 74-9, 성게어란 파스타, 3만5000원
#어란 타야린#보타르가#가라스미#숭어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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