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일생 최악의 악몽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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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I Ask’가 담긴 아델의 앨범 ‘25’. 강앤뮤직 제공
‘All I Ask’가 담긴 아델의 앨범 ‘25’. 강앤뮤직 제공
2019년 3월 19일 화요일 맑음. 지구가 멈춘 날.
#310 Adele ‘All I Ask’(2015년)

요즘 일상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순간이 있다.

공공장소에서 긴급재난문자가 올 때다. 주변의 모든 스마트폰이 일제히 신경을 거스르는 경고음을 내는 찰나. 어마어마한 사이렌 소리는 사방에서 메뚜기 떼처럼 튀어 오른다. 처음엔 놀랐지만 이제는 일상이 됐다. 시끄러우니 일단 화면 꺼짐 버튼부터 누르고 만다. 긴급재난문자치고는 덜 긴급한 내용이 꽤 많다는 데 익숙해져서다. ‘삶의 촌각이 참으로 소중하니 늘 긴급하게 살라’는, 다소 시적인 세상의 경고라 믿기로 했다.

며칠 전, 일생 최악의 악몽을 꿨다. 배경은 한낮의 카페였다. 커다란 홀과 시원하게 경치를 보여주는 전면 유리창. 쾌적한 곳이었다. 사방에서 긴급재난문자 경고음이 울리기 전까지는….

소름 끼치는 사이렌과 동시에 ‘얼음’. 시공간이 멈췄다. 세상 만물이 은색 목탄화처럼 정지. 옛 TV 만화 ‘이상한 나라의 폴’의 한 장면처럼. 나의 몸은 대리석처럼 굳었다. 만물이 굳었으니 도와줄 이도 없다. 시각과 의식이 있다는 것이 더 신기한 상황. 이내 겨드랑이 쪽에 강한 전류가 흐르더니 팔 위쪽부터 점점 신체가 부스러져 없어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이 0.5초 내에 일어났다. 전율하며 깨어났다.

긴급재난문자의 순간이 알게 모르게 노이로제가 돼 쌓인 걸까. 대단한 공포였다. 무(無)의 심연을 향한 급전직하. 이유도 모른 채 손쓸 틈 없이 닥친 순간적 절멸.

인사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작별이란 야속하다. 세상의 끄트머리에 더도 덜도 말고 노래 한 곡 부를 시간, 들을 시간이라도 주어진다면 어떨까란 생각을 해봤다. 이를테면 아델의 노래 ‘All I Ask’. 이 노래에 갇힌 주인공은 마지막에 몰려 있다.

‘바라는 건 이것뿐/당신과 함께하는 마지막 밤이라면/그저 친구, 그 이상으로 날 안아줘’

선율의 드라마도 강하다. 후렴구 진입 직전 5음계를 미끄러지듯 치고 올라온 멜로디는 ‘E-C#7’의 절박한 화성(和聲)을 만나 작은 소용돌이로 휘돈다. ‘마지막 밤이라면’에서 시-라-솔#의 단3도 안을 서성이다 주저앉아 흐느끼는 것이다.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아델과 함께 작곡했다. 두 사람은 곡의 동기를 떠올린 뒤 “자,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슬픈 노래로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아델은 이 곡을 자신이 지금껏 발표한 것 중 가장 혼신의 힘을 다한 노래로 꼽는다. 마지막이란 상상만으로도 그러한 것이다.

‘이 사랑의 끝도 중요해요/만약 더는 다른 사랑 못 한다면…’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아델#all i ask#브루노 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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