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예술가 뱅크시, 너 누구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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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9일 화요일 맑음. 신원.
#295 Massive Attack ‘Teardrop’(1998년)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이런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서울 시내 곳곳에 나붙을 겁니다. 마지막 포스터가 공개되기 전까지 가수의 신원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합니다.”

몇 년 전 어떤 가수의 제작사 대표가 찾아왔다. 유명인의 신원을 숨긴 채 ‘티저 포스터’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규모 홍보 계획을 설명했다. 그 가수가 누구인지는 한 달 만에 밝혀졌지만 세계적인 예술가 뱅크시의 신원은 28년 동안 오리무중이다. 최근 영국 런던의 경매장에서 그의 15억 원짜리 작품이 낙찰되는 순간, 미리 설치된 파쇄기에 의해 그림이 찢기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뱅크시의 신원에 관한 가장 유력한 가설은 그가 영국 전자음악 그룹 ‘매시브 어택’의 리더 로버트 델 나이어라는 것이다. 매시브 어택은 ‘Blue Lines’ ‘Mezzanine’(사진) 같은 명반을 남기며 1990년대 트립합(trip hop) 장르로 깊은 족적을 새긴 팀이다. 몽환적인 전자음과 묵직한 힙합식 리듬을 결합해 불길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매시브 어택은 2010년 경기 이천시에서 열린 지산밸리록페스티벌에 참가했다. 그날 공연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Angel’ ‘Teardrop’ ‘Inertia Creeps’ 같은 명곡의 안개 같은 음향이 세기말적 조명 효과와 결합돼 짙은 밤의 캔버스를 기기묘묘한 분위기로 채색했다.

나이어가 뱅크시라는 추측도 매시브 어택과 관련이 있다. 뱅크시의 그라피티가 세계 곳곳의 도시에 나타난 날짜가 매시브 어택의 월드투어 스케줄과 기막히게 일치한다는 것. 2016년 영국 저널리스트가 밝혀냈다. 뱅크시는 나이어의 예술이 큰 영향을 줬다고 밝혔다. 나이어는 매시브 어택 활동 이전에 그라피티 아티스트였다.

올해 초 다른 가설이 나왔다. 밴드 ‘고릴라즈’의 멤버이자 만화가인 제이미 휼렛이 뱅크시라는 주장이다. 뱅크시는 이를 모두 부인한다. 사람들은 뱅크시가 다수의 아티스트로 이뤄진 공동체라 믿기 시작했다.

혹시 어느 날, 뱅크시가 2010년 한국에 남기고 간 작품이 발견되는 건 아닐까? 내부자는 알고 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뱅크시#티저 포스터#매시브 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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