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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Old Boxer, 나도 복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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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Old Boxer, 나도 복서다.

이형삼 전문기자 입력 2017-12-13 03:00수정 2017-12-13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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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의 매력에 흠뻑 빠진 치과의사 도승진 씨(54). 사진 강동영 전문기자 kdy184@donga.com
《 사라테는 사모라를 잡고, 고메즈는 사라테를 잡고,산체스는 고메즈를 잡고…. 이 대목에서 벌써 가슴이 부르르 떨린다면 당신도 ‘올드복서’ 후보다. 1970∼80년대 경량급 KO왕들의 꼬리 무는 명승부를 황홀하게 지켜봤고, 홍수환의 영화 같은 4전5기에 전율했으며, 김태식 장정구 유명우 박종팔을 흉내내면서 허공에 주먹 몇 번 휘둘러본 세대라면 언젠가는 드레스셔츠와 실크 넥타이를 벗어 던지고 샌드백 앞에 설 지 모른다. 》
 
요즘 복싱짐 아침반의 주축은 40, 50대다. 홍수환스타복싱체육관 제공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니 찌든 낯빛과 처진 뱃살에 분통이 터진다. 주먹이 운다. 더 이상 셔츠 소매를 끌어 내려 떨리는 주먹을 감추지 않는다. 주먹에 압박붕대를 감고 글러브를 낀다. 아드레날린이 끓어넘치던 사춘기 시절 이후 로망으로만 간직해온 복싱의 꿈에 다가가며 몸과 마음에 값진 보상을 안겨준다….

치과의사 도승진 씨가 국제복싱클럽에서 섀도복싱을 하고 있다. 강동영 기자
도승진 누가치과 원장(54)은 진료가 끝나면 근처 복싱 체육관으로 달려가 두 번째 일과를 시작한다. ‘강한 남자’를 향한 청년기의 갈망을 실천에 옮긴 건 치과 개원 5년 후인 38세 때부터다.

“치과의사는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다. 환자들의 통증과 불편함이 주관적인 느낌일 때가 많고, 별것 아닌 걸로 여긴 증상이 막상 들여다보면 심각한 상황인 경우도 흔해 의사와 환자 사이에 미묘한 긴장이 있다. 하루 종일 같은 자세로 진료하다 보면 몸도 굳는다. 복싱은 스트레스 해소와 힐링에 최적의 운동이다. 어쩌다 복싱 연습을 빼먹으면 아내가 ‘당신 눈빛이 너무 날카롭다’며 단박에 알아본다.”

충분한 준비운동은 필수. 홍수환스타복싱체육관 제공
한석정 동아대 총장(64)은 매일 아침 레프트잽 100번을 내뻗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42세 때부터 22년째 복싱 체육관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지난해 총장에 취임한 그는 “총장이 되니 복싱을 그만둬야 할 이유가 100가지쯤 생겼지만 주 1회 이상은 체육관을 찾으려 한다”며 아쉬운 대로 총장실 한쪽에 펀칭백을 매달고 오갈 때마다 툭툭 두들기면서 더운 피를 식힌다.

“복싱은 인간의 공격 욕구, 내가 세다는 걸 보여주려는 남자의 본능을 스포츠로 발현하는 통로다. 개인적으로는 열등감을 긍정적으로 해소하는 계기도 됐다. 나는 대학입시 4수를 했고, 낙제와 학사경고 끝에 학과에서 쫓겨났고, 직장을 몇번 옮기면서 실업자 생활도 했다. 실패를 많이 맛본 사람은 복싱과 친해지기 쉽다. 복싱에선 맞아도 버텨내고 넘어져도 일어서는 게 공격만큼이나 중요하니까.”

요즘은 건강관리에 관심이 크고 경제력을 갖춘 중장년 복서를 장기 회원으로 유지하는 게 복싱 체육관의 생존과 직결된다. 더욱이 이들 세대는 한국 복싱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로맨티스트들이다. 상당수 체육관들이 ‘손 많이 가고 돈 안 되는’ 선수 지망생을 받지 않는 대신 중장년 회원들의 로망을 자극하려 애쓰는 이유다.

이충섭 홍수환스타복싱체육관장은 “아침 직장인반은 40, 50대가 주축이다. 작고 정교한 동작으로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을 병행할 수 있어 중장년 복서 지망생은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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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프로그램도 일반인과 중장년층 중심으로 짠다. ‘6개월간 샌드백 접근 금지’니 ‘1년 동안 줄넘기와 스텝만 배웠다’는 얘기들은 이제 전설이다. 임휘재 국제복싱클럽 관장은 “3개월 안에 모든 기본기를 마스터해 준다. 지루하지 않도록 계속 진도를 나간다. 6개월이면 제대로 된 스파링도 가능하다”고 했다. 이충섭 관장은 등록 첫날부터 미트를 대주며 때려보게 한다. ‘손맛’을 느껴봄으로써 잠자는 본능을 깨우려는 의도에서다.

미트를 받아주는 유제두 관장(오른쪽). 이형삼 기자
올드복서 입문의 주목적이 체중감량과 건강관리라면 꽤 만족스러운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지난해 초부터 복싱을 배운 이동현 씨(52·섬유회사 임원)는 “아침에 1시간만 운동해도 바로 1, 2kg이 빠진다. 작년에 입던 바지를 다 줄여 입고 있다. 업무상 주 3¤4회 술자리를 갖지만 복싱 연습으로 주독이 빠져서인지 몸이 늘 개운하다”며 흡족해했다. 주니어미들급 세계 챔피언이었던 유제두 유제두권투체육관장은 “배 나오고 비만한 40, 50대는 한 달 동안 매일 샌드백 3라운드(3분 1라운드 X 3회)만 쳐도 확실한 효과를 본다”고 장담했다.

앉은 자세로 오래 일하는 굴삭기 기사 정진우 씨(41)는 복싱으로 하체를 단련한다. 강동영 기자
도승진 원장은 172cm에 83kg이다. 의학적으로는 ‘과체중’일지 몰라도 군살 하나 없이 다부진 ‘완전 근육질’이다. 복싱 수련 6개월 만에 일어난 변화다. 그는 복싱이 중장년 건강에 좋은 이유를 끝없이 이어갔다. 즉 △모든 근육을 골고루 발달시킨다. 가령 펀치를 제대로 뻗으려면 발목-허벅지-허리-어깨-팔-손목을 조화롭게 사용해야 한다. △지구력 순발력 유연성 심폐기능 면역력 운동감각 등 신체기능을 두루 활성화한다. △양손을 쓰느라 양쪽 뇌를 고루 사용하며, 줄넘기를 많이 하면 뇌 혈류량이 증가해 노화와 치매 예방에 좋다. △혈관 확장, 혈액순환 개선에 효과적이라 성기능 향상에 도움을 준다….

신체가 부실하면 정신도 흔들리게 마련. 몸의 변화는 내면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석정 총장은 “복싱 덕분에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건 뒷골목에서 시비가 붙었을 때나 활용되는 게 아니다. 쉽게 흥분하지 않고, 참을성이 있고, 스태미너가 든든하기 때문에 업무와 비즈니스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복싱 수련 3년째인 배진형 한국성서대 교수(48·여)는 “하루를 시작하는 퀄리티(質)가 다르다. 이젠 일상에 끌려다니면서 버둥거리지 않는다. 요즘 어디에서 체육관에서처럼 마음껏 소리 지르고 뛰어보겠나”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많은 사내들이 궁금해하는 의문 하나. 격투기, 호신술로서의 복싱은 과연 어떤 위력을 지녔을까. 러시아 복서가 조직폭력배 서너 명을 볼링핀 쓰러뜨리듯 일격에 잠재우는 유튜브 동영상은 현실에서도 놀라울 게 없는 장면일까. 두 사람의 답변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열혈 권투인들의 의견임을 헤아려서 듣기 바란다.

“지금껏 누구와 ‘맞짱’ 떠본 적 있나?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전은 경험이 좌우한다. 복싱인은 매일 주먹을 휘두르고 피하면서 실전 연습을 한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 그들의 눈빛과 걸음걸이는 전사(戰士)를 닮았다. 어딜 가도 시비 거는 사람이 없고, 건다 해도 주눅 들지 않는다.”(도승진 원장)

“손이 발보다 빠르기에 좁은 공간에선 복싱이 최고다. 상체와 정면만 공격하니 신속하고 정확하다. 누군가가 도발해도 더킹(상체를 낮춰 피하는 기술)과 위빙(머리와 상체를 좌우로 흔들어 피하는 기술)만 할 줄 알면 다 피한다. 상대를 때리기보다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흘려보냄으로써 큰 싸움을 막는 것이 호신(護身)의 의미에 더 가깝다.”(이충섭 관장)



■“복싱은 쉽고, 안전하고, 경제적”

복싱은 운동량이 많고 과격해 평소 몸 관리에 소홀했던 중장년이 도전하기엔 버거워 보일 수 있다. 탄탄한 기초체력 없이는 강도 높은 연습을 소화하기 어렵고 부상 위험도 크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복싱인들은 “쉽고 안전하게 기초체력을 다질 수 있는 운동으로 복싱만한 게 없다”고 입을 모았다.

체육관에서 1시간¤1시간 반 운동할 경우 체조, 스트레칭, 줄넘기, 서킷 트레이닝, 인터벌 트레이닝 등 준비운동만 30분쯤 한다. 몸을 충분히 풀어 부상 요인을 줄일 뿐더러 이것만으로도 효율적인 체력훈련이 된다.

복싱 체육관에선 스파링이 없을 때도 쉼 없이 공(gong)이 울린다. 실전에서처럼 ‘3분 운동 후 1분 휴식’ 리듬이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강약을 조절하면서 운동하기 때문에 심장에 무리가 덜 간다고 한다. 안면부 충격을 덜어주는 헤드기어, 손과 손목 부상을 막는 압박붕대와 글러브, 치아를 보호하는 마우스가드 등 ‘안전 도우미’들의 역할도 크다. 초보자는 스파링도 약속대련 식으로 할 때가 많다.

임휘재 관장은 “중장년 입문자들의 각기 다른 체력 조건에 맞도록 프로그램을 세분화해 연습시킨다”며 “1주일에 2, 3일씩 3개월만 버티면 새 세상이 열린다”고 말한다. 이충섭 관장은 “선수들 줄넘기 하는 것 보고 질려서 복싱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던데, 줄넘기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다른 운동법도 많다”고 했다. 일반인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복싱 매뉴얼을 그만큼 유연하게 적용한다는 얘기다. 요즘은 날씬한 몸매를 위해 글러브를 끼는 여성 회원들도 체육관의 주요 고객이라 함께 운동하는 중장년 남성 복서들의 훈련 열기를 높인다.

값비싼 장비 없이 맨손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도 복싱의 장점. 대부분의 장비는 체육관에 있는 것을 함께 쓴다. 개인용으로 갖출 만한 것은 압박붕대와 백장갑(샌드백 치는 글러브) 정도다. 시합 때 신는 복싱 슈즈는 쿠션이 없어 장시간 운동하기 불편하다.

일반 조깅화를 신고 연습하면 된다. 복싱 체육관 회비는 월 8만∼15만원선. 3개월 이상 장기등록하면 큰 폭으로 할인해주는 곳이 많다.

이형삼 전문기자 hans@donga.com
#복서#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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