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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30000호]“代 물려 읽는 동아일보, 온가족 비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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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30000호]“代 물려 읽는 동아일보, 온가족 비타민”

김아연 기자 입력 2018-01-26 03:00수정 2018-01-26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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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0번의 설렘… 평생 함께하겠습니다 《 동아일보는 지령 3만 호를 맞아 지난해 12월 11일부터 이달 24일까지 e메일과 동아일보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동아일보에 얽힌 독자들의 사연과 일화 약 400건을 접수했습니다. 독자들이 보내 주신 소중한 사진들은 한 달여 동안 10여 차례에 걸쳐 지면과 동아닷컴을 장식했습니다. 독자들은 동아일보가 ‘역사의 기록이자 평생 함께하고픈 친구이며 자손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산’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동아일보는 참여하신 독자 모두에게 감사의 선물을 증정할 예정입니다. 》
 
야구기사에 빠진 남매 초등학교 6학년생 원민재 군은 야구 박사다. 집에 TV가 없다 보니 중계방송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야구 지식은 전문가 못지않다. 아침마다 읽는 동아일보 덕분. 원 군의 어머니 최미경 씨는 “오빠가 신문을 읽고 있으면 여동생도 따라 보곤 한다”고 전해 왔다.
경기 안양시에 사는 회사원 겸 주부 강영미 씨는 둘째 딸 장혜진 양(18)이 태어난 2000년 6월 5일자 동아일보 지면을 18년째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혜진 양이 성인이 되면 선물로 주기 위해서다.

강 씨는 “지난 18년간 동아일보에 훈훈한 소식과 가슴 아픈 사연이 번갈아 실렸듯 딸도 종종 성장통을 앓으며 성인 문턱에 다다랐다”며 “고3 수험생이 된 딸이 올해 반드시 원하는 목표를 이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딸이 동아일보와 함께 성장했듯 더 많은 사람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

○ 가족을 묶어주는 끈


동아일보 사회부 황성호 기자(31)의 부친 황해수 씨(63)는 두툼한 동아일보 기사 묶음을 들고 인증샷을 찍었다. 2013년 입사한 황 기자가 지난 5년간 쓴 기사들이다. 황 씨는 “매일 아침 동아일보를 넘기면서 아들이 쓴 기사를 발견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극진한 ‘아들 사랑’을 내비쳤다. 이어 “자식이 3만 호를 맞은 동아일보에 다닌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며 “앞으로도 국민의 눈을 뜨게 하고 귀를 열게 하는 신문으로 자리매김해 달라”고 주문했다.

제주도에 사는 ‘딸부자 엄마’ 오연숙 씨도 동아일보로 세 딸을 키웠다는 사연을 전해왔다. 올해 고등학생이 되는 첫째 김유정 양, 중학교 입학을 앞둔 둘째 현정 양,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막내 윤정 양 모두 ‘동아일보 마니아’가 됐다. 오 씨는 “동아일보를 꾸준히 읽고 이를 소재로 글짓기를 했던 첫째와 둘째는 교내외 글짓기 상을 휩쓸고 있다”며 “온 가족이 한 신문을 같이 읽자 대화 소재도 늘어났고 예전보다 더 화목한 가족이 됐다”고 자랑했다.
 

○ 인생의 터닝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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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시에 사는 독자 조태욱 씨는 한때 교통사고에 실직, 이혼까지 겹쳐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하고 5년째 금주하는 데에는 동아일보의 도움이 컸다. 조 씨는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사연을 접하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이후 동아일보를 정기 구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구독료 1만5000원이 적지 않은 돈이라 망설였는데, 지금은 훌륭하고 다양한 지식을 이렇게 싼 돈으로 볼 수 있어 감사하다”고 전해 왔다.

경기 안양시에 사는 4년 차 직장인 김준영 씨(31)에게 동아일보는 인생의 도우미다. 그는 대학 4학년이던 2012년 7월 5일 동아일보 투데이 면에 무려 249건의 대외활동에 지원한 대학생으로 등장했다. 당시 그를 인터뷰한 기자는 유명 소설가로 변신한 장강명 씨(43). 김 씨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04년 ‘동아일보-삼성 열린장학금’ 1기 장학생으로 뽑힌 적도 있다”며 “저를 세상에 알려주고 장학금까지 준 동아일보의 평생 애독자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충남 태안군에 사는 배정자 할머니도 매일 2시간씩 동아일보를 정독하는 20년 애독자다. 배 할머니는 “신문을 읽으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낀다”고 이유를 밝혔다. 2009년 동아일보에 실린 한양사이버대 신입생 모집 광고를 보고 응시해 늦깎이 대학생이 됐고 2013년 졸업했다. 배 할머니는 “현재 사는 곳은 대도시처럼 새벽에 신문이 바로바로 배달되지 않는다. 우편으로 신문이 오는 시간만 손꼽아 기다린다”며 ‘동아일보 바라기’임을 자랑했다.

○ 물려주고 싶은 보물

지령 3만 호를 축하하는 독자들의 특별 선물도 속속 도착했다. 대구에 사는 노대균 할아버지는 손수 지령 3만 호를 축하하는 만화를 그렸다. 1962년 화폐개혁 직전에도 동아일보 독자만화란에 만화를 투고한 적이 있는 노 할아버지는 “당시 기고료가 1000환이었음이 아직 생생하다”며 “3만 호를 기념한 만화가 실린 동아일보를 예비 독자인 손자와 함께 보겠다”고 강조했다.

40년 애독자 신동수 할아버지는 1986년 10월 1일 발행한 동아일보 지령 2만 호 사진을 보냈다. 신 할아버지는 “3만 호도 잘 보관하겠다”며 “내가 약 30년 후 발행될 4만 호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자손들이 4만 호까지 보관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에 사는 홍용표 할아버지는 동아일보로 4행시를 지었다. “‘동’녘하늘의 햇살과 같이, ‘아’시아의 중심 대한민국, ‘일’출로 국민의 삶을 밝혀 온 ‘보’배로운 동아일보, 영원히 빛나라.”

손님들이 무료하지 않도록 동아일보를 항상 매장에 비치해 둔다는 미용실 운영자 김정남 씨, 한일 관계를 자세히 다루는 기사가 많아 동아일보를 챙겨 본다는 일본 교토 리쓰메이칸대 박사과정 재학생 이마사토 하지메 씨, 신문 용지를 생산하는 회사에서 일해 동아일보가 더 각별하다는 김춘일 씨…. 지령 3만 호는 이 모든 독자와 같이 만든 합작품이다.
 
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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