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빨대-텀블러-재생 종이 봉투… “일회용 플라스틱 아웃”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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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환경오염 넘어 건강위협까지… ‘플라스틱과의 전쟁’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레스토랑 ‘더 피커’의 벽에 ‘플라스틱 포장을 해주지 않는다’ 등의 환경보호 문구가 적혀 있다. 환경오염을 
넘어 인류 건강을 위협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퇴출하기 위한 움직임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레스토랑 ‘더 피커’의 벽에 ‘플라스틱 포장을 해주지 않는다’ 등의 환경보호 문구가 적혀 있다. 환경오염을 넘어 인류 건강을 위협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퇴출하기 위한 움직임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카페 ‘보틀팩토리’. ‘빨대 없이 마셔보는 건 어떠세요? 만약 빨대가 필요하시면 카운터에서 스테인리스·유리빨대를 사용해주세요.’

‘노(No) 플라스틱’ 카페로 알려져 찾아간 이곳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이 천으로 된 잔 받침에 써진 이 문구였다. 한쪽 테이블 위에는 다양한 색깔의 텀블러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기부를 받은 것으로 커피를 들고 나갈 때 빌려주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플라스틱 용기나 빨대를 볼 수 없다. 손님이 커피나 차를 추문하면 머그잔이나 유리잔에 담아 제공한다. 테이크아웃을 원하는 손님에게는 보증금을 받고 카페가 마련한 텀블러나 유리병에 담아준다. 반납하면 다시 돈을 돌려준다.

플라스틱은 한때 기적의 신소재였으나 쉽게 썩지 않는 특성 탓에 환경오염의 주범이 됐다. 이뿐만 아니라 미세 플라스틱으로 버려지면 살상 무기로 변해 미세먼지 못지않게 인간과 동물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이라는 인식이 확산돼 전 세계적으로 퇴출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보틀팩토리는 이런 ‘플라스틱 아웃’의 열풍이 우리 생활 주변까지 불고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 해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은 2016년 98.2kg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비닐봉지 사용량도 한 해 1인당 420개(2015년 기준)로 압도적이다.

정부는 5월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50% 줄이기로 했다. 8월부터는 커피전문점 매장에서 일회용 플라스틱컵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생산하는 데 5초, 분해하는 데 500년이 걸린다는 플라스틱을 ‘아웃’시키는 것은 환경운동 차원을 넘어 ‘전쟁’이 되고 있다. 사용을 중단하고, 대체하고, 없애고…. 플라스틱 쓰레기와의 전선은 국내외에서 날로 확대되고 있다.

○ 플라스틱 빨대는 대나무, 쌀로…

스타벅스는 전 세계 매장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를 퇴출시킬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9월 10일부터 전국 100개 매장에서 종이 
빨대를 사용하고 있다. 8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점에서 다양한 색상의 종이 빨대를 공개하는 행사를 가졌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스타벅스는 전 세계 매장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를 퇴출시킬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9월 10일부터 전국 100개 매장에서 종이 빨대를 사용하고 있다. 8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점에서 다양한 색상의 종이 빨대를 공개하는 행사를 가졌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보틀팩토리’의 사장 이현철 씨(35)는 길에 버려진 일회용 플라스틱을 보며 걱정하다 2016년 카페를 열었다고 한다. 이 사장은 9월 중순에는 홍익대 앞 카페 7곳과 함께 일주일 동안을 ‘유어보틀위크’로 지정해 플라스틱 일회용품을 일절 쓰지 않는 행사도 가졌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레스토랑 ‘더 피커’. ‘플라스틱, 비닐과 같은 환경에 유해한 소재를 중심으로 다양한 포장 폐기물의 양적 감소를 목표로 운영되고 있다’. 식당 메뉴를 알리고 고객을 끌어야 할 곳에 환경보호 안내판이 먼저 눈에 띄게 해놓았다. ‘플라스틱 포장을 하는 행위는 1초 만에 구매해 25분 동안 소지하기 위해 지구를 쓰레기통으로 만드는 소비다’라는 문구도 있다.

이곳에서는 커피나 차를 주문하면 머그잔이나 유리잔에 담아 준다. 빨대 역시 제공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일자형, ㄱ자형 스테인리스 빨대(3000원)와 대나무 빨대(5000원)를 판매한다. 대나무 빨대는 세척법이 자세히 적힌 설명서를 준다. 빨대 세척솔도 살 수 있다.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다회용 빨대의 평소 사용을 유도하고 있다.

종로구 창신동의 꽃신 업체 ‘연지곤지’ 김광필 대표는 지난해 플라스틱 대신 신발에 사용할 가벼운 소재를 찾다가 우연히 쌀로 만든 빨대를 개발했다. 원료는 쌀과 태국산 타피오카. 빨대가 단단해지도록 설탕과 소금도 들어간다. 몇 시간 동안은 물에 들어가도 형태 변화가 없고, 특유의 플라스틱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장점 때문에 주문이 폭주하고 있다. 단가는 일반 플라스틱 빨대보다 비싸지만 기꺼이 친환경 빨대를 쓰겠다는 곳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가도 받았다.

김 대표는 “호텔 몇 곳에 납품을 하고 있고, 카페만 해도 100곳에 나가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키즈카페에서도 쌀 빨대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며 “6개월이 지나면 완전히 분해가 되고, 먹어 없앨 수도 있는 쌀 빨대는 100% 환경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5∼6개월이면 생분해되는 천연 봉투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 브랜드 ‘닥터로빈’은 자사가 개발한 쌀 빨대를 전국 매장에 보급하고 있고,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빨대도 제공할 예정이다. 옥수수 빨대는 1년 안에 땅에서 생분해된다.

삼성은 삼성전자와 삼성SDS, 삼성전기 등 일부 계열사에서 펼쳤던 플라스틱 줄이기 캠페인을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SDI, 삼성물산, 호텔신라 등의 계열사로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사내 식당 등에서 플라스틱과 비닐로 포장해주던 것을 재생 종이로 만든 봉투로 대체한다. 일회용 숟가락과 포크도 비닐 포장을 없애고 봉투에 바로 담아 주기로 했다.

GS리테일은 9월 자사 편의점과 호텔에서 고객에게 제공하던 플라스틱 빨대를 모두 종이 빨대로 바꿨다. 7월에는 업계 최초로 종이 쇼핑백을 도입했다.

공공기업도 가세하는 상황이다. 한국조폐공사는 지폐를 만드는 원료로 일반 종이보다 질긴 면펄프로 플라스틱 빨대를 대체할 종이 빨대 개발 계획을 지난달 25일 발표했다.

○ 미세먼지보다 더 무서운 미세 플라스틱

국내외 환경 전문가들이 매우 우려하는 건 ‘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대응이다. 미세 플라스틱은 통상 5mm 이하의 플라스틱 조각을 말한다. 페트병이나 스티로폼 등 쓰고 버린 플라스틱이 잘게 부서져서 생긴다. 공업용 연마제나 화장품 등에 쓰기 위해 제조된 것도 있다. 하수 등을 통해 강과 바다로 흘러간 미세 플라스틱은 살충제, 수은 등과 반응해 독성 물질이 되고 해양 생물을 거쳐 사람의 체내로 유입되면 치명적인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오스트리아 환경청과 빈대학의 필리프 슈바블 박사 연구진은 지난달 22일 통합유럽위장병학회에서 “핀란드, 이탈리아, 일본 등 세계 8개국 사람들의 대변에서 10g당 평균 20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연구 결과를 두고 객관성 논란이 있지만 최승일 고려대 교수(환경시스템공학과)는 “미세 플라스틱의 유해성과 대응 필요성을 확인해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연구가 있었다. 9월 목포대가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올해 초까지 판매된 국내산과 외국산 천일염 6종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 국내로 수입된 프랑스산 천일염 100g에서는 미세 플라스틱 242개가 검출됐다. 국내산 천일염 28개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국내 1인당 연간 평균 소금 소비량이 3.5kg임을 감안하면 최소 연간 500개 이상, 많으면 8000개 가까운 미세 플라스틱이 개인의 몸속에 들어와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지난해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공개한 ‘해양 미세 플라스틱에 의한 환경 위해성 연구’에서는 국내 연안에서 채취한 굴, 게, 지렁이 139개 개체 중 135개 개체(97%)의 내장과 배설물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 수돗물, 식수원인 한강 자체도 안심할 상황이 못 된다. 지난달 31일 국립환경과학원이 공개한 ‘담수 내 미세 플라스틱 분포 현황’에 따르면, 한강 1m³당 0∼2.2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

최승일 교수는 “우리가 미세 플라스틱을 측정하는 방법이 아직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더 잘게 부서진 것들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미세 플라스틱이 몸속 소화기 계통에서만 머무르는 게 아니고 그 이상까지 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는 것에 비춰 우리의 대처나 인식 수준은 아직 미흡한 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미세 플라스틱 검출 기준이나 환경 기준치도 없다.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자료도 미흡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해 7월 ‘화장품 안전 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서 미세 플라스틱을 사용 금지 품목에 포함시킨 정도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홍상희 책임연구원은 “미세 플라스틱 위해성이 너무 늦게 확인되면 피해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예방이 중요하다”며 적극적인 대안 마련을 강조했다. 조경덕 서울대 교수(환경보건학과)는 지난달 30일 ‘2018 환경정책 심포지엄’에서 미세 플라스틱 저감 방안 관련 주제 발표를 통해 “미세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수 처리장의 미세 플라스틱 처리 공정을 개발하고 동시에 하수처리장, 정수처리장, 지표수에 대해 정확하고 통일된 미세 플라스틱 모니터링 기법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피흘리는 바다거북이 준 경고

코스타리카 해안에서 구조된 바다거북의 한쪽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있다가 제거돼 피가 줄줄 흐르고 있다. 2015년 일어난 일이지만 올해 유튜브를 통해 공개돼 충격을 주었다. 유튜브 화면 캡처
코스타리카 해안에서 구조된 바다거북의 한쪽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있다가 제거돼 피가 줄줄 흐르고 있다. 2015년 일어난 일이지만 올해 유튜브를 통해 공개돼 충격을 주었다. 유튜브 화면 캡처
최근 유튜브에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바다거북의 영상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2015년 코스타리카 해안에서 길이 12cm의 플라스틱 빨대가 한쪽 코에 박힌 거북을 해안 주변을 탐사하던 연구진이 발견해 빨대를 제거해 주는 장면이었다. 빨대를 빼자 피를 흘리면서 간신히 숨을 몰아쉬는 거북의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바다거북은 플라스틱으로 신음하는 생태계의 대표 피해자가 됐다. 죽은 바다거북의 사체에서 플라스틱이 나왔다는 뉴스가 잇따르고 있다. 9월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는 자국 해변에서 발견된 1000마리의 바다거북 사체 중 52%의 내장에서 수백 조각의 플라스틱이 나왔다며 플라스틱이 바다거북의 사망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플라스틱은 바다 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다. 유엔은 매년 바다로 흘러드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800만 t으로 매년 8.4%씩 늘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환경오염#플라스틱#일회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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