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주애진]일회용품 권하는 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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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애진 산업2부 기자
주애진 산업2부 기자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종이컵에 담겨 나온 커피를 보고 깨달았다. 아차, 또 머그잔에 달라는 말을 깜박했구나. 카페에서 자주 저지르는 실수다.

올해 초 일회용품 사용량을 줄이겠다고 다짐하며 텀블러를 샀다. 평소 일회용품을 많이 쓰는 탓에 지인에게 “나무로 다시 태어나서 똑같이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핀잔을 들은 적이 있어서다. 카페에서 음료를 마실 때도 가급적 종이컵을 쓰지 않기로 했다. 지구 환경 보호에 동참해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결심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일상생활에 스며든 일회용품이 놀랄 만큼 많아서다.

일회용품 줄이기를 실천하면서 알게 된 건 대부분의 상점에서 일회용품이 ‘선택사항’이 아닌 ‘기본사항’이라는 사실이다. 자주 가는 프랜차이즈 카페에선 주문할 때 따로 말하지 않으면 일회용 컵에 음료를 준다. 그게 싫다면 “머그잔에 주세요”라고 해야 한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살 때도 필요한지 묻지 않고 알아서 일회용 젓가락을 챙겨준다. 집에서 먹을 음식이라 필요 없을 때마다 “괜찮습니다”라고 거절해야 한다.

왜 일회용품을 우선적으로 쓰는지 물어봤다. 카페 직원의 대답은 이랬다. “손님들이 일회용품을 더 좋아해요. 설거지할 필요가 없으니 저희도 좋고요.” 그 편리함 때문에 일회용품 소비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점점 더 무뎌지고 있다. 한국인 1명이 사용하는 비닐봉투 사용량은 연평균 420개로 알려졌다. 하루에 버려지는 일회용 종이컵은 7000만 개에 이른다. 최근 벌어진 ‘재활용 쓰레기 대란’의 뒷면에는 우리 사회의 일회용품 중독이 자리 잡고 있다.

‘넛지(nudge)’는 행동경제학에서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뜻한다. 금지나 명령 대신 옆구리를 툭 치는 듯한 부드러운 방식으로 타인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쓴 미국 시카고대 리처드 세일러 교수가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으면서 더 널리 알려졌다. 남자 화장실에 설치된 소변기에 검은색 파리를 그려두자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줄어들었다는 실험이 넛지의 대표적인 예다.

일회용품 소비에도 넛지를 적용해 보면 어떨까. 일회용품을 쓸지 말지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카페에서 주문을 받을 때 “머그잔에 드릴까요, 종이컵에 드릴까요”라고 묻는다면 무심코 종이컵을 쓰던 사람들도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얻는다. 음식을 포장해 가는 손님에겐 일회용 숟가락과 젓가락이 필요한지, 택배를 주문할 때 보호용 포장재(에어캡)를 원하는지 아닌지 물어보면 될 일이다. ‘당연히 필요하겠지’ 대신 ‘정말 필요할까’를 한 번만 생각해 본다면 의외로 많은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지 모른다.
 
주애진 산업2부 기자 jaj@donga.com
#일회용품#텀블러#종이컵#넛지#재활용 쓰레기 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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