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업 경영참여’ 길 열어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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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운용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기업가치 심각 훼손때 권한 행사”… 구체 기준 없이 주관적 판단 맡겨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내용을 담은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30일 확정했다. 국민연금은 당초 이사 추천, 위임장 대결 등 경영권 참여에 해당하는 활동을 제외했지만 이날 “기업 경영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 경우에 경영참여권을 행사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기업 가치 훼손’의 구체적인 판단 기준도 밝히지 않아 사실상 경영권 참여의 길을 열어놓은 셈이다.

국민연금은 이날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선언했다. 최대 논란이었던 경영 참여에 대해선 “관련법 개정 등 제반 여건이 구비된 후에 이행 방안을 마련해 시행한다”면서도 “그 이전에라도 기금운용위원회가 의결하면 시행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특정 기업에 이사 선임 및 해임을 요구하거나 다른 주주로부터 의결권을 위임받아 의결권을 행사하는 경영 참여가 언제든 가능해진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와 관련해 ‘관치’ 논란이 불거지자 이달 초 스튜어드십 코드 초안에서 해당 내용을 뺐다. 하지만 26일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서 근로자와 시민단체 대표 측이 “경영 참여를 명시해야 한다”는 취지로 강하게 반발해 스튜어드십 코드 의결이 무산되자 30일 회의에선 “원칙적으로는 배제하되 기금운용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제한적으로 행사한다”는 절충안에 합의했다.

기금운용위원장인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특정한 경우에, 기업의 경영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경우가 발생해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면 기금운용위원회가 의결해서 경영 참여를 할 수 있도록 타결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특정한 경우’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엔 “(기금운용위원들의) 주관적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다”라고 답했다. 국내 주식 투자액이 131조 원에 달하는 연기금의 경영 참여가 명확하지 않은 기준에 따라 정부 의도대로 이뤄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이 특정 기업의 경영에 개입할지를 결정할 땐 해당 기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지속적인 분석 등 고도의 투자 전문성이 요구된다”며 “기금운용위원회 위원들이 그런 전문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려우며, 결국 기업의 가치가 아닌 다른 관점에서 경영 개입이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스튜어드십 코드 ::

국민연금공단, 자산운용사 같은 기관투자가들이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스튜어드)처럼 고객을 대신해 투자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 참여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보고하는 행동 지침.

조건희 becom@donga.com·김하경 기자
#국민연금#스튜어드십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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