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주 52시간 범법자’ 量産 코앞인데 남의 일 보듯 느긋한 당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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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말로 주 52시간제 계도기간이 끝난다. 7월 1일부터 직원 300인 이상 사업장은 주 52시간 근로 규정을 의무화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정부는 산업 현장의 혼란을 우려해 위반 처벌을 6개월 유예했다. 내년부터는 이를 위반한 사업주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의 형사처벌을 받는다. 탄력근무제 확대 등 보완 입법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범법 사업주가 양산될 수 있다.

연구개발(R&D) 분야나 게임, 건설 등 집중근로를 필요로 하는 산업은 현행 3개월 탄력근로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이렇다 보니 계도기간 5개월 동안 접수된 근로시간 위반 신고만 60여 건이다. 처벌이 본격 시행되면 신고가 급증할 공산이 크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60명을 채용한 근로감독관을 올해 452명, 내년 535명 증원하기로 한 것도 노동 관련 위반 사례가 늘어날 것을 대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처리된 것이 2월 27일이다. 범법, 편법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8개월이 넘도록 보완 대책을 제대로 논의조차 못한 것은 정치권 책임이 크다. 특히 지난달 5일 올해 안에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을 처리하기로 한 여야정 합의를 불과 17일 만에 번복한 정부·여당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당정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논의가 끝나는 내년 2월 이후로 입법을 미루자는 주장이지만 ‘협치의 첫 결과물’을 이렇게 쉽게 내칠 일은 아니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에서 당장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부작용을 최소화할 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 재계가 탄력근로 확대 입법 전까지 계도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이에 대해 “실태를 파악한 뒤 필요성을 검토하겠다”는 고용부의 태도도 무책임하다. 노동계의 반발을 의식해 결정을 미루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어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탄력근로 기간 확대에 대해 “6개월에 방점을 찍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종별, 사업장별 상황에 맞게 선진국처럼 1년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근로자가 원한다면 주 52시간 초과 근무를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근로시간 단축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 수준인 노동 환경을 바꾼다는 측면에서는 맞는 방향이다. 그렇더라도 현장 사정을 도외시한 급진적인 추진은 위험하다.
#주 52시간제#탄력근로제#근로기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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