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고속원자로 선도기술 중단… 文정부, 굴러온 복 차버리는 꼴”

  • 신동아
  • 입력 2019년 2월 26일 11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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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원자력 석학’ 美 아르곤국립연구소 장윤일 박사

● 한국인 최초 ‘원자력 노벨상’ 美 로렌스상 수상
● 탈원전 정책으로 상용화 예정 고속원자로 연구 중단시켜
● ‘원자력의 대안은 없다’는 게 학계 내 정설
● 1인당 GDP와 전력소비량 정비례, 전력 필요량 폭증할 것
● 원자력은 가장 깨끗하고, 무한 공급 가능한 유일 자원
● 후쿠시마 지진 때도 원자로는 멀쩡
● 파이로프로세싱 상용화되면 핵폐기물 안전성 문제없어

장윤일 박사는 “원전은 가장 친환경적이고, 전력 공급도 거의 무한한 대체 불가능한 에너지”라고 강조했다. [홍중식 기자]
장윤일 박사는 “원전은 가장 친환경적이고, 전력 공급도 거의 무한한 대체 불가능한 에너지”라고 강조했다. [홍중식 기자]
지금 세계는 ‘원자력 에너지 르네상스 시대’를 맞고 있다. 향후 10년 동안 중국을 비롯한 19개국은 100기의 원전을 추가로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 등 신흥 원자력에너지 30개국도 원자력에너지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동참하기는커녕 도리어 역행하고 있다. 많은 에너지 전문가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위태롭게 보는 이유다.

지난 1월 25일,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는 ‘세계 원자력의 현황과 전망’ 주제의 강연이 열렸다. 연사는 미국 아르곤국립연구소 석학연구원인 장윤일(76) 박사. 미국 시카고에 있는 아르곤국립연구소는 ‘평화적 원자력 사용’의 시작점으로 불리는 곳이다. 전쟁과 파괴의 상징이던 원자력을 인류 문명의 발전소로 재탄생시킨 곳이 바로 이곳이다. 현재 아르곤국립연구소 소속 연구원은 총 3000여 명으로 원자력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에너지원과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차세대 원자로 기술 전수 가능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장 박사는 1993년 미국 원자력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로렌스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았다. 이번 강연은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가 장 박사를 초청해 성사됐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29일, 출국을 하루 앞둔 장 박사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서울대 원자력학과를 졸업한 장 박사는 우리나라에 원자력공학이 도입된 초창기인 1965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71년 미시간대에서 원자력공학 박사학위를 딴 뒤 1974년 아르곤연구소에 입사했다. 1984~1994년 10년 동안 차세대 고속로와 파이로프로세싱 기술 개발 프로젝트 총책임을 맡아 그 공로가 로렌스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1998년에는 아르곤연구소 부소장에 올랐으며 이듬해 소장 대리를 지냈다. 무엇보다 장 박사는 아르곤연구소에서 개발한 세계 최초의 차세대 원자로 기술을 국내에 전수할 자격을 가진 유일한 한국인이다. 원자력에너지의 세계적인 흐름을 누구보다 훤히 꿰뚫고 있는 장 박사에게 탈원전 정책의 허와 실을 들었다.

- 한국은 얼마 만의 방문인가

“10년 전에도 KIST 교과부에서 5년간 초빙교수를 맡아 몇 차례 강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때와 비교해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한국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내가 직접적으로 비판할 건 아니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감출 수가 없다. 원자력은 인간의 두뇌가 탄생시킨 가장 우수한 에너지원이다. 앞으로도 원자력을 대체할만한 대체 에너지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탈원전을 추진한다는 건 참으로 무모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국가 경제는 물론 에너지 안보에 심각한 공백을 초래할 수도 있다.”


- 인류에게 원자력에너지는 왜 필요한가.

“세계 인구 증가세를 볼 때 2050년에는 지금보다 2.5배, 2100년에는 4배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처음 원자력을 개발한 미국의 선구자들은 앞으로 세계 에너지가 점점 더 모자랄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일년에 수백만 명의 아이가 굶주린 채 병들어간다. 이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모든 인프라가 전기에너지에서 나온다. 지난 50년간 세계 경제성장 자료를 살펴보면 개인당 국내총생산(GDP)과 전력소비량은 정비례했다. 인구증가율이 아무리 1%로 낮아진다고 하더라도 전체 규모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IT 등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은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살 것이다.”

- 다른 에너지로는 전력 대체가 불가능한가.

“신재생에너지가 원자력에너지를 대체한다는 건 희망에 불과하다. 막대한 전력 수요를 감안할 때 우리는 발전 방법을 고르고 선택할 여유가 없다. 물론 원자력 외에도 석탄, 천연가스, 석유, 수력, 태양, 풍력, 바이오매스 등 모든 에너지원이 필요하지만, 급증하는 전력 소비에 대처 가능한 에너지는 원자력이 유일하다. 무엇보다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원자재나 토지가 가장 적게 들어 경제적이다. 1t의 핵분열은 350만t의 석탄 연소와 동등한 에너지를 생산한다.”

- 환경보호 차원에서도 원자력의 가치가 입증되고 있는데.


“원자력은 미세먼지나 대기오염 없이 깨끗한 에너지를 생산한다. 온실가스 배출량도 다른 연료에 비해 월등히 적다. 석탄은 원자력 대비 30배, 천연가스는 20배 정도 발생한다. 또한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들어가는 철강량은 풍력이나 태양광발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실제로 풍력 또는 태양광 발전소 건설에는 원자력발전소의 10배, 태양열발전소에는 50배 이상의 철강이 필요하다. 따라서 원자력은 모든 에너지원 중에서 가장 환경친화적이고 에너지 공급 잠재력 또한 거의 무한하다고 할 수 있다.”

탈원전 독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그대로

- 현재 우리나라는 신재생에너지, 특히 태양광 산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독일의 경우 탈원전하면서 원자력발전소를 다 ‘셧다운’하고 5년간 1810억 달러(약 200조 원)를 투자해 34GWe(기가와트) 규모의 풍력·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했다. 하지만 풍력과 태양광은 하루 종일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기껏해야 하루 중 4~5시간 정도다. 결국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대체 전력을 공급받는 실정이다. 따라서 친환경을 이유로 탈원전을 했지만, 5년 전과 비교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감소하지 않았다. 또 풍력이나 태양광은 초과 전력을 저장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초과 전력을 유럽의 다른 국가로 수출하고 있다.”

- 원자력발전에 대한 세계적인 분위기는 어떤가.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가 맞나.

“지금 세계에는 450여 개의 원자력발전소가 있다. 미국이 100여 개로 가장 많고, 프랑스가 50여 개 된다. 심지어 프랑스는 전체 전력의 72%를 원전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신규로 지은 원자로가 한국, 인도, 중국, 러시아에서만 80기나 된다. 이 네 나라를 포함한 20여 개 국가에서 향후 10년 동안 지으려는 원전 수는 무려 100기다. ‘원자력 르네상스’가 괜한 말이 아니라는 거다. 우리나라가 수주해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을 준공한 것처럼 사우디아라비아 등 30여 개의 신흥국도 원자력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 원자력 없이는 원활한 전력 공급이 불가능하다는 걸 모두가 다 안다.”

후쿠시마 지진 파괴력, 경주 지진보다 25만 배 커

현 정부가 탈원전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원전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자리하고 있다. 경북 포항과 경주에서 잇따라 지진이 일어나자 월성, 고리 등 동남권에 몰려 있는 원자력발전소도 자칫 위험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퍼져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장윤일 박사는 “후쿠시마 사고와 우리나라를 비교하는 건 무모한 짓”이라고 비꼬았다. 후쿠시마 사고로 2만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이는 일본 역사상 가장 센 지진과 쓰나미 때문이었지 원자로 사고는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 원자로가 자연재해에 취약한 건 아닌가.

“결코 그렇지 않다. 후쿠시마의 경우 쓰나미로 원자로 3기의 비상 발전용 디젤 연료탱크가 (파도에) 쓸려가 전원이 끊겼다. 그 바람에 비상설비가 작동하지 못해 사고가 생긴 것이지 원자로 자체는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았다. 원래 원자로는 사고가 나더라도 방사선이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돼 있다. 2차 방어선인 원자로 용기가 강철로 돼 있고 궁극적 방어선인 5차 방어선은 안에서 무슨 반응이 일어나도 밀폐시키고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차단하는 격납 건물(containment building)이다. 1979년 미국에서 일어난 스리마일섬(TMI) 원전 사고도 원자로가 녹아 방사선이 밖으로 나왔지만 마지막 5차 방어선에 잡혀서 밖으로 새 나온 방사선은 전체의 100만분의 1도 안 된다. 그런데 후쿠시마에는 이러한 5차 방어선이 없었다.”

- 후쿠시마 원전에는 왜 없었나.


“원자로의 종류에 따라 디자인이 간단해 운전하기 쉬운 원자로가 있다. 후쿠시마 원전이 바로 그랬다. 하지만 미국과 우리나라가 사용하는 원자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하다. 이건 조금도 의심할 필요 없는 진실이다.”

- 아무리 센 지진이 와도 상관없나.

“탈원전을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엮어서 생각할 때, 사람들이 또 하나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바로 지진의 강도다. 후쿠시마 지진은 규모가 9.0이었는데 경주나 포항은 규모 5.4 내지 5.8 정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9.0과 5.4는 단순히 2배 차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10의 9승과 10의 5.4승의 차이다. 지진 폭으로 따지면 4000배 차이고, 파괴력으로 따지면 무려 25만 배나 차이가 난다. 거듭 얘기하지만 후쿠시마 지진 때도 원자로는 멀쩡했다. 한국에서 후쿠시마 때와 같은 강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지도 않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원자로로 인한 피해가 직접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 한국의 원자로 기술은 현재 어디까지 와 있나.

“한국 APR1400의 원천기술은 미국에서 개발한 것이다. 1986년 한빛 3호기를 세울 때 원자력연구원은 건설 입찰에 성공한 미국 회사로 200여 명 이상의 연구원을 보내 원전 기술을 전수받고 동시에 공동 설계에도 참여하게끔 했다. 이 기술을 한국이 개량해 ‘OPR1000’으로 만들었고 이후 더 진화한 기술력으로 ‘APR1400’ 개발에 성공했다. APR1400 원전은 지난해 9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표준설계승인도 받았다. 이는 세계적으로 가장 엄격한 NRC 인증의 8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한국 원전 기술력의 우수성을 입증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프랑스도 못 한 걸 한국이 한 거다.”

방사성 폐기물 유효수명 1000배 줄어든다!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 정부는 탈원전을 해도 원전 기술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가능한가.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서 원전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한수원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원전 산업은 공급 체인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원자로·증기발생기·터빈발전기 등 원전 주기기를 생산하는 두산중공업만 해도 원전 일감이 줄어들면서 이미 수백 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원전 부품을 만드는 영세한 기업들은 오죽하겠나. 이는 한국 경제에도 엄청난 재앙을 안겨줄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한번 끊어진 체인을 다시 연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원전 수출도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크다.

“내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겠나. 한국 원전의 경쟁력은 우수한 기술력뿐 아니라 저렴한 가격에도 있다. 최근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세계 원자로 건설 단가 중 1998년, 2008년 한국에서 건설한 원전이 가장 쌌다. 그 이유는 한전이 원자로 설계부터 건설까지 모든 걸 진두지휘하기 때문이다. 결국 다른 나라에 비해 공사기간이 확 줄어들어 인건비 등 건설비용 전체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미국만 하더라도 자유경쟁을 이유로 원전 수주 및 건설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최근 들어 ‘한국도 미국처럼 원전사업을 민간에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 사용후핵연료(원자로에서 연료로 사용된 뒤 배출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불안감은 해소 가능한가.


“아르곤연구소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2012년부터 공동 개발하고 있는 소듐냉각고속원자로(PGSFR·4세대 원전 고속로)가 상용화되면 핵폐기물에 대한 안전성도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다. 사용후연료는 타 발전소 폐기물에 비해 부피가 매우 작기 때문에 사실 직접 처분이 가능하다. 스웨덴은 19억 년 전에 생성된 깊은 암반을 지하 500m 깊이로 파고 거기에 폐기물을 넣는 방법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직접 처분이 가능하긴 하지만, 아르곤연구소에서 개발한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핵연료 건식 재처리기술) 기술을 도입하면 사용후핵연료 중 반감기(half-life)가 긴 원소를 고속로에서 연소시켜 방사성 폐기물의 유효수명을 약 30만 년에서 300년으로 줄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과 관리에 대한 부담도 확 줄어든다. 또한 이런 방식을 사용하면 우라늄 자원 활용률이 170배까지 높아진다.”

- 적은 우라늄으로 큰 효율을 낼 수 있다는 얘긴가?


“맞다. 현재 상업용 원자로는 우라늄의 0.6%밖에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원자로에 사용하기 위해 농축하는 과정에서 85%가 버려지고 원자로에 들어간 뒤에도 다 태우지 못한다. 그렇게 남아 폐기물로 나오는 게 14% 정도 된다. 그런데 고속로를 쓰면 우라늄의 99.4%를 쓸 수 있게 된다. 현재 우리가 쓰는 전력의 10% 정도가 원자력으로 만들어지는데, 고속로 기술이 상용화되면 전체 전력을 다 원자력으로 바꾼다 하더라도 1000년은 끄떡없이 쓸 수 있다.”

- 우라늄 매장량에도 문제가 없나.


“우라늄이 다 없어지면 토륨(thorium)을 쓰면 된다. 그건 우라늄보다 매장량이 더 많기 때문에 앞서 고갈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세계 최초 고속원자로 상용화 눈앞에 두고 지원 끊어”

- 차세대 고속원자로 상용화 시기는 언제쯤으로 점쳐지나.

“당초 아르곤연구소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공동 개발한다고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때만 해도 2020년에 사용 인허가를 받고 2021년에 건설허가를 받아서 2028년에 한국에 처음 도입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번 정부 출범 후 모든 연구가 중단됐다.”

- 누가 봐도 획기적인 연구인데 왜 중단됐나.

“탈원전을 하는데, 새 고속로가 왜 필요하나 싶은 모양이다. 내년까지만 진행하고 그만두라고 하는 것 같다. 현재 인허가 과정을 눈앞에 둔 상황인데, 지난해 말부터 한국 정부가 지원을 끊었다. 그동안 한국원자력연구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예산을 받아 아르곤연구소에 1년에 400억~500억 원 정도를 지원했다. 만약 예정대로 연구가 진행된다면 한국은 전 세계 최초로 고속원자로 상용화를 이룬 나라가 된다. 이는 향후 원전 수출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런 사정을 한국 국민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동안 한국의 탈원전을 언론으로 접하면서 답답한 부분이 많았다.”

- 우리나라가 차세대 고속원자로 상용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 기회는 다른 나라에 돌아가나?

“당장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한국으로서 지금이 매우 좋은 기회임은 분명하다. 미국은 이미 1980·90년대에 고속원자로 개발을 다 끝냈다. 내가 로렌스상을 받은 것도 그때다. 그렇지만 미국은 앞서 말한 대로 원전 사업을 민간에서 주도하는 데다, 또 다른 자원이 워낙 많기 때문에 원자력에 그렇게 목숨을 걸지 않았다. 프랑스나 일본은 재래식 고속로를 개발하려고 이미 수십조 원을 들여 인프라를 구축해놨기 때문에 그걸 다 폐기하고 새롭게 원자로를 만들 사정이 못 된다.”

- ‘원전 굴기’를 추진 중인 중국은 어떤가.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지 못하지만 조만만 따라올 것으로 생각된다. 이미 자체적으로 고속로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중국은 총 40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운영 중이고, 새로 건설 중인 신규 원전도 17기나 된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다. 오는 2030년이면 중국 내 원전이 100기를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인도도 지난해 총 12기 신규 원전에 대해 정부가 승인을 내줬다. 그만큼 중국과 인도의 추격이 무섭다. 두 나라는 외교적 갈등으로 미국으로부터 기술이전을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에 비해 한국은 얼마나 운이 좋나. 부디 한국 정부가 굴러들어온 복을 내치지 않길 바란다.”

- 탈원전으로 원자력 학계 분위기도 많이 침체돼 있다. 인재 이탈이 심각한 수준이다.

“이번에 KAIST 강의를 갔더니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들의 근심이 깊더라. 최소 4명이 지원해야 과가 운영되는데 3명밖에 안 찼다는 거다. 물론 어떻게든 인원이야 채우겠지만, 비단 KAIST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게 더 심각하다. 국가 전력 안보는 정말로 중요하다. 원전 기술의 선도국이 되느냐 아니면 이대로 무너지느냐. 지금 한국은 매우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9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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