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둥이, 국가가 키워준다고? 이런저런 조건에 혜택 쥐꼬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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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탈출!인구절벽/2부 출산의 법칙을 바꾸자]<4> 유명무실한 다자녀 지원책

“애국자시네요.”

가족과 동네를 다닐 때면 기자가 흔히 듣는 말이다. 세 자녀를 두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자녀 가구는 그 자체로도 출산율 제고에 기여할 뿐 아니라 추가 출산에 대한 거부감도 상대적으로 낮아 이래저래 저출산 시대 ‘구국(救國)의 영웅(?)’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아이가 많은 만큼 양육비용은 배로 들지만 혜택은 적다. 경기 안산에서 네 아이를 키우는 오택기 씨(39)는 “‘다자녀는 국가가 키워준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난다”며 “실제로 따져보면 받는 혜택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 아이 ‘여섯’에 다자녀 혜택은 ‘하나’

다자녀 혜택의 집행 주체는 국가(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크게 3곳이다. 엄청난 혜택이 있을 것 같지만 첫째, 둘째부터 보편적으로 지원하는 대책을 빼고 나면 다자녀 가구를 위한 ‘맞춤형 혜택’은 별로 없다. 서울시 하수도 요금 지원처럼 지자체별 추가 지원도 가짓수가 많지 않다. 보편적 혜택과 지자체별 혜택을 제외하고 보건복지부가 다자녀 가구에 한해서만 지원하는 10가지 정책을 두고 실제 다자녀 가구들의 수혜 여부를 확인해봤다.

인터뷰에 응한 다자녀 네 가구가 받는 혜택은 평균 서너 개에 불과했다. 서울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서성원 씨(40)는 셋째를 낳기 6개월 전 자동차를 사 취득세 감면 혜택도 받지 못했다. 보육시설 우선이용권은 둘째 아이까지 회사 어린이집을 보내 소용이 없었다.

네 아이를 키우는 오 씨는 보육시설과 아이돌봄 지원사업을 이용할 엄두조차 못 냈다. 지역에 다문화가정이 많아 이용 우선순위에서 밀릴 게 뻔해서다. 서울의 세 자녀 아빠인 김민규 씨(40)는 “사학연금 대상자라 국민연금 출산크레디트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다자녀 가구를 대상으로 지역난방 요금을 할인해주는 에너지 지원사업의 경우 설문 응답자 모두가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홍보가 안 돼 ‘있어도 없는 혜택’이었다.

충남 공주에 사는 여섯 자녀의 아빠 김모 씨(54)는 “대학생 자녀가 있지만 다자녀 국가장학금 지원 학점 조건에 미달해 받지 못했다”고 했다. 주거 혜택도 알아봤지만 무주택 기간, 소득 등 수혜 조건이 너무 까다로웠다. 집에서 액화석유가스(LPG)를 쓰는 탓에 도시가스 요금 감면 대상도 아니었다. 무려 여섯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그는 10개 다자녀 가구 혜택 중 1개를 받는 데 그쳤다.

5세 3세 2세의 영·유아 세 아이를 키우는 기자는 그나마 ‘수혜 성적’이 나은 편이었다. 기자는 베이비시터를 국가가 저렴한 가격에 지원하는 아이돌보미 다자녀 할인 혜택을 받고 있다. 세 아이를 맡기면 매달 60여만 원을 할인받는 것이다. 이런 혜택을 누리는 건 아이가 많아서라기보다 운이 좋아서다. 수요 대비 공급이 늘 부족해 이런 혜택을 꾸준히 받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라는 게 담당 공무원의 설명이다. 기자는 또 아이들 카시트 설치 문제로 9인승 새 차를 사면서 취득세 240만 원가량을 감면받았다. 전기·도시가스 요금 할인액은 매달 1만 원 정도다. 이렇게 6개의 혜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의 ‘다자녀 가정 주택구입 및 전세자금 지원’과 ‘다자녀 가정 주택특별공급’ 사업은 지원 대상 기준에서 벗어나 받지 못했다. 다자녀 국가장학금 지원은 셋째가 대학생이 돼야만 받을 수 있어 최소 17년을 기다려야 한다.

○ 까다로운 수혜 조건부터 대폭 줄여야


2015년 기준으로 셋째 아이 이상 출산은 전체 출산의 9.7%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이 9.7%를 위한 지원이 전체 출산율 제고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아이가 많을수록 혜택도 늘어난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출산율이 높은 아일랜드와 핀란드 등에서는 셋째 아이 이상 비율이 높다. 반면 한국을 비롯해 스페인, 그리스 등 저출산 국가들은 셋째 아이 이상 비율이 낮다.

하지만 현재 국내 다자녀 정책은 가짓수가 적고 그나마도 수혜 조건이 복잡해 대상에서 밀려나기 일쑤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은 “저출산 대책은 복지정책과 달리 보편적 지원의 특성을 지닌다”며 “소득 등 다른 기준을 걸면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효미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다자녀 가구에 대한 정확한 통계 작업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최 위원은 “출생아 순위 통계와 가구 구성원 수 통계가 있지만 세 번째 출산을 했거나 가구 구성원이 5명이라고 해서 꼭 다자녀 가구를 의미하진 않는다”며 “현재 정확한 다자녀 가구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다자녀 가구 통계가 없으면 다자녀 혜택도 일괄적으로 줄 수 없다. 강준 보건복지부 고령사회위원회 운영지원팀장은 “인구 패널 데이터라든가 관련 인구 통계를 정비할 계획”이라며 “관계부처와 협의해 다자녀 가구가 체감할 수 있는 우대방안을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우선 지자체별로 발급하는 다자녀 지원 카드의 실용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성승훈 인턴기자 서강대 사학과 4학년
#다둥이#혜택#인구절벽#저출산#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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