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 육아’가 두려운 엄마들… 아빠-가족들의 ‘협업 육아’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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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탈출!인구절벽/2부 출산의 법칙을 바꾸자]<2> 낳고 싶어도 못 낳는 둘째


‘1.17명.’

지난해 국내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이 수)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1.68명)에 턱없이 못 미친다. ‘저출산이 심각하다’는 건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이제는 해답을 찾아야 한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전문가들로 저출산 대책팀을 꾸린 이유다. ‘첫째 낳기를 망설이는 부부’(24일자 A1·2면)를 만난 데 이어 ‘둘째 출산’의 해법을 찾아 나섰다. 현재 인구 수준을 유지하려면 부부가 적어도 둘째 자녀까지는 낳아야 한다.

○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책이 화제

취재팀은 근원적인 질문부터 던졌다. 한국인은 다자녀를 싫어하나?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여성이 가장 희망하는 자녀 수는 2명(55.9%)으로, 0명(7.1%), 1명(24.4%)보다 월등히 높다.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고민하는 취재팀에 한 30대 워킹맘은 “서점에 가보라”고 조언했다.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어쩌자고 결혼했을까’ 등의 책이 화제라는 것이다.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남성들을 비판한 책들이다. 이를 바탕으로 취재팀은 ‘둘째 낳기를 고민하거나 포기하려는’ 10쌍의 부부를 만나 심층면접을 했다.

충남 천안에 사는 정효석 씨(36)는 “둘째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2014년 결혼한 정 씨는 지난해 4월 첫딸을 낳았다. “처음에는 무조건 셋까지 낳자고 했죠. 그런데 첫째가 태어난 뒤 아내와 싸우는 일이 잦아졌어요.” 정 씨는 야근이 다반사다. 그때마다 육아는 부인 채수련 씨(33)의 몫이었다. 정 씨는 “이기적이게도 ‘나는 출근하니까 당신이 밤에 애를 보라’고 했다. 아내가 산후우울증 증세까지 보였다”며 “아빠들도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내 맞벌이 가정에서 남성의 육아 등 하루 가사노동 시간은 40분으로 10년 전에 비해 겨우 8분 늘었다. 반면 여성은 하루 3시간 14분을 가사노동에 쓴다.

○ 둘째란 “낳고 싶어도 못 낳는 존재”

18개월 된 딸을 키우는 안정호(31) 최서영 씨(31·여) 부부에게 둘째를 꺼리는 이유를 묻자 “낳고 싶어도 못 낳는, 너무 어려운 존재”라는 표현을 썼다. 이들 역시 자녀 계획을 두고 싸운 적이 많다. 최 씨는 아이를 낳고 직장을 퇴사한 뒤 육아에 전념했다. 이때 안 씨의 직장 때문에 주말부부가 됐다. 최 씨는 육아가 온전히 자기 몫이 된 데다 다시 직장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에 둘째 갖기에 반대하고 있다.

‘둘째 낳기를 망설이는’ 부부를 심층면접한 결과 핵심 키워드는 ‘육아 트라우마’와 ‘독박 육아’로 압축된다. ①출산 후 100일까지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고 ②여성 혼자 육아를 하면서 고립감이 커지고 ③만혼으로 첫째 아이를 낳는 시점이 35세 전후가 되면서 둘째를 가지려니 40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초혼(初婚) 연령은 여성이 1970년 23.3세에서 2015년 30.1세로 높아졌다. 올해 43세인 김성민 씨(경기 고양시)는 34세에 결혼했다. 교사인 아내는 연상이었다. 현재 3세 아이를 키우는 이 부부는 “육체적으로 힘들어 둘째는 엄두도 못 낸다”고 하소연했다. 고려대 김경근 교육학과 교수는 “둘째 출산의 문턱은 ‘번아웃’(소진)”이라고 했다.

○ 독박 육아→맞돌봄 전환이 최우선


둘째 출산을 고민하는 부모들이 부정적인 생각만 하는 건 아니다. 10쌍 부부 심층면접 내용의 텍스트(총 2만2481자)를 통계 분석한 결과 ‘아이’(98번), ‘(아이)생각’(70번), ‘어린이’(41번) 등 둘째 아이와 직접 연관된 단어의 빈도가 높았다. 육아의 어려움 못지않게 둘째 아이로 인한 기쁨도 생각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따라서 육아 부담을 나누면 둘째를 꺼리는 경향을 줄일 수 있다. 분담 대상은 ‘남편’ ‘가족’ 그리고 ‘제도’다. 한국교원대 윤인경 가정교육과 교수는 “독박 육아에서 ‘함께하는 육아’로 전환하도록 부부가 협업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남성들이 “도와야 한다”는 인식은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해답은 최근 1개월간 육아휴직을 쓴 서규하 씨(37·서울 송파구)에게서 찾았다. 그는 최근 아이가 요로감염으로 입원하자 육아휴직을 냈다. 서 씨는 “직접 육아를 해보니 ‘맞돌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몸으로 알게 됐다”고 했다. 전제는 제도적 뒷받침이다. 서 씨가 다니는 대기업에선 마침 1개월 남성육아휴직 의무제를 시행 중이다.

조부모나 친인척 등도 육아를 적극 지원하도록 ‘조손(祖孫)수당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은 “둘째까지 키우려면 결국 제도를 넘어 주변 가족이 도와줘야 한다”며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 가족이라도 육아를 도우면 수당이나 세금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 아이를 키우는 데 대한 지나친 걱정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노후 준비를 해야 하는 40대에도 둘째 아이가 어린 경우가 적지 않다. 강준 보건복지부 고령사회위원회 운영지원팀장은 “아이 양육비, 교육비와 연동해 노후 설계 컨설팅을 해주는 서비스를 도입하면 출산 계획을 구체화할 수 있고, 둘째를 낳는 두려움도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 박종관 인턴기자 한양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육아#협업 육아#출산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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