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쏟아냈지만… 2005년으로 돌아간 저출산시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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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인구절벽]출생아 수 年40만명 붕괴 위기

 2년차 직장인 노모 씨(28·여)는 취업 뒤 부쩍 “왜 연애를 안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럴 때마다 “아직 생각이 없다”고 답하지만 결혼도 출산도 하기 싫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는 “결혼하면 시가 식구들 눈치 보면서 살아야 하고, 아이까지 낳으면 경력이 끊기는데 그것도 싫다”며 “이럴 바에는 결혼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동거하면서 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 향후 1, 2년 내 출생아 ‘40만 명’ 이하로

 
출산과 결혼 건수를 올리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노 씨처럼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2030’세대가 늘고 있다. 당초 정부와 학계에서는 내년이면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고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이상을 차지하는 고령사회로 진입하며 2019년이면 총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해 왔다. 하지만 현 추세대로라면 저출산 고비가 더 빨리 올 것이라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위기의 신호탄은 매년 결혼 건수가 감소하고 있는 점이다. 통상 결혼 후 1, 2년 안에 첫아이를 갖는다. 하지만 사실상 올해 연간 결혼 건수가 역대 최저치인 점을 감안하면 내년, 2018년에 태어나는 아이는 지금보다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또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 가임 여성(15∼49세) 인구도 2014년 1290만9000명에서 지난해 1279만6000명으로 감소했다. 앞으로도 계속 줄 것으로 전망된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향후 1, 2년 안에 연간 출생아 ‘40만 명’ 선이 무너질 것”이라며 “출생아 수가 30만 명대로 떨어지면 결코 다시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금까지 연간 출생아 수가 40만 명 밑으로 내려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 “일-가정 양립 힘든 사회 구조 달라져야” 

 
정부도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올 초 ‘3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시행한 지 8개월 만에 난임 시술 지원을 강화하는 긴급 보완책을 내놓았다. 예상과 달리 올 상반기(1∼6월) 출생아 수가 전년보다 줄었기 때문이다. 또 결혼 건수를 올리기 위해 내년 저출산 대책 예산 22조4560억 원 중 가장 많은 5조141억 원(22.3%)을 신혼부부 주택 공급, 청년 일자리 대책 등에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젊은층의 결혼관이 크게 달라지고 있어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큰 효과를 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복지부가 성인 2000명을 조사한 결과 20, 30대 중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답한 사람은 각각 5.1%와 5.7%였다.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답변이 절반을 넘었다.

 또 결혼할 생각이 없는 미혼자 절반 이상이 비(非)경제적 이유로 결혼을 기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혼할 생각이 없는 이유로 ‘결혼보다 일이 더 좋고 배우자에게 얽매이기 싫다’는 답변(27.7%)이 가장 많았다. 또 △마음에 드는 이성을 자유롭게 만나지 못할 것 같다(18.1%) △육아와 가사 부담(16.8%) △친정, 시가 스트레스(8.4%) 등이 주된 이유로 나타났다. 결혼 비용을 꼽은 답변은 22.6%로 2위를 기록했다.

 이삼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화대책기획단 단장은 “올해 최악의 인구절벽은 한국 사회 구조의 문제에서 비롯돼 한두 개 정책으로 풀기는 어렵다”며 “일-가정 양립, 직장 문화 개선, 취업 확대 등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거시적 노력과 육아, 난임 지원 등 단기 처방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 “다양한 가족 형태 해법 찾아라”

 최근 저출산 해법 중 하나로 다양한 가족 형태를 제도권 내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본격화하고 있다. 저출산을 극복한 모범 사례로 꼽히는 프랑스는 동거 커플도 자녀를 양육하고 있다는 사실만 입증하면 법적 부부와 동일한 법적 지위와 정부 지원을 받는다. 이런 사회적 지원 덕분에 프랑스에서는 2000년대 초 이미 혼외 출산 자녀 수가 법적 부부의 자녀 수를 앞질렀다. 1993년 1.63명이던 프랑스의 합계출산율(가임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은 지난해 2.0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우리도 혼외 출산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사회적 편견을 바꾸기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박영미 한국미혼모네트워크 대표는 “2010년 국내 낙태 건수 17만 건 중 7만∼8만 건이 미혼모의 낙태로 추정된다. 이 중 10∼20%만이라도 아이를 낳는다면 출산율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많은 미혼모가 아이를 기르고 싶어 하지만 생계와 양육의 어려움 등 현실의 벽에 부딪혀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저출산#출산율#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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