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화학-평화상에 여성… 2009년 5명 이후 두번째로 많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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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노벨상 화제]역대 여성 수상자 3인 가상대화


10월 초면 매년 전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벤트가 있다. 노벨상 수상자 발표다. 올해는 1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물리, 화학, 평화상이 연이어 발표됐고, 8일 노벨추모 스웨덴중앙은행상(일명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발표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올해는 어떤 내용이 화제가 됐을까. 노벨상을 받은 세 명의 가상 대화를 통해 짚어봤다.

“똑똑”(노크 소리)

마리 퀴리(1903년 노벨 물리학상, 1911년 화학상·이하 마리): 누가 나를 불렀죠?

말랄라 유사프자이(2014년 평화상·이하 말랄라): (고개를 갸웃거린다) 마리 님. 이해하지 못했어요.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마리: (인공지능 스피커 같은 이 반응은 뭐지?) ‘똑똑한’ 나를 누가 불렀냐는 질문이에요.

말랄라: 아아. ‘아재 개그’네요. (외면한다)

마리: 흠흠…. 근데 문밖에 누구인가요? 들어와요.

도나 스트리클런드(2018년 물리학상·이하 도나): 도나라고 합니다. 처음 인사드려요.

마리: 아! 올해 노벨상의 최고 스타군요. 어서 와요. 말랄라, 올해 제 뒤를 이어 여성으론 세 번째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도나 스트리클런드 캐나다 워털루대 교수예요. 강한 레이저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죠. 도나, 말랄라는 저개발국 소녀들의 교육권을 위한 운동을 펼쳐 2014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어요. 역대 최연소 수상자예요. 1997년생이니까, 무려 17세 때 상을 받았지 뭐예요.

도나, 말랄라: 안녕하세요!

마리: 도나, 몇 년 만인가요. 여성 노벨 물리학상이 나온 게?

도나: 55년 만이라네요.

마리: 55년! 반세기가 넘도록 한 번도 여성 물리학자에게 상을 안 준 거예요? 난 내가 1903년에 받았으니 100여 년 사이에 적어도 50번은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랄라: 마리 님이 시대를 많이 앞서가신 거죠.

도나: 남녀가 반반이라서 50명? 마리 님 순진하셨네!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인 마리 퀴리는 1903년과 1911년 각각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받았다. 초기 노벨상의 전설 같은 인물이지만 이후 노벨상에서 여성 수상자는 수년에 한 번 등장할 만큼 귀한 존재가 됐다. 노벨 재단 제공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인 마리 퀴리는 1903년과 1911년 각각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받았다. 초기 노벨상의 전설 같은 인물이지만 이후 노벨상에서 여성 수상자는 수년에 한 번 등장할 만큼 귀한 존재가 됐다. 노벨 재단 제공
마리: 훗! 순진했던 게 아니라…. 난 1911년 노벨 화학상도 받았어요. 2관왕이죠. 게다가 내 남편도 받고 딸도 받고 두 명의 사위도 각각 받았어요. 우리 집안에서만 여섯 개를 받았어요. 그래서 노벨상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다 받는 줄 알았는데…. (말랄라와 도나의 눈총에 입을 다문다.)

도나: 그런데 물리학상, 중간에 여성이 받을 뻔한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못 받았죠.

말랄라: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조슬린 벨 버넬 박사죠? 우주에 강한 빛을 내뿜는 소천체인 ‘펄서’를 발견해 교과서를 다시 쓰게 한 분.

도나: 맞아요. 펄서 발견으로 1974년 지도교수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는데, 정작 발견자인 버넬 박사는 쏙 빠져 ‘여성이라 빠졌느냐’는 논란이 됐죠. 본인은 “지도교수가 받아야지 난 됐다”라고 말했다지만, 씁쓸하죠. 저는 이번에 지도교수인 제라르 무루 프랑스 에콜 폴리테크니크 명예교수와 공동으로 받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시대가 바뀌긴 한 것 같아요.

말랄라: 버넬 박사가 노벨상은 못 탔지만 보란 듯이 성공해 다행이에요. 영국 최초로 여성으로서 영국물리학회장도 하고, 올해는 노벨상보다 상금이 세 배 더 많은 큰 상인 ‘기초물리학의 브레이크스루상’을 탔어요. 놀라운 건 상금을 “여성과 소수자 물리학자 키우라”며 전액 기부한 일. 캬! 소 쿨(So cool)!

도나: 세계 여성 물리학자의 롤모델로 꼽혀요.

마리: 이제 내가 여성 물리학자의 오랜 롤모델 역할에서 내려올 때가 된 건가요. 기뻐요.

도나: 올해는 유난히 노벨상에 여성 이슈가 많았죠. 화학상, 평화상까지 세 명이 나와 역대 두 번째로 여성 수상자를 많이 냈어요. 2009년 총 5명 수상했을 때가 여성이 가장 많은 해였고요.

말랄라: 올해 화학상을 받은 프랜시스 아널드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 교수도 멋진 분이더라고요. 칼텍의 아홉 번째 여성 교수이고, 권위 있는 기술상인 밀레니엄 기술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이에요.

도나: 여성은 아직도 많은 곳에서 ‘최초’랍니다.

마리:
여성이 올해 노벨상 키워드가 된 것도 생각해 보면 이상하죠. 올해 노벨상 수상자가 12명이고 그중 겨우 25%가 받은 건데 여기저기서 “여성이 노벨상 많이 받았다”고 기사가 나고.

말랄라: 역대 여성 수상자 수도 51명으로 총 수상자 935명 중 5.5%밖에 안 돼요.

마리: 수도 중요하지만, 역시 전문분야에서의 무의식적인 차별이나 배제가 문제예요. 올해 도나와 함께 물리학상을 받은 지도교수 무루 교수는 5년 전에 만든 연구단 홍보 동영상으로 뒤늦게 곤욕을 치렀죠. 연구원들이 뮤지컬처럼 춤을 추는 영상을 잠깐 삽입했는데, 여성 연구원들이 실험복을 벗어던지며 실험실 복장이라고 보기 어려운 핫팬츠 차림으로 등장하는 대목이 논란이 됐어요. 옷차림 자체를 뭐라는 게 아니라, 대상을 다루는 시선이 좀 성 차별적이라고 할까.

도나: ㅜㅜ

역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17세였던 2014년 평화상을 받았다. 저개발국가 소녀들의 교육 문제 등을 제기했다. 최근 노벨상 수상자의 평균 연령이 증가하는 가운데 이례적인 젊은 수상자였다. 사우스뱅크센터 제공
역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17세였던 2014년 평화상을 받았다. 저개발국가 소녀들의 교육 문제 등을 제기했다. 최근 노벨상 수상자의 평균 연령이 증가하는 가운데 이례적인 젊은 수상자였다. 사우스뱅크센터 제공
말랄라: 영상에서 남성 연구원들은 실험복을 벗어던지지도 않죠. 그 외에 9월 말에는 수천 명의 물리학자와 엔지니어가 근무하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한 교수가 “물리학은 남성이 고안하고 세운 것”이라고 강연에서 말해 물리학자 1600여 명이 집단 성명을 내기도 했어요.

도나: 올해 노벨 문학상보다 심하겠어요? 스웨덴 한림원의 한 종신심사위원 남편의 성폭력 혐의에 아예 수상자를 내지 않았죠.

마리: 업적 이야기를 해볼까요? 도나는 레이저를 짧고 강하게 발사하는 법을 개발해 상을 받았죠. 대표적인 응용과학으로 꼽혀요. 그 레이저를 약화시켜 인체에 쓰는 게 라식 등 안과 수술이죠?

201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도나 스트리클런드 캐나다 워털루대 교수는 여성으로서는 1901년 이후 세 번째 물리학상 수상자다. 마지막 여성 물리학상 수상자 이후 55년 만이다. 워털루대 제공
201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도나 스트리클런드 캐나다 워털루대 교수는 여성으로서는 1901년 이후 세 번째 물리학상 수상자다. 마지막 여성 물리학상 수상자 이후 55년 만이다. 워털루대 제공
도나: 네. BBC에서도 좋아하는 응용기술이 있냐고 물어보기에 안과수술 이야기를 했어요. 많은 사람이 실용적으로 이용해 애착이 가요.

마리: 아널드 교수를 포함한 화학상도 사람에게 유용한 단백질을 빠르고 쉽게 생산하는 방법으로 상을 받았어요. 신약을 만들 때 유리한 기술이죠. 생리의학상은 항암치료제니까 말할 것도 없고요. 재미있는 것은 생리의학상을 받은 두 사람이 연구한 분야는 원래 완전 기초생화학이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항암제로 이어져 널리 쓰이고 있죠.

말랄라: 경제학상도 흥미로웠어요. 기후변화나 기술혁신 등 다른 분야를 경제학과 연결시킨 학자들이 받았으니까요. 특히 기후변화는 전 지구를 위한 공익적 성격이 강한 분야잖아요.

마리: “인류에게 위대한 공헌을 한 사람에게 상을 주라”고 했던 노벨의 뜻에 충실했던 것 같아요.

말랄라: 전 여성과 노벨상의 관계에 대해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나온 것도 공헌이라고 봐요. 노벨상에게 노벨상을!

도나: 다음에는 연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좋겠네요. 과학상의 경우, 수상자 나이가 최근 10년간 점점 올라가고 있으니까요. 평균이 60대 후반이에요. 젊은 학자와 작가, 활동가에게도 각종 상 선정위원회가 좀더 관심을 가지면 좋겠어요.

말랄라: 그때도 이런 자리가 생긴다면 제가 할 말도 더 많아지겠죠? 아이 신나!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노벨상#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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