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성폭력과 맞서, 노벨상을 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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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 콩고민주共 의사 무퀘게-이라크 여성운동가 무라드 공동수상

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콩고민주공화국 산부인과 의사 드니 무퀘게(왼쪽)와 야지디족 출신 인권운동가 나디아 무라드. 사진 출처 노벨상 트위터
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콩고민주공화국 산부인과 의사 드니 무퀘게(왼쪽)와 야지디족 출신 인권운동가 나디아 무라드. 사진 출처 노벨상 트위터
올해 노벨 평화상의 영예는 성폭력에 맞서 싸운 이들에게 돌아갔다.

노벨위원회는 5일(현지 시간) 콩고민주공화국 산부인과 의사 드니 무퀘게(63)와 이라크 소수민족인 야지디족 여성운동가 나디아 무라드(25)를 노벨 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베리트 라이스안데르센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전쟁과 무력 분쟁의 무기로써 성폭력이 사용되는 일을 끝내야 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산부인과, 외과 의사인 무퀘게는 콩고민주공화국 내전 과정에서 잔인한 성폭력을 당하고, 신체 일부가 훼손된 여성과 아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20여 년 동안 헌신해 온 인물이다. 서울평화상(2016년)을 비롯해 유엔인권상(2008년), 사하로프 인권상(2014년) 등을 받았으며 최근 10년간 노벨 평화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돼 왔다.

그는 1999년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부카부에 판지병원을 설립해 성폭행 피해자들을 치료했다. 심리치료와 경제적 지원을 함께 제공하며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왔다. 주민들이 이런 그를 ‘부카부의 천사’라고 부른다. 판지병원을 거쳐 간 피해자는 5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상 발표 직후 부카부 병원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수술실에 있던 무퀘게도 밖으로 나와 자축했다고 노르웨이 국영방송 NRK가 전했다.

그는 2012년 9월 유엔 연설을 통해 “국제사회는 성폭력을 자행하는 무장세력에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해 10월 암살 시도를 가까스로 피한 무퀘게와 가족은 유럽으로 몸을 피했지만 그는 “도움을 기다리는 환자가 많다”며 석 달 뒤 판지병원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환자를 돌보고 있다.

공동 수상자인 무라드는 이슬람국가(IS)가 자행한 성폭력 실태를 전 세계에 폭로해 주목받은 인권운동가다. 말랄라 유사프자이(수상 당시 17세)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나이가 어린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됐다. 무라드의 동생은 NRK에 “(수상 발표 직후) 그녀와 통화했는데 그저 울고 있어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고 말했다.

IS는 이라크 소수민족 야지디족을 ‘악마 숭배자’로 규정해 남성은 죽이고 여성은 성노예로 삼았다. 무라드 역시 2014년 8월 IS에 납치돼 모술에서 3개월 동안 성노예로 학대받다가 탈출했다. IS는 그의 어머니와 형제 6명을 처형했다.

탈출 뒤 IS의 잔혹한 성폭력과 인신매매 실태 고발에 앞장선 무라드는 2015년 12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연설을 통해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당시 그녀는 “간청한다. 다에시(IS를 지칭)를 완전히 제거해 달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단숨에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무라드는 2016년 9월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인신매매 생존자의 존엄성을 위한 친선대사’에 임명됐고, 같은 해 사하로프 인권상과 바츨라프 하벨 인권상을 받았다.

한반도 대화 국면을 이끈 공로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공동 수상 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단독 수상 가능성이 발표 직전까지 꾸준히 거론됐으나 예상이 빗나갔다. 영국의 베팅업체 래드브록스는 두 정상의 수상 가능성을 4일까지도 가장 높게 점쳤다. 주요국 지도자들이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논란이 일었던 데다 아직 북한 비핵화 과정이 궤도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평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지난해와 올해 지구촌을 휩쓴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무퀘게와 무라드의 수상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벨 평화상 상금은 9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1억2000만 원)로 무퀘게와 무라드는 이를 나눠 갖게 된다. 시상식은 12월 10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열린다.

카이로=서동일 특파원 dong@donga.com / 한기재·전채은 기자
#노벨평화상#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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