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일본계 영국인 가즈오 이시구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5일 20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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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일본계 영국인인 가즈오 이시구로(63)가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5일 이시구로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위대한 정서적 힘을 가진 소설들을 통해 세계와 닿아있다는 우리의 환상 아래 심연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영국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는 2007년 도리스 레싱 이후 10년만이다. 이시구로는 일본계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와 오에 겐자부로(1994년)에 이어 세 번째로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시구로의 수상으로 한림원이 전통적 문학작가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되돌아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림원은 지난해 미국의 시인 겸 가수인 밥 딜런과 2015년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이자 르포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는 파격 행보를 최근 보여왔었다.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1960년 영국으로 이주한 이시구로는 인간과 문명에 대한 비판을 특유의 문체로 잘 녹여 낸 작품들을 선보이며 평단과 독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고 있는 작가다. 영국 켄트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이스트앵글리아대에서 문예창작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 첫 소설 ‘창백한 언덕 풍경’을 발표하자마자 주목받기 시작했고 세 번째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이 1989년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남아 있는…’은 고전적 품격과 깊은 주제의식을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써 내려간 작품이다. 20세기 전반 영국을 배경으로 고귀한 인품을 지닌 달링톤 경을 모시는 충직한 집사 스티븐슨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시구로는 이 작품을 통해 숭고하고 맹목적인 충직함의 가치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질문을 던진다. 민주사회에서 중요한 문제를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개인에게도 위대함의 가치가 여전히 필요한 것인지, 거대한 질서나 주어진 임무에 충성하는 것보다 자신의 삶과 주장을 우선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남아 있는…’은 시대와 삶에 대해 많은 물음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은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앤서니 홉킨스, 에마 톰슨이 출연하는 동명의 영화(1993년)로 만들었다.

그는 이후 유명 피아니스트가 성공을 위해 저버려야 했던 가치인 사랑, 가족, 부모, 어린 시절의 우정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패로 돌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199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간병사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되어 온 클론들의 사랑과 성, 슬픈 운명을 그린 ‘나를 보내지 마’ 등 다양하고 개성 있는 작품을 선보이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영국 등 유럽적 색채가 강한 작품과 함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작품도 다수 선보였다. 원폭 후 일본의 황량한 풍경을 투명하고 절제된 감성으로 그려 전쟁의 상처를 드러낸 ‘창백한 언덕 풍경’, 전쟁을 찬양하는 그림으로 부와 명예를 누리다 종전 후 비난받는 노(老)화가를 통해 인간의 헛된 욕망을 그린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가 그렇다.

자신의 운명을 극복하려 노력하며 스스로를 치유해 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본질을 음악과 함께 그려낸 ‘녹턴’은 젊은 시절 싱어송라이터를 꿈꿨던 이시구로의 음악에 대한 내공을 확인시켜 준다. 1995년 대영제국 훈장(OBE), 1998년 프랑스 정부가 주는 문화예술공로 훈장을 받았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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