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복동 할머니, 사력 다해 남긴 말 “끝까지 싸워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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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월 29일 1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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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일본정부 ‘어떻게 이럴수 있나’ 절규·분노”
“가시는 마지막 날도 통장 털어 재일조선학교 지원”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빈소가 마련되고 있다. 정의기억연대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1년여의 암투병 끝에 28일 오후 10시41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93세. 2019.1.29/뉴스1 © News1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빈소가 마련되고 있다. 정의기억연대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1년여의 암투병 끝에 28일 오후 10시41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93세. 2019.1.29/뉴스1 © News1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워달라. 재일조선학교 아이들을 지원하는 문제를 나를 대신해 끝까지 해달라”는 유지를 남겼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이날 오전 11시 김 할머니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할머니가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힐정도로 사력을 다해 말씀하셨다”며 김 할머니의 유지를 공개했다.

윤 이사장은 “김 할머니께서 우리 운동의 현장에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직 잘 모르겠고, 실감이 안 난다”며 “김 할머니는 지난 1992년부터 27년 간 쉼없이 달려오셨고, 남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은 분이었다”고 입을 뗐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영면하시는 날 조차 정부 지원금 모았던 통장을 탈탈 털어 재일조선학교 아이들에게 지원해달라고 하셨다”며 “특히 어제는 일본정부에 대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하는 절규에 가까운 분노를 표현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윤 이사장은 “할머니는 지난해 1월 암수술을 한 이후에도 해외를 다니며 인권운동을 지속하셨고, 지진복구를 위해 1000만원, 포항지진에 1000만원, 재일조선학교아이들을 위해 5000만원, 전쟁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김복동평화상 기금 5000만원 등 당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가셨다”고 말했다.

윤 이사장은 “김 할머니는 지난 2015년 아베가 망언할 때도, 온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여러분 세계에 나비가 날고 있어요, 이 늙은 나비도 날며 다닙니다’라고 말씀하셨다”며 “진정한 평화 세상에서 김복동 할머니가 훨훨 날수 있도록,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새로운 결의를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 할머니의 장례는 여성운동가 김복동시민장으로 치러진다.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시민장 장례위원회’ 구성에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창립멤버인 김혜원, 윤정옥, 이효재씨 등 5명이 고문을 맡고, 윤 이사장, 지은희 정의기억연대 이사 등 7명이 상임장례위원장을 맡는다. 또한 정의기억연대 추모페이지와 페이스북페이지 등을 통해 시민 장례위원 참여신청도 받는다.

이날부터 31일까지 매일 오후 7시에 빈소에서 평화나비네트워크, 마리몬드, 정의기억연대가 각각 주최하는 추모제가 진행되고 미국 워싱턴D.C.와 시카고에서도 분향소가 운영된다. 오는 30일에는 김 할머니를 추모하는 수요시위가 진행되며 발인은 2월1일 오전으로 예정돼있다. 이날(21일) 오전 8시30분부터 서울광장~일본대사관을 거쳐 노제를 지내고, 오전 10시30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영결식이 엄수된다.

지난 2017년 개봉한 영화 ‘아이캔스피크’의 실제 모델로도 잘 알려져 있는 김 할머니가 전날 오후 10시41분 1년여의 암투병 끝에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1926년 경남 양산에서 출생한 김 할머니는 1940년 만 14세의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갔다. 이후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일본군의 침략경로를 따라 끌려다니며 성노예피해를 당했다. 김 할머니는 위안부로 끌려간 지 8년째가 되던 1947년에야 귀향했다.

김 할머니는 이후 1992년부터 국제사회에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공개적으로 처음 고발하며 인권 운동에 힘썼다. 김 할머니는 1992년 8월 제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증언했고, 1993년 6월에는 오스트리아 빈의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해 증언했다. 2000년에는 일본군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에 원고로 참여해 실상을 문서로 증언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뿐 아니라 전세계의 성폭력 피해자와 이재민, 전쟁 피해 아동 등을 돕는 데에도 앞장섰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시의회로부터 용감한 여성상을 받았고, 2015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을 받았다. 또 2017년에는 정의기억재단으로부터 여성인권상을 수상했고, 같은해 국제여성인권단체인 ‘Women’s Initiatives for Gender Justice‘ ’성평등 유산의 벽‘에 선정됐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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