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족했던 이팔성 비망록, ‘MB 뇌물’로 인정된 이유

  • 뉴시스
  • 입력 2018년 10월 9일 14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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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렴치한 인간”에 “거짓말탐지기 조사”로 맞섰지만 1심 결과는 유죄였다.

‘비망록’ 법정 공개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이팔성(74)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이명박(77) 전 대통령 뇌물수수(특정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에 관한 이야기다.

9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정계선)는 지난 5일 선고공판에서 이 전 대통령의 이 혐의에 대해 전체(22억6230만원)의 85% 수준인 19억1230만원을 유죄로 인정했다.

이는 다스 소송비 대납 형식이었던 삼성전자 부분(67억7000여만원 중 62억3000여만원 유죄)을 제외하면, 이 전 대통령에게 직접 공여된 뇌물 혐의 중 가장 큰 액수다.

이 혐의는 혐의 자체나 액수보다 재판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 전 회장 비망록으로 더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검찰이 지난 8월7일 재판 서증조사(채택된 증거 설명)에서 처음 공개한 비망록은 2008년 3월28일자로 “나는 그(이 전 대통령)에게 약 30억원을 지원했다. 옷값만 얼마냐. 그 족속들이 모두 파렴치한 인간들이다.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적혀있는 등 내용 면면이 충격적이었다.

이 전 대통령에게 거액을 제공했음에도 원하는대로 인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분개를 담은 것이다.

그런데 이 비망록은 엄밀히 따져봤을 때 완벽한 증거까진 아니었다. 검찰이 “그날 그날 적지 않았으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고도의 정확성을 보인다”고 했고, 1심 재판부도 “신빙성이 높다”고 평가했지만 ‘2% 부족한’ 수준이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었다는 의미이다.

그 이유는 이 전 회장 자신도 이 전 대통령 사위인 이상주(48) 삼성전자 전무, 이 전 대통령 형 이상득(83)에게 돈을 전달하면서 이 돈이 이 전 대통령에게까지 제대로 전달됐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금 전달이었기 때문에 금융거래 자료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와 관련해 이 전 회장은 검찰조사에서 “이상주나 이상득은 이 전 대통령 친인척인데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고 진술했고,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이 부분을 부각시키며 “검찰이 추측 만으로 ‘대통령 주변인에게 전달된 돈은 대통령에게 전달된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2008년 4월4일 이 전 의원에게 전달된 3억원 만을 제외하고 나머지 액수는 모두 이 전 대통령이 공모한 뇌물이 맞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결론 내릴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일까.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이 전 의원이 2007년 대선 당시 캠프 ‘실세’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전무는 검찰조사에서 “이상득은 선거 캠프에서 최고 실권자로 선거 자금을 총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장인(이 전 대통령)이 이상득을 많이 의지하고 도움을 받았다”고 진술했고, 당시 이 전 회장과 같은 ‘선거에 도움을 주고 싶다’며 접근해 온 사람들에 대해 상의하려 하자 이 전 대통령이 “나는 선거 일로 바쁘니 나 대신 부의장(이상득)께 이야기하라고 해라”라고 진술했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인(이 전 대통령)이 이상주로 하여금 이상득과 상의해 이팔성을 비롯한 대선자금 지원 사안을 처리하도록 한 이상 피고인, 이상득, 이상주 사이에 이팔성으로부터의 자금수수에 관한 공모관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이 전무가 검찰에 이 전 의원의 캠프 내 입지를 진술하면서 “명절 등에는 가족 모임을 하는데 종종 장인과 이상득이 서로 낮은 목소리로 긴밀히 협의했고 따로 방에 들어가서 이야기 나누는 모습도 보았다”고 밝힌 것도 일정 부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부인 김윤옥(71)씨가 수령한 돈 역시 이 전 대통령이 알았을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김윤옥이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남편이 허락하지 않은 거액의 돈을 자의적으로 수령하거나 이를 남편에게 알리지 않았을 것으로 보기는 어려운 점 ▲당시는 5만원권(2009년 첫 발행)이 나오기 전으로 부피가 상당했을 현금 1억원 내지 2억원이 자택에 보관된 것을 이 전 대통령이 알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고, 김윤옥이 이를 남편에게 숨겼다고 볼 정황도 없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한편 재판부는 이와 관련해 함께 적용된 정치자금법 위반은 공소시효(7년) 도과 등을 이유로 무죄 및 면소로 판결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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